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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Feb 22. 2024

머륵 머륵 머륵

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욜린암(Yoiln Am)에서는 말 타기 체험을 했다. 말을 탈 때는 자신이 타고 싶은 말을 고를 수 없다. 마부가 말의 성격과 손님의 키와 무게를 고려하여 매칭해 준다. 핑크색 패딩을 입은 할머니께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더니 가장 작은 말에 태워주셨다. 내가 탄 작은 말은 금빛 털을 가진 예쁜 말이었다. 내 작은 말은 다른 말들과 속도를 맞추지 않고 느리게 걷거나 괜히 개울가 쪽으로 걸었다. 박자씨에게 말이 가기 싫은가 봐요라고 말했더니 “다시 돌아갈 때는 신나게 가요. 말들도 다 알아요.”라고 말해주셨다. 말도 노동은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우린 혼자 말을 탈 수 없는 초보자들이라 말타기 체험장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직원이 말을 타고 그 말에 다른 말 2마리를 밧줄로 연결하여 끌어주었다. 직원은 볼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는 남자애들이었다. 그중 영어를 할 수 있다는 남자애는 자기 이름이 데무라고 했다. 데무에게 몇 살이냐고 묻자 “14 years!”라고 대답했다. 몽골 청소년은 영어도 잘하고 말도 잘 타는구나 생각했다. 여전히 큰 말을 타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박자씨에게 직원이 14살이라 하더라고 말했더니 “14살 아니에요. 많이 먹어봤자 9살? 일거예요.”라고 답해주셨다. 위엄 있게 말을 몰던 직원들은 어린이였다.





비니와 영이의 말을 끌던 데무는 앞서 나가는 내 등짝을 유심히 보더니 손가락으로 비니를 가리켰다. “비니.” 그리고 또 한 번 내 등짝을 보더니 이번엔 미미를 가리켰다. “미미.” 내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보고 한 말이었다. 여행 한 달 전 몽골 여행을 가는 6명의 얼굴을 캐릭터로 그려 단체티를 제작한 것인데 이렇게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우리는 이름 맞추기 놀이를 하며 히히덕거렸다. 내 말을 몰아주던 어린이는 이름 맞추기 대회에는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말을 가리키며 “머륵!”이라고 알려주었다. 내가 “마륵? 마륵~ 마륵~”하고 따라 하자 약간의 한숨을 쉬며 “머륵. 머륵. 머륵.” 하고 고쳐주었다. 일하기 싫은 작은 말이 자꾸만 엉덩이를 흔들어 욜린암의 풍경이 좌우로 흔들렸고 데무와 비니와 영이는 여전히 깔깔대고 있었다. 평화로운 이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았으면 했다.








말을 타고 평원에서 협곡으로 들어갈 때쯤 허벅지 쪽이 축축해지는 것이 느껴져 당황했다. 말을 탈 때는 오물이 묻을 수 있으니 청바지를 입으라는 여러 블로그 선생님들의 말씀을 듣고 두꺼운 청바지를 골라 입었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말에서 내리고 나서는 무슨 상황인지 남들 모르게 확인했다. 가랑이 부분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손으로 비벼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지린내가 났다. ‘아아.. 아닐 거야..’ 혹시 내가 지렸나 싶어 이리저리 더 살펴봤다. 나중에서야 숙소에서 속옷을 확인해 보고는 다행히도 내 오줌이 아닌 걸로 결론 내렸다. 청바지를 적신 그 액체가 무엇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알고 싶지 않다…



축축한 바지를 뒤로하고 본격적인 욜린암 관광을 시작했다. 욜린암은 사막지형임에도 얼음을 볼 수 있는 계곡으로 유명하다. 박자씨가 그늘 밑에 놓여진 하얗고 커다란 얼음을 보여줬다. 아이스박스에서 꺼낸 것 처럼 네모 반듯한 모양인데 흙과 건초가 묻어있었다. 박자씨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얼음이 이것보다 컸어요.”라며 녹아버린 얼음을 아쉬워 했다. 초원에도 얼음이 있구나. 모든 게 얼어버린다는 추운 겨울의 몽골을 잠시 상상할 수 있었다. 얼음덩어리를 지나 협곡의 끝에 있는 독수리 머리 바위를 보러 갔다. 독수리 머리 바위 위로 진짜 독수리가 날아다녔다. 욜린암이 ‘독수리의 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더니,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독수리가 우릴 지켜보고 있으니 괜히 긴장되었다.





협곡의 끝에서 잠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옷을 털고 일어나 걸어서 되돌아갔다. 되돌아가는 길에 군데군데 보이는 ‘오워’가 흥미로웠다. 오워는 우리나라의 등산길에 있는 돌탑을 닮은 돌무지다. 크기가 크기 때문에 방향을 찾기 힘든 초원에서는 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우연히 오워를 만난 여행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돌탑이기도 하단다. 박자씨가 우리에게 돌을 3개 들고 오라고 했다. “돌을 세 개 던지면서 좋다, 안 좋다, 좋다. 라고 말하는 거예요.”라고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도 오워를 돌며 ’좋다, 안 좋다, 좋다.‘ 꽃잎을 뜯으며 점을 보듯이 돌을 던졌다. 여행의 안녕을 빌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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