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 9

[Chapter 3 : 본질] - 1

by Chris Paik 백결

[9/15]


「…별은 저렇게나 작은데 어떻게 깜깜한 밤하늘 속에서 보일까요?

별은 작지만, 항상 빛을 내죠. 그러니 어두컴컴한 밤에 더 잘 보이는 것이에요. 밝게 빛나는 건 너무나 어두워 앞이 보이지 않을수록 비로소 가치를 얻게 되니까요. 작지만 빛나는 저 별처럼요.」

교도소에서 복역 중일 때 읽었던 소설, <아름답다는 시선>의 내용 중 일부였다.


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피에르 록시 작가의 소설 중에서도 과연 명작이라 불리던 작품으로, 집에 있던 수필집과 같은 작가라 한번 읽어봤는데 수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저 부분 빼곤 기억이 잘 안 난다.


참고로 위 문단은 실감 나는 묘사를 곁들여 현실적인 범죄소설을 주로 쓰던 피에르 작가의 글 중 유일무이하게 독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문단이었다. 자극적이고 암울한 글만 읽던 그의 열혈 팬들에게 잠시나마의 마음의 안정을 선물해 주는 장면으로 나름 유명한 문단이었다. 물론 바로 뒤에 ‘별은 작지 않다’라며 유치하게 분위기를 깨는 대사가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명확하게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그러니까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하고 눈치가 없는) 인물의 설정을 반영한 말이었으므로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부분이었다.


1년이 통째로 지워졌다. 1년이라는 징역 생활은 허무할 정도로 아무 일 없이 흘러갔다. 어쩌면 내 인생에 없어도 됐을 정도로 아무 일도 없었던, 의미 없고 심심했던 시간이었다. 22년 형을 받은 나였지만. 수감 이후 진행된 조사에서 정말로 올리브와 코번트리 백작의 투신임이 드러나 곧바로 풀려나게 되었다.


금발 머리 사건은 추가 목격자가 없고 이미 그녀가 자살한 것으로 사건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벌은 받지 않았지만, 누명을 쓰고 징역을 산 것에 대한 보상금 230파운드는 청구하지 않았다.


근 1년간 혼자 지내며 더 이상 실수로라도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냥 평범하게, 아주 평범하게 살다 죽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 삶의 문제로 골치 아파지면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을 듯했다.


그간 여러 책을 읽었다. 교도관이 매일 같이 갖다주는 잡지는 모든 재소자가 읽기엔 부족했지만, 인기 있는 상품은 아니었던지라 며칠은 귀찮아서 읽지 않았을 뿐, 부족해서 못 읽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간 읽었던 수많은 잡지 중 기억에 남는 잡지는 단연 이것이다.


「‘기억 환각 장애 : 정신병의 한 질환으로 과거에 경험한 어떠한 기억이 환각으로 보이는 현상인 ‘기억 환각’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장애.’

최근 의학계에서 뜨겁게 화제 되는 새로운 증상이 발견되었다. ‘기억 환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증상은 환각 중에서도 자신이 겪은 경험 등이 눈앞에 환각으로 펼쳐진다는 특이점으로 순식간에 전문가들의 이목을 끌었다. 기억 환각을 반복하여 경험하는 것을 기억 환각 장애라고 부른다. 누구에게나 강렬한 기억은 있다. 행복한 기억일지 불행한 기억일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과거의 기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자신의 가장 강렬한 기억일 것이다. 그랬던 과거가 눈앞에 환각으로 나타나는 기억 환각은 그 기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받아들여지는 정도가 다르다.」


1928년 12월 10일 오전.


교도소를 나오니 수많은 기자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누명을 쓴 채 오랜 시간 복역하다가 끝내 무죄를 인정받고 출소하는 나를 보러 모여든 것이었다. 때문에, 안 그래도 좁았던 거리는 더 좁게 느껴져 한겨울에도 후덥지근했다.


그 사람들은 내게 격려와 환호를 보내왔다. 어떤 이는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재판 당시 나를 경멸 가득한 눈빛으로 보던 사람들은 내게 꽃을 뿌렸다. 그들은 유감을 표했으나, 그 눈동자에서 여론에 휘말리며 느끼는 불안함과 거짓된 위선이 비쳐 보였다.


