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비니가 배가 아픈지 뒤척였다. 미미와 영이는 잠에 든 것 같았다. 비니의 침대 머리맡에 무언가 깜박였다. 바깥의 대형라이트 불빛이 창문을 통해 새어 들어온 것 같았다. “미쳐버리겠다~” 모래 언덕을 등산한 후 위가 아픈 것 같다던 비니는 해탈한 모습이었다. 새벽 1시를 넘긴 시각, 낮동안 사람을 기절시키던 사막 한가운데의 숙소는 밤이 되어도 능력을 잃지 않았다. 달리 할 것이 없어 휴대폰을 이리저리 눌러보았다. 날씨 어플에서 ‘현재 기온 28도’ 글귀를 발견했다. 열대야였다.
숙소 문을 열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지치지도 않고 모래들은 마치 처음인 것처럼 달구어지고 있었다. 엉성하게 엮인 회전초가 바람을 타고 통통거리며 지나갔다. ‘미국 서부에 사막이 있다던데, 이렇게 생겼을까?’ 문고리를 잡고 서있는 내가 총을 쥐고 있는 카우보이 같았다. 그 카우보이는 분명 사막 탈출을 꿈꿨으리라. 사막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바양작이라는 목적지가 남아있었다. 바양작은 불타는 절벽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서 더 뜨거울 수 있다니 현기증이 났다.
아침에 출발한 푸르공은 정오를 지나며 뜨겁게 달구어졌고 우리는 푸르공을 식히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번씩은 멈춰야만 했다. 사방이 지평선인 곳에서 비몽사몽 기력이 없는 채로 2평도 되지 않는 푸르공 그늘에 몸을 의지해 쉬어야 했다. 푸르공 뒤편에 자리를 잡아 돗자리를 깔고 앉을 때면 엔진이 내뿜는 열기가 등 쪽으로 전해졌다. 그 열기가 마치 거대한 콧김 같아서 푸르공이 살아있는 것 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한낮의 작은 그늘에서 쉴 때마다 우리는 작은 회의를 했다. 몸이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겼다. 이렇게는 여행 못 한다며 여행일정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우리 그냥 다 그만두고 마지막 일정으로 가자고. 우리는 모두가 지친 채로 의견을 나눴고, 어떤 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가진 건 미지근해진 몇 병의 물뿐이라는 사실이 서늘하게 다가왔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 밖엔 방법이 없었다. 푸르공은 병자들을 싣고 바양작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나약한 한국인 6명이 남고비주 어느 마을의 식당에 둘러앉았다. 박자씨는 흐물거리는 우리들을 위해 선풍기 두 대를 가져다주었다. 몽골여행에서 에어컨은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우리였다. 더운 바람이 그대로 나오는 선풍기 두 대에 만족해하며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갓 만들어진 보츠와 효쇼르가 식탁에 올랐다. 비니는 약을 챙겨 먹고 철이는 콜라를 마셨다. 모두 조용히 식사했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먹고 싶은 것은 ICE COFFEE 뿐이라고…
고비에서는 차가운 음료를 구하기 어려웠다. 마을에서 아이스박스를 가지고 다닌다는 팀이 있다는 소문을 엿들었다. 우리는 왜인지 나사 하나가 빠진 여행을 하고 있었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얘들아 커피가 있어!” 식당 옆 보라색 담벼락에 ‘ice coffee’라고 쓰여있었다. 가게 안에는 투명한 문이 달린 가정용 소주 냉장고가 있었다. 그 안에 정말로 커피가 있었다. 팩커피를 하나씩 사들고 푸르공으로 돌아갔다. 꿈꾸던 얼음 가득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아니었지만 행복했다. 이깟 사막쯤이야 몇 시간 더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