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 고착] - 3
[7/15]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던 연회도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음새꽃’입니다.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이라는 꽃말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에 걸맞게 꽃도 너무 예쁘지요?”
턱시도를 차려입은 바텐더가 주문받은 음료를 제조하다 말고 식탁 위에 있는 작은 화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화분에는 작은 노란 꽃 두 송이가 곱게 피어있었다. 화분에 비해 작은 크기에 나는 이 꽃들이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텐더는 이제 이 꽃들은 질 일만 남았다고 덧붙였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연회가 며칠이 지난 시점에, 로즈를 다시 만난 건 삼십 분 전이었다. 조금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작업실에 조용히 앉아 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연회가 끝나고 며칠간 얼마나 정신병에 시달렸던가. 하얀 가스, 여섯 발의 총소리 등을 포함해 연회장에서 있었던 모든 끔찍한 소리가 전부 환청으로 들렸다. 내 상태는 점점 악화돼가고 있었다.
거실에선 다시 돌아온 장발이 활보하고 있었다. 난 그런 그에게 알 수 없는 분노를 느껴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연회가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는 스스로 집으로 걸어들어왔다. 마치 원래부터 이곳에서 살던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바람에 나는 당황했다. 그에게 왜 돌아왔냐고 묻자, 그는 대답도 없이 소파에 퍼질러져 잠들었다. 곧 그에게서 무언가를 듣는 것을 포기했다. 저 새끼가 제일 문제야.
창밖을 내다보았다. 사람이 많았다. 저들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세인트 케이든 궁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건 알기나 할까? 물론 신문의 한 면을 빼곡히 채울 정도로 화제가 되었지만, 저 사람들은 신문을 읽을 것같이 보이지 않았다. 거리로 나와 저마다 일을 하고 사는 그들을 보고 난 부럽다고 느꼈다. 눈을 감고 감각에 집중했다. 창밖으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잡음이 들려왔다. 그들의 소리는 시끄럽지는 않았지만, 귀가 따끔거렸다. 피부를 간질이던 미풍은 점점 거세져 갔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열어놓은 창문을 닫기 위해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창틀에 손을 갖다 대자마자 그 너머로 익숙한 무언가를 보게 되었다. 금발로 물들인 반묶음 머리가 아름다운 그녀, 로즈였다.
“어?”
로즈가 고개를 올려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로즈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여기 사세요?”
“몸은 좀 괜찮습니까?”
“네, 죽겠다 싶었는데 눈을 떠보니 병원이더라고요.” 로즈가 말했다. “혹시 시간 좀 낼 수 있어요?”
나는 곧 같이 술집에 가자는 그녀의 부름에 집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이것은 기댈 곳 없는 나에겐 큰 행운이었다. 로즈는 건너편으로 5분 정도 걸으면 나오는 술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걸어오면서 나는 로즈가 연회의 사고를 잊고 다시 활력을 되찾은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우린 술집 아도니스로 들어갔다. 깔끔하고 올곧은 건물들 사이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간판이 특징이었다.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다. 깊숙이 들어가 바텐더를 바로 마주 보는 바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직 밝은 오후라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지만, 테이블 위에는 와인 잔이, 옆에는 로즈가 있었으니 이 모든 것이 그날의 연회를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나무 테이블은 누군가 칼로 긁어낸 상처로 가득했다.
그곳에 있는 작은 노란 꽃 두 송이. 우리는 이 꽃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었다.
“행복한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집에 가면 하나 키울까 봐.”
나는 묵묵히 로즈가 덧붙인 말을 듣기만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을 편하게 하기로 했다. 덕분에 로즈가 더욱 친구처럼 보였다.
“술을 잘 못 드시나 보죠?” 바텐더였다.
그는 술을 완성하고 팔을 뻗어 로즈에게 건네주더니 아예 우리 앞에 자세를 잡고 앉았다. 그가 앉은 가죽 스툴 위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예?”
“술집에 와서 주문하지 않고 앉아만 계시는 분들은 대체로 그렇지요. 당신처럼 말이죠.”
