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크하드 Jan 25. 2024

한 여름 한낮에 태어난 망아지

그림 - 놀이터 죽순이 망아지

결혼 4년 만에 안겨드린 귀한 첫 손주라

이름에 사주까지 받아오신 어머님.

60년 만에 돌아온 청말띠에 태어난 첫째.

말이란 동물처럼 굉장한 끼와 진취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라고 했다.

건강하고 활력 있는 생동감을 가진 말, 딱 첫째를 설명할 수 있는 동물이다.


덩치는 조그마한데 어찌나 활동적인지 

한돌 전에 걷기 시작해서

두돌 전에 서서 그네를 탄 녀석.

세돌 전에 이미 낮잠을 안 자는 

하루 24시간 각성상태 그게 첫째였다.


점집에서는 얘는 절대 가둬서 키울 수 없는 아이라고(국내도 좁단다. 해외로 나갈 상이라고 했다.)

기를 조금 눌러줘야 한다며

이 이름 외에는 안 된다며

순한 이름 하나만 점지해 주셨고

다른 이는 여러 이름 받아서 선택하느라 힘들었다는데 

나에게는 그런 골라먹는 재미 따윈 주지 않은 첫째였다.


한번은 같은 어린이집 동기 엄마들과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눈 적이 있다.

놀이터에서 미친 듯이 뛰놀고 있는 첫째를 보며 

같은 또래 청말띠 너희 아이들은 얌전한데 우리 애는 왜 저렇게 망나니처럼 뛰노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했더니

나보고 첫째가 몇 시에 태어났냐고 물어보더라~

오전 11시쯤이라고 하니 그때부터란다.

말들이 해가 뜨기 시작해서 몸에 활력이 붙어 뛰어 달리는 시간 대가.

오 마이갓!!!! 제왕절개인데 이럴 줄 알았으면 

태어나는 시간도 저녁때로 받아 오는 건데~


초등학교 입학 후 MBTI검사 결과지를 가져왔는데 ENFP 스파크형이란다.

"열정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사람"

이거에 대한 비화가 있다면 1학년 2학기에 전학을 하게 된 첫째.

나도 전학 보내는 건 처음이라 생각이 짧았다.

전학을 하기에는 학년이 시작하는 1학기 전이 좋다는 것을 나중에 들은 것이다.

2학기 시작되면 이미 1학기때 애들끼리 친해져서 그 틈바구니에 끼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이사한 후 한 달 정도 지났을 때였나

"엄마, 학교 다닐 때 인싸였어?"

"어?? 아.. 아니 아싸였는데... 그건.. 왜?"

"동네 엄마들 많이 사귀었냐고~~"

"아니 아직~~ 넌? 학교 친구들 많이 사귀었어?"

"난 핵인싸지~~ 엄마 인싸되는 방법 가르쳐줄까?"

라고 나를 되려 걱정하는 첫째.


그리고 초여름이 시작되니 ENFP의 끝판왕을 보여주게 된다.

첫째 학교 수업이 1시에서 2시 사이에 끝나는 데

적게는 하루 3시간에서 최장 5시간 밖에서 노는 아이


배고프면 간식이라도 먹으러 집에 들어오겠지 싶어 

돈 한 푼 안 쥐어줘도 굶어가며 놀고,

비 오면 곧장 집에 들어오겠지 했는데 

친구들과 빗속에서 물놀이하며 놀면 안 되냐고 전화하고,

여름이라 답답하다며 신발은 저 멀리 던져놓고 양말 신은 발로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매일 밤이면 이게 신발밑창인지 반지의 제왕의 새까만 호빗 발을 하고 오는 첫째에 내가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초등학교 방과후 방송댄스나 피아노 학원 등 예체능 위주로 보내고

엉덩이 착석해서 공부하는 학원에는 아직 안 보내는 중인데

요즘엔 학원이라는 울타리에 첫째를 집어 넣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한여름에 한낮에 태어난 망아지 첫째 딸의 고삐를 

내가 과연 언제까지 부여잡을 수 있을지 내 딸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 에필로그 > 그 이후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황금돼지띠에 아이가 태어났으니 

엉덩이 무겁고 진득한 강아지상 둘째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고 귀엽고 무서운 스토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