집에 오니 옛날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낡아서 떨어지기 직전인 주문함에는 그동안 내가 수감 되어있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의 주문서와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의 항의서가 몇 장 쌓여있었다. 1년간 손대지 않은 신문은 날짜를 보니 내가 복역한 날 이후로 약 15일간 계속 오다가 그 뒤로는 오지 않은 듯했다.


서늘한 바람만이 한기를 몰고 와 거리를 삼켰다. 마치 폐가같이 방치되어 버린 집을 뒤로하고 발프 병원으로 향했다. 1년간 다니지 않은 길이었지만 몸이 기억하고 곧바로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 하나하나가 낯설어 오는 내내 다리가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발프 병원은 그새 시설 대부분을 개선해 둔 모양이었는데, 병원 뒤쪽 싸늘하게 남겨진 올리브의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나는 올리브의 자리에 쌓여있는 먼지를 대충 털어내고 사뿐히 앉았다. 해를 등지고 있어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고 차가운 칼바람만이 스쳐 지나가는 이곳은 너무나 추웠다.


올리브는 지금까지 버려진 신문을 주워 자리에 깔거나 이불로 삼은 모양이었다. 소복이 쌓인 신문 더미에는 그가 살아있던 1927년 10월 자까지의 신문도 보였지만, 그 뒤로 나온 신문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그가 깔아 둔 신문을 움켜잡고 살짝 들어 올렸다. 비도 맞지 않고 그대로 보존된 옛날 신문들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차가운 바람에 코가 얼고, 귀가 얼고, 손이 얼고 있었지만, 나는 작은 호기심에 시작한 그 신문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복역 중이던 1년간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었고, 나는 이 신문으로나마 친숙한 과거를 엿볼 수 있었다.


[신문 기사 / 1927년 9월 23일 자]

「‘킹스크로스 살인사건, 두 명 사망. 킹스크로스역 일부 봉쇄….’」


이 이야기는 다시 꺼내지 않는 걸로 하자.


[신문 기사 / 1927년 9월 27일 자]

「‘킹스크로스 살인사건, 범인이 한 명 살해 후 그 자리에서 자살…. 사건 종료.’」


이 위대한 오보 덕에 난 더 오랫동안 펜턴빌에서 썩지 않아도 되었다.


[신문 기사 / 1927년 10월 3일 자]

「‘지난 1일 열렸던 세인트 케이든 연회에서 테러 발생…. 총 두 명 사망….’」


난 말없이 이들을 추모했다.


[신문 기사 / 1927년 10월 5일 자]

「‘그레이헤븐 기숙 학교 교장 ’해밀턴 엘리노어 애쉬튼‘ 부인, 지난 1일 세인트 케이든 연회에서 총을 맞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결국 숨져….’」


서리 부인은 여성 교육의 선두자였다. 그녀의 신조가 뚜렷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서리 부인이 죽자 그레이헤븐 기숙 학교의 학생들이 단체로 세인트 케이든 궁과 거리로 몰려와 그녀를 추모하느라 시내가 소란스러웠었지.


[신문 기사 / 1927년 10월 14일 자]

「‘세인트 케이든 연회 테러범 ‘코번트리 에드윈 테오도르’ 백작 도주…. 진술하지 않는 테러의 목적, 대체 왜?’」


대부분 신문은 같은 세상에서 일어난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 만큼 생소했지만, 그레이스와 금발 머리가 죽은 사건과 세인트 케이든 테러 등 아직도 내 마음을 움켜잡는 사건들도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신문에 박힌 바닐라 향 활자들은 세인트 케이든 궁전 연회 때 있던 독 탄 와인과 서리 부인를 죽인 총알은 사실 전부 나를 향한 것이었고, 코번트리 백작이 나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짓이었다는 것이라는 걸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몇십 줄은 되어 보이는 본문은 코번트리 백작은 곧바로 도주하여 지금 경찰이 쫓고 있다는 문장으로 끝을 맺었다.


올리브도 이 신문을 읽었을 테니, 그날 그가 왜 우리 집으로 찾아왔는지도 추측할 수 있었다.


