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드립니다. 감사했습니다.
역시나 미련 때문인 걸까.
이체와 함께 느꼈던 그 후련함의 이유는.
이제 그 미련을 떨쳐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느낀 걸까.
공무원이 되기 위해 써야 했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떠올려 본다. 고시원에서 보냈던 시간, 오피스텔에서 보냈던 시간, 학교 동아리방에서 보냈던 시간, 도서관에서 보냈던 시간, 고향 집에서 보냈던 시간들. 눈을 감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외롭고 비참한 시간들이었다. 하나의 목표만을 생각하며 버텼던 시간이었다. 그 인고의 세월 동안, 공부를 하지 않고 다른 일을 했더라면 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이런 가정들이 결국 미련을 낳고 마는 거겠지. 이체를 완료한 시점에서 전 직장과 나 사이엔 아무런 채무 관계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그곳을 떠올리며 하루의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는 일 따위 하지 않을 것이다. 추억을 꺼내 보듯, 그곳에 대한 기억들을 되짚어 볼 순 있겠지만.
하지만 나는 안다. 결심하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는 일 사이엔 메우기 어려운 간격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 얼마간은 더 의원면직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다시 공직 생활을 시작하고 싶지는 않은지 하는 질문들을 겪어 나갈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질문이 없더라도 스스로 끊임없이 물어볼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 후회하는 날이 있을지 모른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른다. 환급과 관련한 모든 글은 그저 지금의 마음가짐을 관조하며 기록한 것일 뿐이니까.
얼마 전엔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향에 내려가서도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 다정한 메시지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첫 번째 직장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 무뚝뚝한 내게 먼저 다가와 식사는 맛있게 했는지, 어젯밤에 잠을 잘 잤는지 물어보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연락을 받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약 이 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건만, 아직 나를 기억해 주고 신경 써 주는 사람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의 약 이 년 동안 일을 정말 잘했던 걸지도 몰라,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아무렇게나 일처리를 하는 신입 공무원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동료들을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연락이 내게 어떤 미련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곳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덧붙여 줄 뿐이었다. 그곳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 것일 뿐, 미련과 후회와는 거리가 먼 사고 작용이다.
환급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몇 편의 글을 써 내려가는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사건은 역시, 나도 이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다는 것이리라. 만으로는 이십 대이지만, 현 정권의 만 나이 통합 정책이 없었더라면, 내 나이는 관공서를 제외하곤 어디서든 서른으로 통용되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만 나이를 쓰자는 정책적 움직임 덕분인지, 아직은 내가 서른 살이 되었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는 않는다.
서른.
서른까지만 죽자고 글을 써볼까.
의원면직 전 난 결심을 했다. 결심에서 언급한 서른은 만 나이 서른이었다. 하지만, 만 나이 서른까지 글만 주야장천 써 볼까,라고 다짐하지 않았다. 일종의 중의적 표현이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그래서 한국 나이 서른이 된 지금 나는 가벼운 불안을 겪고 있다. 서른이 되었지만, 난 아직 이렇다. 글이랍시고, 그저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중요하지 않는 말들만 길게 늘여 붙이는 연습만 하고 있는, 가련한 작가지망생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학원 강사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변명 거리도 늘어 버렸다. 일을 하는 것도 바쁜 와중에 글 쓰려는 마음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짐에 대한 충분한 열의를 보여준 거라 합리화해 버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다음 날 후회한다. 이러려고 난 의원면직을 한 게 아니야. 이러려고 그 이 년 간의 세월을 배신한 것이 아니야.
나아가야 한다.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망령처럼 출몰하는 그곳에 대한 기억들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쓸데없는 잡념이 그렇게 하면 조금 줄어들기라도 한다는 듯이. 한결 개운한 마음으로 중얼거린다. 출발하자. 다시 한번 마음을 의지로 벼려내고.
"자, 돌려드립니다. 그대가 내게 빚진 것은 돌려받았습니다. 이제 제가 그대에게 빚진 것을 모두 돌려드려요.
감사했습니다. 이제 그대를 잊겠습니다. 하지만 잊지 않을게요."
어깨가 가벼워진 내가 오늘도 정신분열에 걸린 양, 한 편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