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바가 가즈린 촐로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후 뱉은 우리의 첫마디는 ‘우와-’였다. 그래. 우와 정도는 하려고 해외여행 나온 것 아니냐 감탄하면서도 저 모퉁이는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닮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하며 피식 웃었다. 바가 가즈린 촐로는 평원에 있는 화강암 지대로 볼거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들어가면 몸이 차가워질 정도로 깊숙한 동굴이고 둘은 화강암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는 샘물 구멍이다.
먼저 방문한 동굴은 겉보기에 충분히 신비로와 보였으나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 넓적한 바위 하나를 골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친구들을 기다리며 화강암 지대와 하늘이 맞닿는 부분의 모양새를 찬찬히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굴 구경을 마친 철, 태태, 미미, 영, 비니가 줄줄이 나왔다. 비니가 나와 같이 하늘을 보더니 “저거 상현달이지.” 말했다. 내가 그래 맞아 상현달이야 맞장구를 쳤다. 가이드 박자씨도 껴들어 “저건 갈비달이라고 해요.” 말했다. 둥근 보름달을 갈비처럼 뜯어먹어 갈비달이란 말인가. 고기를 주로 먹는 몽골의 달 이름으로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으로 보러 간 것은 '눈의 우물'이다. 박자씨는 암반 위로 뛰어올라 서서 즐겁다는 듯이 “자 여기 우물이 있는데 찾아보세요!”라고 말했다. 6명의 한국인들은 모두 재빨리 “여기요!” 말하며 틈을 주지 않았다. 우물은 어쩌고 저쩌고 한 역사 때문에 우물물을 눈두덩이에 바르면 눈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박자씨는 시기에 따라 샘물이 말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하며 우린 운이 좋다 말했다. 박자씨 말대로 우물 구멍을 들여다보니 물이 퐁퐁 솟아나고 있었다. 박자씨가 눈에 바르라며 쇠 숟가락으로 물을 떠 두 손바닥에 담아주었다. 우리는 샘물에 있을지도 모르는 귀여운 미생물들을 상상하며 박자씨 몰래 바르는 척만 했다.
실은 동굴도 우물도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다. 일행 중 몇이 뒤처지기 시작했고, 뒤에서 몰래 딴짓을 하기 시작했다. 박자씨는 그런 우리 마음을 모르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빠른 속도로 걸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다는 진부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여차 저차한 이유로 꼭 봐야 한다는 사원까지 털레 털레 따라가 감상했다. 그런데 사원을 지나고 나서 박자씨는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밍기적밍기적 경치를 구경하며 걷는 우리를 재촉하기까지 했다. 박자씨는 우리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로 뛰었고 산등성이를 금세 올랐다. ‘너무.. 빠르다..!’ 허겁지겁 따라 가 도착한 곳은 바가 가즈린 촐로 정상이었고 우리는 때마침 지는 노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 예쁘다..”
박자씨는 이번에도 수줍게 “이거 보여주려고 빨리 올라왔어요.”라고 말했다. 지는 해의 반대편에는 새하얀 갈비달이 높게 떠 있었고, 노을빛이 화강암 덩어리 사이사이를 붉게 물들이며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해가 지평선에 걸쳐 남은 빛을 쏟아낼 때, 그 빛을 받은 땅 위의 풀들이 모두 반짝였다. 초원은 넓은데 노을빛은 더 환해서 저 멀리 땅 끝에 있는 풀잎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바위는 따뜻했다. 내 옆에 미미, 영이, 비니가 조로록 앉았다. 해가 완전히 져서 하늘이 청람색이 될 때까지 노을을 함께 바라봤다.
‘역시 몽골은 조금 다른 것 같아. 우리 몽골 오길 참 잘했다.’