[신문 기사 / 1927년 9월 20일 자]

「‘런던에 위치한 발프 병원에서 약물 중독으로 인한 피해자 발생…. 유력 용의자는 해당 수술치료를 담당한 의사 ‘그레이스 리디아 아나리스’….’」


유독 눈길을 끄는 신문이었다. 9월 20일이라면 고작 ‘기억의 날’보다 사흘 전이었을 뿐이다. 발프 병원과 그레이스가 함께 나오는 신문 기사였기에 나는 눈을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본문을 읽어 내려갔다.


「런던 발프가에 위치한 발프 병원에서 독성 약물에 중독으로 인한 피해자가 나왔다. 피해자는 50대 중반의 여성, 르노라 스칼렛 록시 부인. 그녀는 해당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그레이스 리디아 아나리스 씨의 수술을 받은 후 약물 중독으로 하반신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괴사 됐고, 온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현재는 지금까지도 생사를 오가는 식물인간이 된 상태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의 의식만은 살아있으나, 담당의인 그레이스 씨가 직접 독성 약물을 과다 투여했다는 증거가 충분치 않아 그녀가 유죄를 선고받기에는 어려운 상태이다. 피해자의 남편, 피에르 아르튀르 록시 씨는 현장에서 이제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아내를 끌어안고 서럽게 오열하여 보고 있던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록시 부부에게는 자녀가 없기에 피에르 씨의 외롭고 쓸쓸한 미래가 걱정되는 바이다.」


신문을 읽는 동안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나는 올리브가 깔아 둔 신문들을 뒤져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의 기사를 찾았다.


[신문 기사 / 1927년 9월 22일 자]

「그레이스, “약물을 투여한 것은 본인이 아니다.” 주장…. 제삼자의 개입 가능성 제기.

발프 병원 약물 과다 투여 사건의 범인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듯하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던 그레이스 씨는 법정에서 “본인은 약물을 과다 투여 한 바가 없다”라고 주장했고, 르노라 부인의 저택에서 발견된 다른 이의 발자국, 주인을 알 수 없는 수상한 지문 등으로 그녀가 누군가에게 독살당하고 병원으로 실려 왔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한 본 재판에 르노라 부인의 남편인 피에르 씨가 참석하지 않고, 그녀의 동생 버디 부인이 대신 참석하여 많은 이들이 피에르 씨의 행방을 걱정하고 있다.」


그날은 ‘기억의 날’ 하루 전이었다. 신문 본문 아래 첨부된 작은 두 장의 흑백사진에는 록시 부부의 얼굴이 각각 새겨져 있었다.

록시 부인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반병신이 되어서는 누워서 천장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피에르의 사진은 옛날에 찍어둔 것 같아 보이는 그의 깔끔한 사진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매력적인 콧수염, 50대 중반 같아 보이지 않은 젊은 헤어스타일을 가진 모습이었다.


나는 그가 감옥살이 중 읽었던 소설, <아름답다는 시선>과 ‘기억의 날’에 눈을 뜬 후 가장 처음으로 읽었던 수필, <흑백기억>의 저자임을 단번에 알아챘다.


햇빛 한 점 들지 않았던 올리브의 자리에는 해가 자리를 옮기면서 슬슬 밝아지기 시작했다.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바람은 여전히 차가웠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오니 아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방치되어 지저분한 줄 알았던 거실에는 누군가 무언가를 마구 뒤지고 간 흔적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악취 또한 가득했다. 곧바로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코를 틀어막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음식들은 썩을 대로 썩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긴 시간 동안 아무도 손대지 않아 집안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먼지를 한없이 들이마시며 집을 청소하는 그 시간에도 그레이스 사건, 연회장 사건 등 짧지만 굵었던 기억들이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벌써 몇 년 전 일. 단 며칠 동안 순식간에 지나간 일이었지만 그것이 내 마음에 남겨둔 미련은 대단히 컸다.


낡아빠져 군데군데 가죽이 벗겨진 작은 소파를 들어 올려 그 아래 쌓여있는 먼지를 털어낼 때 뜻밖의 물건을 발견했다. 작은 목에 거는 이름표가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빗자루 끝에 걸린 것이었다. 루시의 이름표였다.

1년간 밥 한번 준 적이 없으니 루시는 죽었을 가능성이 컸으니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이름표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다니엘은 도피 속에서 이 녀석을 왜 데리고 온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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