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커피 분말을 끓인 물에 녹이며.
크로스백에 항상 넣고 다니는 검은 수첩. 그 안에 써 내려간 시 중에는 찻잎을 끓이며 미움을 날려 보내길 기원하는 축문 같은 것도 있다. 그 시를 읽으면 항상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이십 대 초 시절, 나를 지독히도 괴롭히던 누군가에 대한 기억이다.
유명 연예인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는 스틱 커피 두 봉. 포장을 뜯어 컵에 담는다. 포트로 끓인 물을 그 위에 붓는다. 찻잎을 끓이지는 않는다. 다만,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쫓기 위해, 커피를 끓이며. 그 기억을 되새긴다. 그러다 보면 그 기억이 더 이상 괴로운 것이 아니게 되리라 믿으며.
발단을 무엇으로 잡으면 좋을까. 학벌지상주의 한국 사회로 할까. 초등생 시절부터 시작되는 과열된 입시 경쟁. 끊임없이 자신의 석차를 친구들과 비교하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 서울에 있지 않은, 이름 없는 대학교에 가는 것이 곧 인생의 실패를 암시하는 듯한, 기묘한 사회적 분위기 같은 것들. 그것이 우리의 발단일까.
이 기억은 누군가에 관한 것.
그 누군가는 나의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동창이다. 학생 시절 그에 관한 기억은 많이 떠올릴 수 없다. 안경을 끼고,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는 것. 그 정도를 기억해 낼 수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문과를 선택했고, 누군가는 이과를 선택했다. 그 후부터는 학교에서 만날 일도 거의 없어졌다. 어느 날, 그는 학교에 나오지 않기 시작했고, 끝내 자퇴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한다. 어디선가 떠도는 소문 같은 것을 종합하며,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모의고사를 치는 날 학교에 와 시험을 쳤다. 그때 몇 번 누군가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가 학교에 시험을 치러 왔다는 얘기를 들은 것인지, 아니면 직접 내가 본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다. 나는 서울로 대학교를 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입시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3 시절 나는 수시 지원 날짜를 놓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재수를 하는 건 어떨까 고민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가 되는 것엔 학벌보다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으로 대학 시절 불쑥불쑥 떠오르던 후회를 잠재웠다.
종종 누군가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는 그 누군가가 원하던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 들은 건지, 그 남자에게서 들은 건지조차 구분할 수 없지만. 누군가가 느꼈을 상실감을 어느 정도 공감했던 것 같다. 일 년 정도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 연락했던 것 같다. 여기까지의 기억은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흐릿하기 그지없는 것들뿐이다. 카페인과 음악의 힘을 빌어 자기 방어기제가 지워가고 있는 그 기억들을 수첩에 꾹꾹 눌러 적은 시의 분위기에 취해 간신히 불러내 보고 있는 중이다.
1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대에 가기 위해 2학기는 휴학했다. 고향 집으로 내려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어디에 지원해야 할지 망설였다. 체력이 약한 나는 육군보다는 훈련 강도가 약하다는 카투사나 공군에 가고 싶었다. 카투사(KATUSA)에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카투사 지원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그래서 카투사 쪽은 이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공군에 지원했다. 공군은 날 단번에 받아주었다. 솔직히 군대를 가기 너무 싫었다. 그런데 군대에 지원해 와도 될지 말지를 심사받아야 한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휴학하는 와중에도 누군가와 몇 번인가 연락을 주고받았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몇 통이고 부재중 전화를 남겨놓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점점 빈도가 잦아지는 누군가의 연락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사실 나는 그 누군가를 딱히 친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연락을 몇 번인가 주고받긴 했지만, 나는 누군가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주변을 맴도는 유령 같은 소문들이 누군가를 더 미워 보이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입대를 앞두고 한껏 예민해진 나는 누군가에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더는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거친 말을 내뱉었다, 까지는 기억하지만, 정확히 어떤 말을 어떤 어조로 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내게 유감없이 서운함을 토로했다.
지독한 장마의 시작처럼.
한동안 쏟아붓던 누군가의 울음이 그때의 계절을 갈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