로즈는 옆에서 방금 받은 와인을 쭉 들이켰다.
“보아하니 법적으로 금지하는 음주 연령 미만은 아닌 것 같다만, 한 번도 드셔보시지 않으신 겁니까?”
“…예, 뭐.”
“특유의 떫은맛이 별미인 레드 와인이 입문하기에 적합하니 드셔보시겠습니까?”
바텐더는 수상하리만치 내게 와인을 권유했다. 난 그저 이게 이 바텐더의 영업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난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그 뒤로도 간단하게 시원한 얼음물을 홀짝거릴 뿐이었다. 원래 아도니스에선 얼음과 물은 따로 판매하는 것이 아닌 음료를 제조할 때 넣는 재료들인데, 바텐더가 이거라도 마시라며 컵에 얼음과 물을 담아준 것이었다.
“…이런 얘기 하면 싫어하려나?”
바텐더가 다른 손님의 주문을 받으러 가고 고요한 정적이 흐르자, 로즈가 내게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머뭇거렸다. 아마 이야기 주제를 잘못 꺼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았다.
“무슨 얘기?”
“며칠 전 있었던 연회 이야기이긴 한데….”
“말해 봐.”
나는 마음을 다잡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그저 로즈가 연회에서 있었던 좋은 일을 말해주기만을 바랐다.
“그때 시종 한 명이 죽었다잖아…. 정원에서.” 로즈가 말했다.
“진짜? 누가 그래?” 나는 모르는 척을 했다.
“사람들이. 연회가 끝나고 경찰들이 몰려왔을 때 사람들이 수군대더라고.”
“그들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물을 홀짝이며 말했다.
로즈가 와인을 홀짝거리다가 흥미롭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와인 잔을 테이블에 올려둔 채 다리를 모으고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인 모습이었다.
“그 사람 부검 결과가 나왔는데 말로는 청산가리를 마셨대.”
“독살?”
“어디까지나 소문이겠지.” 로즈가 말했다.
“와인에 독을 탔을지도.” 내가 이렇게 말하자, 와인을 마시던 로즈가 재빠르게 와인을 내려놓았다.
“그럴 리가.” 로즈가 심각하게 말했다. “나도 마셨는걸.”
우리는 몇 초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니까 또 괜히 의식의 흐름대로 말을 꺼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말이었다. 그 뒤로 분위기는 한 층 무거워졌다.
사흘이 지난 이날도 아침부터 로즈와 만났다. 내가 지나가는 로즈를 불러서 먼저 극장에 가자고 했고, 그녀 또한 제안에 응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달리는 전철에 올라탔다. 코번트 가든으로 향하는 전철은 오늘따라 심하게 덜컹거렸다. 덕분에 몸을 지탱하는 발과 다리가 심하게 저렸다.
런던의 도심은 내가 사는 동네와 다르게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고, 살인사건 수사 종료로 인해 봉쇄가 풀린 킹스크로스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사람들이 열심히 사는 소리가 내게는 친근함과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이런 풍경이 생소한가 봐.” 로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응?”
“밖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해서.”
“로즈는 이런 게 익숙해?”
로즈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그녀는 밖에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에 깜짝 놀랐는데 꼿꼿하게 허리를 편 모습은 꼭 고양이 같았다.
“나야 익숙하지.” 로즈가 민망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아닌 것 같아.”
“매일 같이 이렇게 시끄러운 데서 일하는데, 개 짖는 소리에 한두 번 놀라겠니. 그러고 보니 너도 고객을 마주 보며 일하지 않아? 힘든 손님들도 많겠다. 보통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아니, 그런 사람 별로 없어.”
로즈는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오래되어 변색 된 창틀에 턱을 괴고 다시 밖을 바라보았다.
“어린 시절은 어떻게 지냈어?”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해 내가 줄 수 있는 답은 “나도 몰라”밖에 없었다.
“응?”
“미안해. 정말 몰라.”
예전부터 그랬던 것이지만 누군가의 질문에 그냥 모른다고 일관하면 후에 상대방이 상처받을까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꾸며낼 수는 없으니 어쩌겠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정말 몰랐다는 것을 나타내야 했다.
