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홍차 티백을 우려내며.
오늘은 커피 스틱 대신 홍차 티백을 우린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녹차와 홍차가 사실 같은 찻잎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오래 덖고, 숙성시키면 찻잎이 갈색으로 변하면서 홍차가 된다고 했다. 녹차는 아시아에서 나는 차나무로 만들고, 홍차는 유럽에서 재배한 차나무로 만들었을 거라 지레짐작했던 지식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때 나는 곧바로 쿠팡에서 홍차 티백 박스째로 주문했다. 박스에서 꺼낸 티백에선 옅은 홍차 향이 난다. 온수를 담은 컵에 티백을 넣는다. 파괴의 통쾌한 순간을 떠올리며, 방 안으로 퍼져 나가는 홍차 향을 맡는다. 홍차에 적신 마들렌까지는 없지만. 과거를 떠올리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
겨울로 넘어가려던 그 계절.
누군가는 하루에 수십 번씩 전화를 걸고, 수십 건의 메시지를 남겼다. 하루에 수십 번씩 울리는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많은 감정들을 떠올리곤 했다. 한데 뒤엉킨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얽힌 타래를 풀어내고 하나씩 이름을 붙이는 일은 가능하다. 그중 가장 지독한 녀석의 이름은 증오이다. 명명백백한 미움.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다는 것인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누군가를 향한 증오 때문에 숨도 쉬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받을 때까지 해대는 누군가의 집착에 하루하루 가슴이 문드러지는 경험을 해야 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아니 미워하는 사람과 억지로 연락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는 전에 알지 못했다. 누군가의 번호를 차단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연락을 해왔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차단하면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협박을 하며.
명명백백한 미움. 그리고 창백한 공포.
어떻게 이 사람을 내 삶에서 떼어놓을 수 있는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공포로까지 번졌다. 누군가와 내가 사는 곳은 같은 동네였다. 길을 가다 혹시라도 마주칠까 두려워 외출도 삼갔다. 누군가의 협박 수위는 높아졌다. 어렸던 나는 공갈과 협박을 구분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나는 정말 누군가가 나를 죽이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연락에 끊임없이 대꾸를 해야 했다. 공포에 질린 채, 누군가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일은. 자존감을 한없이 깎아 먹었다.
경찰에 고소해야 하나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경찰이 나서서 나를 도와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떻게 경찰이 나를 도와줄 수 있단 말인가. 24시간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녀석을 아예 감옥에 보내 버릴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니까. 더군다나 오히려 고소가 누군가의 심기를 더 거스르는 일이 될 것 같아 꺼렸다. 우선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자신이 한번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은 누군가는 다소 누그러진 말투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사과를 건네왔다.
아, 진작 자존심을 굽히고서라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할걸.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의 통화 한 번으로 이렇게 쉽게 끝나버릴 일을 몇 주간 홀로 속앓이 하며 견뎌 냈다니. 하지만 누군가의 연락은 끝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번갈아가며 누군가의 통화를 견뎌내야 했다. 이번엔 사과의 내용이 담긴 연락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누군가의 눈물과 오열을 들어내야 했다. 아빠에게도 말했다. 이상하게도 아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대꾸했다. 그 친구가 많이 힘든 것 같은데, 조금 달래주는 게 어떻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때는 아빠의 말을 이해 못 했다. 기분이 나쁠 정도였다.
입대일은 내가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과 무관하게 다가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박박 민 후에야, 내가 정말로 군대를 가는구나 실감이 됐다. 핸드폰을 정지시켰다. 그때 잠깐 해방감을 느꼈다. 군대 가기는 죽어도 싫었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은 누군가와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군 생활 동안에도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종종 나를 괴롭혔다. 전역하면 계속 누군가와 연락을 하며 지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기억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겁고 괴로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