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바양작은 온통 밝았다. 붉은빛을 띤 모래들이 햇빛을 밀어내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박자씨는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선글라스와 모자를 꺼내라고 말했다. 사막 2일 차, 기후에 완전히 적응한 우리였다. 생수병을 꺼내 들고 서로에게 물을 뿌려주었다. 좁은 푸르공 안에서 축축하게 이루어지는 이 준비과정은 어떤 동물 무리의 의식 같기도 했다. 물이 흐르던 홍고린엘스와 다르게 바양작은 달구어진 돌멩이들만 있으니 더 더울 것이었다. 하루종일 별 말 없던 태태가 모자에 비장하게 물을 뿌려 썼다.
바양작은 ‘작’이라는 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뜻이다. 불타는 절벽에 서서 언뜻 보니 생명이라고는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 나무는 어디 있나 싶었다. 박자씨는 땅끝을 가리켰다. 붉은 절벽 너머에 초록빛이 일렁였다. 납작하게 바닥에 붙은 나무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흐릿해서 팔레트에 문질러진 녹색 물감처럼 보였다. 박자씨 뒤로 철이, 철이 뒤로 미미, 미미뒤로 태태가 아슬아슬한 돌길을 밟아 절벽 끝으로 갔다. 나는 멀리서 모든 것을 바라봤다. 이런 세상이 있을 수도 있구나. 살갗에 달라붙는 열기가 이제는 싫지 않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자연의 색감을 감상하며 ‘계속 여행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생각했다.
절벽 구경을 마친 친구들이 바양작의 플리마켓에 하나둘씩 모였다. 유독 눈에 생기가 도는 친구가 있었는데, 태태였다. 태태는 몽골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바양작의 낙타 인형이 제일 귀엽대.” 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몽골 여행지에는 종종 플리마켓이 열리는 곳이 있었다. 그중 욜린암과 바양작의 플리마켓이 물건이 괜찮기로 유명해 관광객들의 인기가 높았다. 플리마켓은 나무 가판대로 지어져 있었고 현지인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을 주로 판매했다.
친구들은 동물 털을 사용한 낙타인형이나 게르모양 키링을 주로 구매했다. 나는 천천히 물건들을 구경하다가 쇠로 만들어진 작은 싱잉볼을 발견했다. 여러 번 사용한 흔적이 있는 우드 스틱도 함께였다. 평소 유튜브로 싱잉볼 소리를 틀어놓고 잠에 들곤 했는데 실물로는 처음 봐 반가웠다. 물건 주인인 소녀들에게 싱잉볼 사용법을 전수받고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손바닥만 한 싱잉볼 안에 추억을 담아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내 싱잉볼은 연주될 때마다 바양작의 온도와 풍경을 전해줄 테 였다.
미미와 영이가 모여서 투그릭을 세고 있었다. “우린 다 샀어.” 다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념품을 구매한 모양이었다. 이제 출발하려고 하는데 태태가 안보였다. 태태는 플리마켓 입구 쪽에서 발견되었다. 커다란 낙타인형과 그것보다 좀 더 작은 낙타를 두고 태태는 고민하고 있었다. 과묵한 태태가 귀여운 것에는 열심히였다. 고민 끝에 태태는 두 개 다 사기로 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름다워 보인다는 걸 태태는 알까? 커다란 낙타 하나와 좀 더 작은 갈색 낙타를 품에 소중히 안은 태태는 정말 기뻐 보였다.
입구에서 모두 모여 다시 차에 탑승했다. 마지막 에너지를 끌어모아 일정을 소화한 우리는 얼이 빠져있었다. 푸르공은 저녁에 묵어야 할 숙소가 아닌 다른 곳에 도착했다. 기사님이 더위에 지친 우리들을 위해 축제장에 들른 것이었다. 축제장의 한 가게에서 그토록 찾던 ‘Americano ice’ 문구를 발견했다. 우리는 드디어 얼음 가득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다. 흔들리는 푸르공 안에서 얼음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즐겼다. “고생 끝! 행복시작이야!” 우리는 힘들었던 사막에 대한 기억은 길바닥에 흘리고 시원한 초원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