“그냥 기억이 통째로 사라졌어. 20년보다 긴 과거가. 왜인지는 몰라.”
“사고가 있었니? 아, 모르려나?”
“짐작 가는 게 없어.”
약 이십 분 뒤에 우리는 코번트 가든의 어느 극장 앞에서 내렸다. 사람들이 많이 없을 아침 시간을 노렸지만, 웬일인지 사람들이 많았던 터라 보려고 했던 오페라 <베르디의 휴일>을 포기하고 오후에 시작하는 <야래향>을 보기로 했다.
“뭐라도 좀 먹을까? 배고프지 않아?” 로즈가 물었다.
난 배고프지 않지만, 로즈가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한다면 같이 먹겠노라고 답했다.
오페라가 시작하기 전까지 우리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로즈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근처 카페에서 맛있는 걸 먹자고 제안하였다. 그렇게 어느 카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문한 스크램블드에그를 먹으며 햇볕을 쬐는 런던에서의 짧은 휴가가 시작되었다. 로즈는 <베르디의 휴일>을 놓쳤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것 같으면서도 이 시간을 즐기자며 커피를 연신 들이켰다.
“부모님은 어떤 일 하셔?”
로즈가 내 가족에 대해 질문했다. 물론 대답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부모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본 적도 없고, 살아있는지도 몰라.” 사실이었고, 굳이 돌려 말할 생각은 없었다. “형제자매는 있는지도 몰라.”
때문에, 로즈는 큰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미안해. 괜히 물어봤네.”
“나한테는 들을 얘기가 없으니까 로즈 이야기를 해줘.”
스크램블드에그를 입에 물고 머뭇거리다가 조금 뒤에 입을 열었다.
“나도 가족 없어.” 로즈가 말했다.
“정말?”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부모님도 두 분 다 돌아가셨어.”
의외였다. 항상 활기찬 모습을 보였기에 그런 과거는 없을 줄 알았다.
“원래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는데 홀로 남겨지고 어느새 애주가가 되어있더라고.” 로즈가 말했다.
“그렇구나.”
“악상이었어, 두 분 모두.”
그 후로 별 흥미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카페에서 나와 꽃밭을 걸었는데 로즈가 화단에 핀 동백꽃 향기에 매료되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반강제로 몇십 분간 꽃향기만 들이키느라 머리가 조금 지끈거렸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죽는다는 게, 그렇게 크고 대단한 건 아니더라고.” 포장된 길을 걸으며 로즈가 말했다. “그렇지만 죽는 것에 대해 자신에게 조금의 연민도 가지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야.”
로즈는 애써 슬픈 얼굴을 감추려 노력했다. 그다음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잃을 게 없다는 거잖아. 살아갈 가치도 없고 이유도 없고.”
“꼭 살아갈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것이 삶의 원동력이니까. 사소하더라도 좋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못 버틸 거야.”
“음, 왠지 요즘은 죽는 게 싫어지더라고.”
“사실 연회 때 일이 아직도 마음에 걸려. 대화를 나눈 누군가가 곧바로 내 눈앞에서 죽는 것은 처음이었어.” 로즈가 말했다.
로즈는 잠들 때면 가끔 그날의 악몽을 꾼다고 말했다. 편히 잠들려다가도 조금의 그 생각이 난다면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부풀려진다는 것이었다.
“너는 그날을 잊었을 수도 있어. 근데 난 전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 제자가 네 멱살을 움켜잡은 것도, 코번트리 백작이 환영의 인사로 와인을 직접 들고 온 것도….”
“잊었을 리가.”
로즈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분명 이에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보였지만 그런 무거운 분위기의 대화 주제로 놀러 나온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눈치를 보는 것이 다 느껴졌다.
훈제 청어를 먹으러 근처 식당가로 들어갔다. 시끌벅적한 주변 소음에 소란스러운 특유의 분위기는 별로였지만 음식 맛은 있었다. 쉽게 질리는 청어였지만 나름 괜찮게 먹은 건 바로 앞에 같이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이 한몫한 것 같았다.
