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박자씨가 사과와 오이를 썰어 내왔다. 푸르공 옆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던 우리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전히 보이는 거라곤 낙타풀이 듬성듬성 자란 모래밭뿐이었다. 양은 냄비에 어슷썰린 오이가 물과 함께 자박하게 담겨있었다. 탈수를 막기 위해 입 짧은 한국인들에게 뭐라도 먹이려는 시도였다. 박자씨의 권유에 못 이겨 사과와 오이를 몇 개 주워 먹었다. 버석한 사과에서 단맛이 났다. 이내 입맛을 잃고 웅크려 앉아 무릎을 붙잡았다.
“뭐 드시는 거예요?” 사막 출신이라던 기사님이 낙타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우적우적 뭔가를 씹고 계셨다. 뒤늦게 그 모습을 발견한 도시 출신 박자씨가 기사님을 말리기 시작했다. “그거 먹는 거 아닐 텐데.” 우직하게 괜찮다는 눈빛을 쏘며 기사님은 우리에게도 씹을 거리를 권했다. 호기심 많은 철이가 배춧잎처럼 생긴 식물을 받아 들었다. 한사코 이 상황을 말리던 박자씨도 포기한 것 같았다. 철이는 “오! 굉장히 맛이 시큼해요. 신맛이 강하네요.”라는 맛 평가를 남겼다. 기사님은 왠지 뿌듯하신 것 같아 보였다.
푸르공은 어느새 풀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잠에서 잠시 깨었을 때 창밖으로 낙타 대신 소나 염소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점차 차 안의 공기가 숨쉬기 편해지고 창문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다. 선선한 날씨가 부드럽게 잠을 깨워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 때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한 뒤였다. 새 캠프사이트의 이름은 ongi energy tourist camp. 이름처럼 기운이 나는 멋진 곳이었다.
몽골의 유목민들은 물이 부족한 환경과 날씨 탓에 우리나라처럼 빨래를 자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나왔던 몽골의 숙소 중 대부분은 침구류가 꿉꿉했다. 동물의 털로 만든 덮개용 담요는 동물 냄새가 났다. 습한 침구류에 벌레가 있어 옷 속에 들어와 피부를 물기도 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현지 숙소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그간 침대 위에 몸을 덩어리처럼 얹고 가져온 외투를 덮어 선잠을 잤다.
그런데 이번 숙소는 그에 비하면 호텔 급이었다. 침구류는 푹신푹신하고 깨끗했으며 커다란 창은 내부의 열기와 습기를 내보내기에 충분했다. 여행자 숙소에 작은 가게도 있어서 먹을거리도 구매할 수 있었다. 박자씨가 재빨리 사다 준 차가운 배 맛 환타를 마시고 나니 비로소 우리가 천국에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샤워실에서 상쾌하게 씻고 나서 옷도 갈아입었다. 특별히 캐리어에 꽁꽁 숨겨 둔 깨끗한 옷을 골라 입었다. 보송보송한 상태로 강이 보이는 벤치에 앉으니 행복했다. 날은 선선하고 바람은 불고 강물이 흐르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