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푸릇푸릇한 여름풀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겐 누렇게 바랜 채 죽어버린 풀만 보였지만요
당신은 해맑은 아이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겐 천천히 늙어가며 동시에 죽어가는 운명만 보였지만요
당신은 조용하고 사려 깊은 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당신 말이 두려워 숨어 든 채 한동안 빛을 피했습니다
당신은 밤하늘에 뜬 몇 없는 별을 보면서도 노래를 불렀습니다
어둠에 뚫린 간헐적인 구멍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날카로운 허무에 찔린 제가 참지 못해 침묵이라도 하는 날엔
당신은 그저 웃으면서 그런 날도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어느 날 책 속에서
어둠을 갉아먹는 무수한 별들을 발견해
당신에게도 보여 주고 싶어
등잔에다 별빛을 담아 두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사라졌지만요,
인연의 이치대로 말입니다
몇 없는 별들마저 사라진 캄캄한 밤하늘 아래에서
등잔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제게도
푸릇푸릇한 여름풀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여름풀은 밤하늘에 내리는 별을 볼 수 없습니다
가을이 오면 별빛을 담아 둔 등잔을 줄기에 매단 채
노래를 부르면서 다음해살이풀을 떠올릴 것입니다
당신이 가르쳐 준 대로
그런 삶도 있는 법이니까 말입니다
저녁 어스름에 풀잎이 떨리며
들어 본 적 없는 노래를 밤으로 흘려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