잠시 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아슬아슬하게 극장에 입장을 했다. 많이 먹고 달린 탓에 조금 체를 한 것 같아 오페라에 집중은 안 됐지만 로즈는 꽤 재밌게 본 듯했다. <야래향>는 중간중간에 생각보다 기괴하고 무서운 연출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로즈는 정말 재밌었고 본인은 매우 즐겼다고 말했다.
150분 동안의 오페라가 끝나고 우리는 바로 전철을 타고 집 근처에 내렸다. 오늘도 할 일이 많았기에 많이 놀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나의 시계 가게가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기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얼마 안 가 갑작스럽게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길거리에선 싱그럽지만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시월의 두꺼운 물줄기는 지상의 모든 것을 두드렸다.
원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공원 벤치에 앉아 끝없는 대화를 나누다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이 비가 더 심해지기 전에 그냥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우산 없이 밖을 나온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내리는 비에 절망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로즈도 비를 맞으며 뛰기로 했다. 우리는 나무 그늘에서 나오자마자 달렸다.
빗물이 고인 바닥에서는 찰박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내가 느낀 것은 시원한 자유였다. 모든 후회와 불안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이 순간에 몰입하는 것이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앞으로 펼쳐진 모든 것을 눈에 담았다. 흔들리는 나뭇잎과 물에 젖어 빛나는 돌 도로,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하나까지. 차가운 빗물로 만들어진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며 그것이 극대화되었다. 지금을 즐겼다.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로즈도 밝게 웃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멈추지 않는 그녀를 따라 달리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로즈는 인사를 했다.
“잘 가! 즐거웠어.”
“안녕.”
로즈는 이내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로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자연스럽게 다시 달려왔던 길을 밟고 내 집으로 돌아갔다.
*
그다음 날은 의외의 사람들을 만났다.
노스다운Northdown 가와 콜리어Collier 가가 근접하는 삼거리에서 내게 지도를 든 채 길을 물었던 그들과 눈이 마주친 순간 내가 본 그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몇 분 전, 그들은 내게 길을 물어보다 나를 보더니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반가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물론 나는 그들을 알지 못했다.
“어머, 여기에 있었어?” 세 명 중 한 명이 내게 와락 안겼다. “돌아가자. 하젤 부인이 널 기다리고 계셔.”
“예?”
난 내게 안긴 사람을 밀어냈다. 갑작스러운 친한 척에 당황했다. 기억을 잃었지만 이렇게 반가워하는 것을 보니 그렇게 일단 그들을 집으로 들여온 것이다. 집으로 들어왔을 때 장발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뒤따라 들어오는 세 사람을 먼저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다급하게 침실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다니엘을 아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하라는 말과 함께.
장발이 침실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은 후에 세 사람이 집으로 들어왔다. 조금만 일찍 들어왔다면 장발이 문을 닫는 모습을 봤을 수도 있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차는 주변의 공기까지 어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처음 보는 그들을 보자마자 개처럼 달려가 그들에게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네가 갑자기 사라진 이후로 아직도 가끔은 일상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거 있지. 에녹이 너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우린 여전히 네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세 명 중 키가 큰 여자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신 못 볼 줄 알았는데 말이야. 돌아가서 다니엘 복귀 파티를 열어야겠어. 복귀 파티보단 생존 파티라고 해야 맞으려나?”
“복귀가 맞지.”
나는 의미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 다니엘 일이구나.
“그런데 저더러 다니엘이라는 겁니까?”
셋은 말없이 굳어버렸다. 서로를 번갈아 쳐다보며 당황을 숨기지 못하였다.
“다니엘이 아니야?”
“전 다니엘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장난하지 마.” 셋의 표정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근데 반은 진심이기도 했다. 장발은 지금까지 나한테 자기가 누군지 얘기한 적이 없으니까! 장발의 이름이 다니엘이라는 것 말고는 나도 아는 것이 없었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하나가 입을 열었다.
“진짜 몰라요?”
“예.”
