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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Feb 23. 2024

차창 밖은 하루종일 초원

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은 학교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대학생 때에는 학교에서 걸어서 5분이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자취방을 얻어 살았다. 나는 언제나 자빠지면 코 닿을 거리에 둥지를 틀었다. 나에게 있어 차로 장시간 이동하는 것은 명절의 민족대이동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몽골에서의 하루는 다르게 흘러갔다. 해가 뜨면 일어나 노을이 질 때까지 이동했다. 짧으면 4시간 길면 10시간씩 푸르공을 타고 달려야만 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푸르공이 처음에만 재미있지 시력측정 화면 같은 풍경을 8시간쯤 보고 있노라면 누군가 나를 마취총으로 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시간과 공간의 방이 되어버린 푸르공 안에서 우리는 셀프로 뇌의 전원을 끄고 잠을 잤다. 잠시 깨어났던 일행 중 누군가가 “우와-”를 외치고 차가 멈추어 서면 그제야 비몽사몽 차에서 내려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하는 것이 하루의 일과였다. 오랜 수면 탓에 얼굴이 퉁퉁 부은 일행들이 멀뚱히 서서 몰려있는 염소 떼를 바라봤다. 나는 박자씨에게 저 염소들도 주인이 있는지 물었다. “우리가 만나는 동물들은 모두 주인이 있어요.” 확신에 찬 박자씨의 말에 “근처에 주인이 없는데요!”라고 반박하자 “주인은 어딘가에서 무조건 보고 있습니다. 재산이니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박자씨는 유목민들은 눈이 좋아 멀리서 숫자도 셀 수 있다고 했다. 이탈하는 동물은 없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동물을 잃어버릴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 동물들에게 표식이 있기도 하단다. 예를 들어 말은 털에 각인을 하여 어느 집 동물인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염소의 경우 뿔 뒷면에 페인트로 채색을 해둔다.  빨간색 페인트와 파란색 페인트를 각각 칠한 염소들이 사이좋게 풀을 뜯어먹다 밤이 되면 각자의 집에 가는 것이다.


든든한 주인이 있다는 걸 이들도 알아서일까? 초원의 염소들도 개울가의 소들도 차가 지나가도 비켜주지 않는다. 아 일단 이것만 먹고 마시자. 좀만 기다려봐~ 식이다. 처음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는 신기해하며 차가 느릿느릿 동물 사이를 지날 때 환호했다. 그러나 여행 막바지로 갈수록 “비켜라 비켜. 어디 차 지나가는데 막냐~ 우리 가야 돼.”라고 말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몽골은 지붕 없는 외양간. 초원의 주인공은 우리가 아니라 동물들이었다.





3일 차의 목적지는 홍고린엘스였다. 홍고린엘스는 몽골의 고비사막에 위치한 모래 언덕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풀밭이 모래밭으로 변했다. 차 내부가 점점 더워지더니 못 참을 정도가 되었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푸르공의 열을 식혀야 해서 중간에 여러 번 멈춰야 했다. 한 번은 길 한가운데 하얀색의 푸르공이 멈춰있었다. 우리도 그 옆에 멈춰 섰다. 푸르공과 한낮의 태양빛이 만나 만든 아주 작은 그늘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누군가 빨갛게 변한 휴지로 코를 틀어막고 있었다. 코피를 많이 흘려 멈춘 모양이었다. 박자씨가 사막은 건조하기 때문에 콧속을 촉촉하게 유지해주지 않으면 코피가 날 수 있다고 했다. 기사님과 박자씨가 하얀색 푸르공 기사님과 정보를 공유하는 동안 재빨리 립밤을 꺼내 콧속에 바르기 시작했다. 사막이 이렇게 덥고 건조한지 몰랐지. 교과서에서 사진으로 보기만 했던 사막은 생각보다 훨씬 더 더웠다. “어.. 이거.. 시원하다…!” 누군가 생수로 옷을 적셨다. 그러자 너도나도 물을 들고 스카프에 티셔츠에 물을 뿌려 대기 시작했다. 물이 기화하면서 잠깐이라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조함에 눈알이 바삭바삭하고 옷은 축축한 상태로 우리는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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