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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은별 Feb 22. 2024

행운의 화장실 요정

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언젠가 교과서 속에서 게르를 본 기억이 있다. 하얗고 둥글둥글하게 생긴 집이 귀엽고 신기하기만 했다. 사회문화 선생님이 설명하시는 대로 ‘이동식.. 주택..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라고 필기했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궁금해해 본 적이 없었다. 전날 뒤척인 잠자리 위에 앉아 까칠한 양모 이불을 매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딱한 매트리스가 깔린 침대 3개와 난로가 보였다. ‘아.. 화장실이 없네..’ 게르에 벌레가 많다는 것도, 현지의 열악한 화장실 환경도 알지 못하고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몸소 겪어야 여행이라는 마음과 당장 내가 용변을 봐야 한다는 현실은 마치 이성과 감성처럼,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전날 밤 미리 알아둔 화장실은 게르에서 초원 쪽으로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있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에 가로등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에 밤에 혼자 화장실에 가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잠들기 전 물을 최소한으로 마시기도 했다. 큰 결심을 하고 물티슈를 챙겨 비니, 영이와 함께 화장실로 떠났다. 파란색 컨테이너 박스에 나무 문이 달려있었다. 나무 문이 삐걱이며 자꾸만 열려 서로가 돌아가며 문을 발로 눌러 주었다. 몽골 화장실 난이도는 파리의 수로 결정된다. 파리가 많으면 콧구멍에 들어갈까 무서워져 난이도가 올라간다. 이번 간이식 화장실은 파리가 5마리 정도이니 쾌적한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거기다 이 화장실은 작은 플라스틱 변기가 있고 물을 내리는 것이 가능했다. 허허벌판에서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가이드 박자씨가 첫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를 하기 전에 세면대에서 씻으라고 일러주셨다. 캠프사이트 가장자리에 덩그러니 간이 세면대가 놓여있었다. 간이 세면대 위쪽에 달려있는 물통에 생수를 부어 넣고 아래에 달려있는 수도꼭지를 위로 들어가며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수도꼭지가 마치 햄스터 물 급여 장치처럼 생겼다. 생수를 붓기만 하면 수도꼭지에서 물이 졸졸 잘 나오는데도 나는 세수를 쉽사리 하지 못했다. 물통에 벌레가 둥둥 떠다녀 차마 그 물을 쓸 수가 없었다. ‘너도..?’라는 마음을 텔레파시로 공유한 우리는 세면대를 포기하고 서로 생수병을 기울여주며 세수하기 시작했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폼클렌징 사용은 사치다. 그저 눈곱만 떼고 입가만 물에 적시는 정도로 세안을 마쳤다. 그런데도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너도 나도 피부가 좋아진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물기 어린 볼에 닿아 시원했다. 의외로 양치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양치는 세수보다 물이 많이 필요했다. 난생처음으로 입을 5번 헹굴까 6번 헹굴까, 한 번 더 헹궈도 되는 걸까 고민했다. 쓸 수 있는 물의 양을 쪼개고 쪼개 여러 번 입을 헹궜다. 입 안을 헹구는 것보다도 칫솔을 헹구는 것이 더 어려웠다. 영이는 물통에 물을 조금 남겨 칫솔을 넣고 흔드는 것으로 세척을 완료했다. 영이는 천재가 아닐까? 모두의 극찬을 받았다.


다사다난하게 준비를 마치고 우리는 차에 탑승했다. 다음 장소인 욜린암으로 6시간 이동해야 했다. 차로 이동하다가 용변이 급하면 차 문을 박차고 나가 대자연에서 해결하거나 주유소를 들렀을 때 해결해야 한다. 주유소마다 화장실은 항상 있었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보통 푸세식 화장실로 수도 시설 없이 오물이 아래로 쌓이는 식이었다. 엉덩이 아래로 보이는 깊이가 매우 깊어 어떻게 이 아래를 팠는지, 어디로 연결되는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주유소 화장실은 대체로 20마리 이상의 많은 파리들이 날아다녀 불안감을 조성해 난이도가 높았다.


몽골에 유목민들만 살지 않듯이 모든 화장실이 푸세식 화장실인 것은 아니었다. 물 공급이 가능한 식당이나 도시로 가는 길의 휴게소에는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화장실은 여행자 숙소들이었다. 특히 유명한 관광지일수록 깨끗했다. 하지만 나방이 날아다녔다. 나방은 얌전하기 때문에 주접을 떠는 파리처럼 화장실 사용 난이도를 높이지는 않았다. 다만 변기에 앉았다 일어서는 모든 순간에 나방의 날개에 그려진 눈과 아이컨택을 해야 했다. 몽골 여행 2일 차. 벌써 몽골 화장실 전문가가 되어버린 우리는 사용감이 편안한 화장실을 발견하면 일행이 쾌적한 시간을 갖도록 격려하곤 했다. “화장실..! 물 나옵니다..!” 나는 이들을 행운의 화장실 요정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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