“다니엘이 아니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클로드 베르나르입니다. 프랑스인입니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말이 없었다. 아마 다니엘이라고 믿은 이가 자기 이름을 클로드라 소개하는 상황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 거겠지. 몸에 익어버린 딱딱한 말투도 한몫했을 테고. 이로써 내가 장발과 쏙 빼닮은 얼굴이라는 건 다시금 증명된 셈이다.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전 브로디입니다. 다니엘을 찾으러 도버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희 넷은 어렸을 적 동네에서 유명한 반당이었습니다.”
키가 큰 여자가 책상 위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장발이 읽다가 허겁지겁 도망가느라 책상 위에 그대로 두고 갔던 책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책에 쓰인 다니엘의 이름을 보고야 말았다.
“이 책에 다니엘이라고 쓰여있는데요?”
나는 당황했다.
“노스다운 가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노인네 이름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 에어우드 아나리스…, 우리가 찾는 다니엘이 맞습니다.”
“여긴 아마 다니엘이 살던 집이 맞을 겁니다.” 나는 심하게 말을 더듬거렸다. “아…, 사실 다니엘을 조금 아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처진 눈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당신이 다니엘의 쌍둥이입니까?” 브로디 씨가 물었다.
“쌍둥이 말입니까?”
난 그 쌍둥이가 그레이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일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다니엘에겐 쌍둥이가 있어요.” 브로디 씨가 설명했다. “하젤 부인이 길을 잃고 혼자 돌아다니던 어린 다니엘을 데려다 키우셨습니다. 나중에 다니엘이 쌍둥이가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저희는 알 수 없었어요.”
“아무튼 전 쌍둥이가 아닙니다. 하젤 부인이 누군지가 궁금하군요.”
“저희와 다니엘을 키우셨어요.”
“다니엘에 대한 거라면 저도 아는 게 없습니다.”
브로디 씨는 이 상황이 복잡한 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다니엘을 실제로 본 적 있으세요?” 그가 다시 물었다.
“실제로 다니엘을 본 적은 없습니다.” 내가 설명했다. “그래서 잘 모릅니다.”
그들은 내 설명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제대로 듣지는 않은 것 같았다.
“당신은 다니엘과 정말 닮았어요.” 키가 큰 여자가 말했다. “저는 에버린입니다.”
아마 여기서 입을 틀어막지 않고 습관적으로 “많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간 의심을 샀을 거다. 에버린 씨에게서는 진하고 자극적인 냄새가 났다. 과도하게 향수를 사용한 듯 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죠?” 내가 물었다.
“신문에서 다니엘을 봤어요.” 그들이 답했다. “한 면에 첨부된 사진에 다니엘의 얼굴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를 찾으러 무작정 런던으로 달려왔다가 다니엘을 본 거예요. 그런데 그건 다니엘이 아니라 당신이었어요. 아마 이 신문에 있는 사람도 당신이겠죠.”
브로디 씨는 꼬깃꼬깃 가져온 신문을 내게 보여주었다. 글에서 풍기는 느낌이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게 역시나 세인트 케이든 연회와 그 테러를 다룬 내용이었다. 다급하게 인터뷰하는 코번트리 백작을 찍은 사진이 있었는데, 브로디 씨는 그 뒤에 아주 작게 찍힌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로즈와 급히 연회장에서 빠져나와 코번트리 백작을 지나쳐 가는 순간에 그와 같이 찍힌 듯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또렷이 나오긴 했다.
“이건 접니다.”
“그런 것 같아요.”
나는 그들에게 다니엘에 관해 이야기해주면 나도 내가 아는 걸 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그들은 이제야 이런 얘기를 꺼내는 나를 믿어도 되는지에 대해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눴으리라. 그러다 내 집 책장에서 무더기로 나온 피에르의 소설을 발견한 그들은 나에게 다니엘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브로디 씨는 다니엘이 3년 전 도버에서 실종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고 어딘가에서 잘 살아 있으리라 믿으며 계속 찾아다녔다고 말했다. 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버요?”라고 되물었을 때 그는 “함께 자랐던 곳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니엘은 피에르 씨의 소설에 열광하던 평범한 시계공이었어요. 참사 이후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그런 그와 마지막으로 눈을 마주쳤어요. 말할 수 없는 슬픔이 가득 담긴 눈이었죠.” 브로디 씨가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병원에서 사라졌습니다.”
