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가야 재미있는 몽골여행
앞으로 펼쳐질 몽골 여행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칭기즈칸 공항 밖을 나왔다. 그저 지인이 이야기 한 '몽골만의 낭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3시간의 짧은 비행을 마치고 처음 본 몽골의 하늘은 너무나 푸르고 탁 트여서 모두를 신나게 했다. 몽골의 첫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일주일간 함께 할 가이드 박자씨는 대자연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는 것에 벅차 있는 일행들을 양 떼 몰듯이 주차장으로 인도했다.
“벌써 몽골에 다시 오고 싶을 정도예요!”
내가 몽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성급하게 감상평을 이야기하자 박자씨는 수줍게 “감사합니다. 우리가 탈 차는 이쪽으로.” 답해주었다. 어떤 차일까? 기대하며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몽골은 땅이 넓고 도로가 잘 닦여있지 않아 개인이 여행하기 어려운 나라다. 그래서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여 여행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 일정 대부분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기에 여행자들은 좋은 차가 배정되기를 바라곤 한다. 초원 한가운데 차가 고장 나 멈춰 서는 것은 꽤나 공포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자들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스타렉스와 푸르공. 스타렉스는 신식이라 푸르공에는 없는 에어컨이 달려있다. 에어컨은 날씨가 변화무쌍한 몽골을 여행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푸르공을 선택했다. 스타렉스보다 예쁘기 때문이다.(감성은 여행에서 중요하다.) 푸른 몽골 하늘이 절로 떠오르는 이름을 가진 푸르공은 원래 러시아 군용차였다. 간단한 내부구조와 튼튼한 차체로 몽골의 비포장도로를 단순 무식하게 잘 달리는 탓에 관광용 차로 유명해졌다. 처음 만난 우리의 푸르공은 다른 푸르공들과 다르게 정말 진한 국방색을 뽐내고 있었고 그 특별함이 마음에 들었다.
“얘들아, 우리 푸르공은 더 예쁘다.”
그렇게 예쁜 우리의 국방색 푸르공이 남들이 탄 푸르공보다 조금 더 낡았다는 것은 여행이 마무리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연륜이 있어서인지 우리의 푸르공은 사고 한 번 없이 7일을 잘 달려주었다. 푸르공에 짐을 싣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시동을 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세는 일이었다. 패키지여행의 잔금을 치러야 했다. 일행 중 맏이가 달러를 착착 걷어 박자씨와 돈을 세기 시작했다. 바람이 세게 불어 혹여나 돈이 날아갈까 차 안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국방색 푸르공과, 달러와, 낯선 장소가 어우러져 이 일이 마치 불법 같고 은밀해 보이게 했다. 맏이가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 동생들은 차 주변을 맴돌며 춤추듯이 사진을 찍었다. 여행은 이렇게 낯설고도 신나는 일이었다.
준비해 온 달러에 문제가 없었고 정산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우리는 차를 타고 달려 울란바토르 남쪽에 있는 준모드에 도착했다. 박자씨의 고향이기도 한 준모드에 장을 보러 왔다. 처음 보는 몽골의 작은 도시 모습이 낯설었다. 우리와 닮은 듯 닮지 않은 사람들이 돌아다녔고 우리는 영락없는 이방인이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면 실례일까 힐끔 보다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박자씨 뒤를 따라 이동했다. 몽골 패키지여행의 시작은 ‘장보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첫날 장을 보는 것은 중요한 일정이었다. 일단 초원으로 달리기 시작하면 큰 마트를 방문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며칠간 먹고 사용할 것들을 한 번에 구매했다. 일행 중 누구도 몽골의 식재료나 생필품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온 사람이 없어 장바구니도 간소했다. 우리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마시고 먹었다.
첫날의 일정은 ‘Baga Gazariin Chuluu’(바가 가즈린 촐로)에 가는 것이었다. 준모드에서 5시간 정도 이동해야 했다. 푸르공은 우리의 무거운 24인치 캐리어들과 식량을 싣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타 본 푸르공은 재미있었다. 운전석과 조수석 뒤편으로 의자가 3개는 순방향으로, 3개는 역방향으로 되어 있어서 일행과 식탁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하듯이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는 다들 지친 기색 없이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초록 풀밭을 감상했다. 창 밖으로 동물이 보이면 사진을 찍고 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시간을 보냈다.
차는 가끔 유목민 게르에 멈춰 섰다. 박자씨와 기사님은 친밀하게 집주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를 길게 나누곤 했다. 우리는 눈치껏 쉬는 시간임을 알아채고 차에서 내렸다. 스트레칭도 하고 외지인을 구경하러 나온 어린이들과 인사도 했다. 박자씨와 기사님이 대화를 마치고 차에 타면 우리도 차에 다시 탑승해 출발하는 식이였다. 박자씨에게 “아까 그 게르에 사는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라고 물었더니 “아뇨, 모르는 사람이에요!”라는 천진난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렇게 살갑게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최소 먼 친척은 될 줄 알았더니 아니란다. 들어보니 기사님도 몽골 길을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길을 묻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라고 한다.
유목민 게르에는 대부분 커다란 개가 있었다. 덩치가 대단해 두 발로 서면 성인 키만 한 개들이다. 게르에 낯선 차가 오면 주인보다 먼저 나와 동태를 살핀다. 몽골의 개들은 주인을 늑대와 여러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사납다고 한다. 특히 사람을 무는 개는 빨간색 스카프를 묶어둔다고 한다. 우리가 보기에 너무 순해 보이는 개들도 박자씨는 항상 “개 위험해요. 뒤로 물러나세요.” 하고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하셨다.
게르에는 개 말고도 어린이들도 있었다. 볼이 붉은 어린이들이 낯을 가리자 박자씨는 마트에서 사 온 사탕을 꺼내 주었다. “요만큼은 우리도 먹고, 이거는 저 아기 가져다주세요.” 나는 제일 큰 언니로 보이는 여자 어린이에게 “센베노!”(안녕하세요.) “세노!”(안녕!) 하며 슬쩍 다가갔다. 사탕을 보여주고 작은 손바닥에 흘리지 않게 쥐어주었다. 센베노, 인사말에 반응하지 않던 여자 어린이는 우리가 떠날 때 사탕을 꼭 쥔 채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처음 해 본 장거리 이동은 이색적인 경험들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았고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목적지인 ‘Baga Gazariin Chuluu’(바가 가즈린 촐로)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