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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면 Apr 08. 2024

아찔한 저녁

모두에게서 달아나면 나는 혼자


흙을 파헤치는 손길도

자갈을 골라내는 손길도

물을 주는 손길도

모조리 말라비틀어져 낙엽처럼 뒹굴며 썩어도


나는 혼자 야산에 서서

오로지 햇빛만을 받아

무성하게 이파리를 피워내려 했건만

어디선가 나타난 지렁이가 말하네


'그 어디에서도 너는 혼자일 수 없으리.'


떨어지는 이파리가 울고

떨어지는 꽃잎이 울고

휘어가는 나무 줄기를 보며

나는 어디에 존재했는지 기억 못 하고


차갑고 아찔한 저녁

모두에게서 달아나면 나는 모두.

아스라히 떠밀려 가는 기억을 붙잡고

제 뿌리를 파먹는 미련한 고목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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