“병원에서 죽은 겁니까?”
“아뇨. 말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탈출하는 걸 봤다는 목격자가 있긴 한데, 그것뿐입니다.”
“탈출한 다니엘이 이곳에서 쭉 살았던 것 같네요. 클로드 씨가 이 집에서 살기 전에요. 피에르의 소설들, 시계, 그리고 루시….” 옆에 있던 키 큰 여자가 말을 이었다. “짐을 정리하지도 않고 급하게 집을 비운 것 같네요. 클로드 씨가 왜 여기서 그대로 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때 어떤 것이 내 발목을 스쳐 지나갔다. 스스로 움직이는 무언가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 그것을 발로 차버렸다. 그것은 시끄러운 괴성을 지르며 벽에 쿵 하고 부딪혔다. 그것은 고양이였다. 나는 멍하니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연회 날 아침에 본 할머니의 고양이였다. 에버린 씨가 달려가 고양이를 감싸 안았다.
“루시?”
“애가 루십니까?”
“네. 다니엘이 키우던 고양이예요.” 여자는 거실에 배를 까고 누워있던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이제 17살인가? 이제 너도 늙었구나.”
나는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나랑 한집에서 살아온 건가. 밤마다 들었던 벽 긁는 소리는 환청이 아니었다.
늙은 고양이는 그들에게 이미 마음을 연 듯 보였다. 아니, 아직도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집에는 다니엘의 물건들이 잔뜩 있네요.”
“제가 짐 정리를 안 해서 그럽니다. 여기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거든요.” 내가 답했다. “한 1년?”
그들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전 그저 당신이 왜 다니엘이 살던 이 집에서 지금 살고 계신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어떻게 남의 살림을 갖다 그대로 살죠? 그것도 1년이나.” 에버린 씨가 말했다. “같은 집에서 살았다면 전 집주인과 얼굴은 한 번쯤 봤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나는 그 질문에 모른다고 일관하였고, 나도 다니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더 질문해 봐야 얻어가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리하자면, 다니엘은 오래전부터 도버에서 브로디 씨, 에버린 씨, 에녹 씨와 함께 자라며 성장했고, 3년 전 도버에서 런던으로 아무도 모르게 이주해 이 집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니엘이 망할 장발이라는 건데, 내가 대체 왜 그와 함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단 생각뿐이었다.
“다니엘이 왜 도버를 떠난 겁니까?”
“모르겠습니다. 아마 정신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 에버린 씨가 말했다. “큰 사고가 있었거든요.”
뒤이어 그들은 하젤 부인이 다니엘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신다고 말했다. 난 하젤 부인이 누군지 몰랐지만 딱히 궁금하지 않아 잠자코 있었다. 그 뒤로 브로디 씨와 에버린 씨는 다니엘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어지러움을 느꼈다.
이 대화가 의미 없다고 생각한 나는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은 내내 그들만 기억하는 과거에 취해 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셋은 언젠가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는 그러지 말라고 답하며 그들을 내보냈다.
그들이 모두 떠나자 난 침실 문을 열었다. 장발은 그들을 전부 알 텐데 왜 모른 척했을까? 그의 친구들은 장발을 애타게 찾고 있는데.
“다 갔어. 근데 왜 숨기려고 한 건지….”
그러나 장발은 침실 안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 그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였다. 바닥에 엎드려서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호흡을 주체하지 못하느라 몸을 들썩이는 것을 뺀다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복잡한 도심의 소리가 노란 햇볕과 함께 집 안으로 스며들 때면 난 로즈를 떠올렸다. 며칠 전부터 시계를 제조하고 수리하는 기술을 공부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두 손은 곧잘 따라주었다. 때때로 외롭다고 느낄 때면 로즈를 찾아갔고,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나았다.
