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새로운 캠프 사이트에 도착했다. 연두빛 언덕 대신 모래 언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햇빛이 연한 모래색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게임 속에 들어온 것같아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새 숙소는 시원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짐을 풀었다. 그러나 전봇대도 없는 곳의 숙소에 에어컨이 있을리 없었고 실내는 마치 건식 사우나같았다. 오늘 일정을 위해서 빨리 숙소에 도착했다고 박자씨가 말했다. 아아. 그 일정이란 건 38도를 오가는 이 땡볕 아래에서 낙타를 타고 사막을 오르는 것이었다. 상체가 발달하고 온열질환에 취약한 태양인이었던 나는 일행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뒤로 도착한 한국인들한테 물어봤는데, 저 사람들은 더워서 내일한대”
“난 진짜 낙타 안타도 돼. 아니면 좀만 쉬고 오후 4시에 하면 안돼?”
“애들아..
우리 이러다 죽어.”
일행 중 몇은 일정을 취소하자는 내 의견에 동의했으나, 몇은 그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6명이 함께하는 여행이다보니 의견을 하나로 모으긴 어려웠다. 박자씨가 라면을 끓여왔고 결국 일정을 미루는 것에 대한 결정이 흐지부지 된 상태로 이야기는 끝이났다. 가족같은 사이도 갈라놓는 더위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일단 조금 쉬기로 했다. 옷과 스포츠타월, 수건을 몽땅 꺼내 물로 적신 뒤 얼굴과 몸에 올려두고 침대에 누웠다. 기절한 것 같이 낮잠 속으로 빨려들어갔다가 눈을 뜨면 창 밖에 아지렁이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 다시 눈을 감아 잠에 들었다.
간절한 태양인의 마음이 뜨거운 하늘에 닿았던 것일까? 박자씨가 우리방에 와서 2시간 후로 일정을 미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때는 지면이 가장 뜨거울 오후 2시였고 모두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이 이유였다. 우리는 침대에 누워 있는 채로 “예.. 너무 좋아요..” 라고 동의했다.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죽어가는 상태로 누워있다 박자씨의 판단으로 일정을 1시간 더 미뤘다. 박자씨가 마지막으로 우릴 찾아온 시간은 오후 5시쯤이었다. 해가 꺾인 사막의 날씨는 여전히 더웠지만 그래도 정오보다는 참을만 했다.
사막 투어 일정의 시작은 낙타타기였다. 낙타를 타러 가기 전 비장하게 중무장을 했다. 과학은 위대하다고 생각하며 2리터짜리 생수를 꺼내들었다. 팔토시에도 옷에도 모자에도 물을 뿌렸다. 살인적인 사막의 날씨를 직접 겪고는 젖은 옷은 금새 말라 시원해진다는 것을 하루만에 익혔다. 박자씨와 함께 여행자숙소 근처의 낙타농장으로 갔다. 박자씨는 낙타를 타지 않고 짐을 지키기로 했다. 우리는 전투에 나가는 것처럼 인사했다. “저희..! 잘 다녀올게요.”
낙타도 말을 탈 때처럼 타는 사람의 키와 무게를 고려하여 탈 낙타가 배정된다. 이번에도 나는 가장 작은 낙타를 배정받았다. 낙타는 생각보다 다리가 긴 동물이다. 그래서 낙타 등에 올라타면 말에 탔을 때보다 높은 시야가 보인다. 낙타를 타고 내릴 때에는 낙상 사고에 주의해야 한다. 낙타는 빠르게 앞 무릎을 굽히고 펴며 일어나고 앉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타에 타고 내릴 때 앞으로 쏠려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곤 한다. 긴장하고 의식적으로 뒤쪽으로 무게중심을 두어야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나는 낙타에 올라타 뒤쪽 혹을 잡고 누워 자세를 잡았다. 내 작은 쌍봉낙타가 일어났고 곧이어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이 보였다.
말은 세단, 낙타는 달구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낙타의 승차감은 좋지 않기로 유명하다. 내가 탄 작은 낙타는 아주 어린 낙타 같았다. 다른 늙은 낙타들과는 다르게 혹이 탄력있고 털이 부드러웠다. 욜린암에서 작은 말을 배정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어린 낙타도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가기 싫은 티를 팍팍 내며 걸어가는 것이었다. 어쩜 이렇게 눈치를 주며 걷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싶었다. 크기가 큰 성체로 보이는 낙타들은 이 직업에 순응하였는지 안정적으로 묵묵히 걸어갔다. 모래 길을 걷는 내내 높은 낙타 등 위에서 떨어질까 무서웠다. 따뜻하고 기름진 낙타의 혹을 꽉 잡았다. 잡은 손에 땀이 찼다.
낙타를 탄 지 30분쯤 지났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속도로.. 어떻게 실크로드를 건넌거지..?’ 말이 다그닥 다그닥이었다면 낙타는 다그. 닥. 다그. 닥. 이었다. 낙타가 너무 느렸다는 후기를 들은 박자씨는 “낙타는 소나 말에 비해서 물이랑 음식 같은거 신경 덜 써도 돼요. 그래서 타요.”라고 말해주었다. 무거운 무역품을 이고 먼길을 다닌 상인들이 있었다는 역사가 전설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