언젠가, 오래 품어온 꿈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적이 있다.
그 꿈은 여전히 달콤했고, 매력적이었으며, ‘참 잘 꾸었던 꿈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연속되는 그런 꿈이었다. 한편으로는 꿈이 끝난 뒤 스며드는 깊은 슬픔이 오래도록 맴돌았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삶은 결국 +, –, 0의 상태를 반복하며 다시 0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가 없다면 +가 양수라는 사실을 가를 근거도 없다. 그저 0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절댓값만 남아 있을 뿐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짧았던 꿈과 그 꿈이 깬 후의 며칠을 돌아본다.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순간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언제부턴가 나는 떠돌이 방랑자가 나에게 더 잘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11월 초입부터 서울—구미—부산—구미—서울—구미—부산을 쉼 없이 오가며 지냈다. 몇 번의 여정은 꿈을 꾸듯 흘러갔고, 그때마다 특유의 짜릿함이 몸을 맴돌았다. 눈부신 햇살이 앞을 지나며 후광처럼 비치던 순간도, 한옥 처마선을 따라 흐르는 그림자의 리듬도, 선율 위에 살짝 얹은 진심도 모두 하나의 꿈처럼 느껴졌다.
방랑을 사랑한다고 확신한 순간은 ‘이제 꿈에서 깨어야겠다’고 결심한 다음 날이었다. 쓰라린 속을 달래려 걷던 어느 골목길에서도, 스쳐 지나갔을 뿐인 풍경 또한 나에게 묘한 영감을 주었다. “보고 싶다, 보자.”는 말에 시간을 내 준 동생과 걸었던 작은 골목, 그곳에서 둥그렇게 말린 계단을 보며 또 다른 상상들이 흘러나왔다. 모방을 피하려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로이드 빌딩’을 찾아보던 나는, 깨진 꿈 속에서도 이미 다음 꿈을 꾸고 있었다.
꿈에서 깬 후에는 이런 생각이 가득했다.
‘꽤 이기적인 꿈을 꾸었구나.’
꿈속의 대상들은 결국 내 머릿속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과학은 말한다. 그래서일까, ‘꿈’이라는 단어가 지닌 상징이 유난히 또렷하게 와닿았다.
머릿속이 꽉 차오르면 몸을 써서 땀으로 비워야 한다.
그걸 알기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고된 일을 찾아 부산으로 향했다. 몸을 혹사하니 조금은 비워진 것도 같지만, 사실 생각을 덜어낸 가장 큰 이유는 나에게 사랑하는 순간들을 다시 불어넣어 준 사람들 덕분이다. 허상의 꿈에 빠져 흔들릴 때마다 나를 데려가 이야기를 들어준 이들. 그들에게 마음 깊이 고맙다.
내가 쓴 글과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마지막 페이지 즈음에 늘 비슷한 말을 한다.
“너는 말에서는 다정함이 잘 느껴지지 않아.”
뭐 어쩌겠는가. 나는 다정함의 90%를 글에 쏟아 넣고 사는 사람인데. 아마 글이 내가 가장 다정할 수 있는 방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안고, 또 한 번 꿈에서 깨어 본다. 다음 꿈을 꾸기 전까지는 말속의 다정함도 천천히 찾아보려 한다.
애타게 좇던 꿈이 허상의 집합이라면, 나는 다시 허상을 그리기 위한 호기심과 소재를 모아야 한다. 언젠가 다시 그릴 허상이 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다정하고, 조금 더 섬세하게. 때로는 공주님처럼, 때로는 인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다.
오늘도 당신의 머리맡에서 많은 꿈들 사이로 ‘행복’이 조용히 찾아가기를.
그리고 내일 아침, 꿈에서 깬 모든 이들이 잠시라도 웃음 짓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