사람들은 오랜만에 장사를 시작한 나를 기다렸다며 반가움을 표했다. 내 집에 있는 작업실에는 밖과 연결되는 커다란 창이 있었는데 그것을 열어 사람들을 만나며 장사를 했다. 덕분에 나는 익숙하고 편한 내 작업실에서 주문을 받았다. 로즈가 찾아와 주문을 넣은 어느 날엔 차례가 정해져 있는 주문을 전부 미루고 그녀의 시계를 먼저 수리하기도 했다. 로즈도 조향으로 돈을 벌고 있는데 요즘 들어 꽤 잘 돼 가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씩 내게 직접 조향한 향수를 선물하곤 했는데 내 취향을 어디서 알아낸 것인지 로즈가 보낸 향수의 향은 언제나 좋았다. 로즈의 시계를 받고 며칠 간은 한참 로즈의 시계를 바라보다가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로즈의 시계를 전부 고쳤으며 난 그녀에게 시계를 돌려줄 날만을 기다렸다.
금월 초하룻날 연회에서의 정신적 피해를 상당 부분 회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레이스와 금발 머리가 수도 없이 죽어 나가는 그 사건의 무한한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아직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소소한 나날이 그 화려한 연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새 삶은 얻은 기분이었다.
*
10월 15일.
이날 신문에 실린 충격적인 소식에 온 동네가 떠들썩했다. 아침이 되자 곳곳의 골목에서 시신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는 기사였다. 창백하게 질린 오래된 시신에서는 꽃향기가 났으며, 모든 시신에 배를 열었다가 꿰맨 자국이 있었다는 내용이 신문 한 면에 도배되었다. 병원에서 다시 배를 열어보니 혈관 속에 있으면 안 될 것들이 흐르다 굳은 찌꺼기가 대량으로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그치지 않는 비와 런던 전역에 퍼진 공포로 인해 거리에선 사람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런던 광역 경찰청은 어젯밤에 삐걱거리는 수레바퀴 구르는 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대대적인 수사를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시신의 오른쪽 폐마다 ‘전쾌’라는 각인이 칼로 긁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난 창문을 굳게 닫고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다시 본능만이 남은 채로. 그 순간에 나는 어둠 속에서 가만히 숨을 쉬고 있었다. 살갗에 닿는 면 이불은 부드러웠다.
그 순간 찰박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눈을 떴다. 밖에서 누군가 맨발로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그가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내 집 문 앞으로 오더니 문을 벌컥 열었다. 우산도 없이 흠뻑 젖어서는 집안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누군가를 마주하였다. 표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으나 그 속에서 슬픔이 우러나오는 듯한 얼굴의… 장발이었다. 어째서인지 그를 볼수록 괜히 식은땀이 났다. 그의 표정은 점차 어두워졌다.
역시 그는 맨발이었다. 홀딱 젖은 장발은 축축한 발걸음으로 거실로 들어섰다. 그가 발을 내디뎠던 곳엔 물이 고였다. 장발의 긴 머리칼에선 물이 뚝뚝 흘렀다. 그는 그런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뭐야, 왜 그 꼴이야.”
그는 말없이 나를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감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장발은 눈동자가 없었으니까.
〚잘 들어. 그날, 코번트리 백작이 어딘가에서 널 계속 보고 있었어.〛 장발이 내 어깨를 부여잡고 말했다. 〚네가 금발 머리를 죽인 걸 봤다고.〛
“뭐?”
〚넌 연회 날, 코번트리 백작을 처음 본 거야. 그가 연회 초대장을 보낸 것은 널 죽이려 했던 거라고….〛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다. 날 죽이려고 친분이 없는 나를 연회로 초대한 거라고? 그렇다면 테러는 날 죽이려 했던 것이었을까….
“너도 백작을 본 적 없어?”
〚단 한 번도.〛 장발이 호흡을 주체하지 못하며 말했다. 〚백작이 널 몇 번이고 죽이려 했는데 지금 넌 버젓이 살아있잖아. 널 끝까지 못 죽였다고.〛
“그래서?”
〚…그래서,〛
장발은 쉽게 입을 떼지 못하였다. 그는 날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대신 로즈를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