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쌍봉낙타의 혹 사이에서 떨어지는 일 없이 무사히 낙타 타기 체험을 마쳤다. 이제 우리의 최종 목표 홍고린엘스만이 남아있었다. 고비 사막 위에 올라보겠다는 욕심으로 이 더위를 견뎠는데, 그렇게 고대하던 홍고린엘스의 첫인상은 ‘뭐야 아기자기하잖아!’였다. 고비는 넓고 또 넓다더니 그렇지 않았다. 길게 늘어져 흐르는 시냇물 건너편으로 우리가 올라야 할 모래 언덕이 보였다. 높이가 낮아 동네 뒷산 같아 보였다. 물길 위로 부엽식물이 자라 풀밭을 이루었다. 마치 풀들이 모래 언덕을 보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소들과 낙타가 풀을 헤치고 냇물에 주둥이를 넣어 한가롭게 물을 마시고 있었다.
모래 언덕을 오르기 위해 풀이 자라는 곳을 지나야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넜다. 나무판자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말로 환영의 인사가 적혀 있었다. ‘홍고린엘스 어서 오세요’ 반가운 한국어도 발견했다. 홍고린엘스는 고비 사막의 남쪽에 위치한 모래언덕으로 몽골에서 큰 모래 언덕들 중 하나라고 한다. 무너지는 모래가 내는 소리 때문에 ‘노래하는 모래’라고 부를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인사말 하나로 긴장된 마음이 풀렸다. 눈앞에 마주한 노래하는 모래 언덕은 매섭거나 차갑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반기는 것 같았다.
박자씨를 필두로 모래 언덕을 올랐다. 내려올 때 타기 위해 색감이 찡한 플라스틱 썰매도 어깨에 멨다. 뻘처럼 푹푹 빠지는 모래를 밟으며 올라가자니 이게 아닌데 싶었다. ‘동네 뒷산 같다고 한 거 취소! 아기자기하다고 한 거 취소!’ 나처럼 운동을 싫어하는 미미도 태태도 잘만 올라가는 것 같은데… 나는 뒤처지기 시작했다. 산을 타면 나무그늘에서 숨을 고를 수라도 있지 모래를 타면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쉬어가는 때에 나는 모래사막 경사에 맞춰 비스듬하게 누워 박자씨에게 물었다. “몽골 여행지 중에서 이곳을 좋아하시나요?” 박자씨는 난감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더니 대답했다. “별로 안 좋아해요.”
그렇게 몽골 여행 전문가도 싫어하는 사막을 기어올랐다. 다운 독 자세로 팔을 들면 발이 빠지고 발을 들어 디디면 썰매를 놓쳤다. 그래, 이 더운 사막을 누가 좋아하겠어. 누가 오자고 그랬니. 아무도 안 들리게 혼잣말을 했다. 앞서가는 누군가는 욕도 뱉고 누군가는 헛구역질도 했다. 어떻게든 올라가니 정상이었다. 그 곳에서 모래 언덕 너머를 처음 보았다. 고비는 정말로 넓었다. 오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었다. 지평선 끝의 모래의 색과 질감이 내 발 밑에 있는 모래와 같아서 그리 먼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게 했다.
“포기하지 않고 오르길 잘했다.”
황홀한 순간은 금방 지나갔다. 해가 지면서 발목을 잡던 뜨거운 모래가 차갑게 식어 아래로 흘러내렸다. 노을의 반대편은 그늘지기 시작했다. 모두들 어두워진 모래 위에 썰매를 대고 올라탔다. 이제는 내려갈 시간이었다. 나도 썰매에 앉아 발로 밀어보았다. 썰매가 타지지 않았다. 남들은 SNS속에서 썰매를 미끄러지듯이 잘 타던데. 내 썰매는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아. 정말. 사막 이럴 거니. 아까 까진 우리 좋았잖아…
다들 썰매 밖으로 다리를 내밀어 어린아이가 장난감 자동차를 타듯이 미끄러졌다. 어떻게 해야하는 지 배워야 할 것 같아 다른 친구들을 살펴봤다. 신나 하며 내려가는 영이의 다리근육이 얼핏 보였다. 결국 다리 근력으로 밀어 나아가는 것인가... 뽀빠이 체질들과 거리가 먼 나는 내려가는 것도 꼴찌로 내려갔다. 박자씨와 친구들이 점점 점처럼 보였다. 마지막에는 나 혼자 남아 비탈길에 누워버렸다. 누우니 계속해서 곁에 있던 몽골의 풍경이 보였다. 화를 내어서 무엇 하리. 분홍빛으로 물든 모래와 청람색으로 변한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