아름다운 풍경의 여운을 가지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우리의 몽골몽골 한 마음과는 다르게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처음 방문한 여행자 캠프는 인원이 다 찬 것인지 차에서 내려보지도 못하고 곧바로 떠나야 했다. 박자씨와 기사님은 해가 진 후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초원을 달리며 숙소를 찾았다. 겨우 숙박이 가능한 숙소를 찾았고 우리는 캐리어를 옮겨 체크인했다. 하얀 게르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 이게 바로 우리가 묵을 게르구나! 소문으로만 듣던 게르 안의 침대에 짐을 놓고 나니 몽골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방 안에서는 낙타 냄새가 났다. 은은한 낙타 냄새도 침구류의 두텁고도 부드러운 카펫 느낌도 마음에 들었다.
게르의 모든 전기가 12시가 넘으면 꺼진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우리는 재빨리 짐을 정리하고, 게르 기둥에 있는 콘센트에 가져온 멀티탭을 연결해 휴대폰과 보조배터리를 충전했다. 그런데 툭- 툭- 비 오는 소리가 났다. 게르 천장에 있는 환기구멍인 턴(TOOHO)을 바라보았다. 손바닥을 이리저리 가져다 대어봐도 비는 오지 않았다. 다시 짐 정리를 하는데도 빗소리가 계속 나서 게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비는 오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빗소리의 원인을 알 수 있었는데, 그건 검은 딱정벌레 소리였다.
게르는 환기를 위해 천장에 구멍(TOOHO)을 남겨두고, 벽면의 덮개를 바닥에서부터 2cm 정도 띄워놓고 덮는다. 바람이 아래에서 위로 순환하는 구조이다. 딱정벌레들은 이 벽면의 아래틈을 통해 들어와 게르 벽면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다. 벽면을 즐겁게 타고 올라가다 경사가 급한 천장에 도착하면 제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 툭- 떨어지는 것이었다. 몰라야 재미있는 여행이라더니, 몽골 여행을 추천한 지인 중 그 누구도 벌레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오늘 묵을 게르 안에는 족히 50마리의 벌레가 있었고 나는 이들과 잠을 함께 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크록스를 신고 미친 듯이 벌레를 밟고 다녔다. 대자연에 와서 이 무슨 살상이냐는 마음 반, 내 조상 중 누군가가 벌레를 무서워했을 테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 반이었다. 벌레를 몇십 마리 잡고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쯤 되면 내가 아닌 딱정벌레들이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 분명하다.) 게르 안의 따뜻한 불빛 때문에 벌레가 들어오는 거라고 생각하고 문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게르 밖은 초원. 풀숲을 돌아다니던 벌레가 마침 뚫려있는 게르 바닥을 통해 우리 방에 입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당장 캐리어를 잠그고 온갖 가방의 지퍼를 잠가두었다. 나는 전투태세로 침대에 걸터앉아 불안해하고 있었다.
몽골에서 은하수를 꼭 보고 싶다던 철이는 벌레가 무섭지도 않은지 게르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별을 보러 가자고. 다 포기하고 친구들을 따라 밖에 나가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몽골에서 별을 보려면 보름을 피해서 가야 한다. 달이 밝은 보름에는 별빛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다행히 갈비달이 뜬 이날은 아직까지 달이 밝지 않아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6명이 모여 은하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철이와 나는 친구들이 게르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도 아쉬워했다. 처음 보는 은하수도 계속해서 떨어지는 별똥별들도 왠지 오늘만 볼 수 있을 것 같아 이 순간이 아까웠다. 철이와 나는 캠프 사이트의 모든 게르의 불이 꺼질 때까지 숨죽여 사진을 찍었다.
별 사냥을 끝내고 조용히 게르로 들어와 침낭에 몸을 쑤셔 넣었다. 덥고 습한 초원의 밤 날씨에는 침낭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무 더운 탓에 밤 사이 여러 번 깼지만 침낭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벌레가 하늘에서 떨어지잖아.’ 딱정벌레가 금방이라도 자는 내 얼굴에 떨어질 것 같았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잤다. 벌레와의 사투가 벌어졌던 그 밤 사이가 무색하게 아침은 밝았고 어제와 같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유목민처럼 또 다른 곳을 향해 갈 준비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