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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주는 자존감 Part. 1

Ep.10  오랜만의 자유, 공허함을 치유,  다시찾은 여유

은퇴 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에너지 충전을 방패 삼아 편하게 지냈던 날들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하고 가시방석이 되어갔다. 

결국, 살림살이의 길을 택하면서 그런대로 완전히 무책임한 모습에선 벗어났다. 

사실, '요리'라는 변수만 잘 극복한다면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승부는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늘어 '요리 가능 영역'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의 공부까지 나름의 체계적 관리를 통해 봐주기 시작하면서

나름의 밥벌이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가사는 처음이 조금 힘들었을 뿐, 고비를 넘기니 서서히 여가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방에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매일같이 달려가던 동네 마트도 

웬만한 재료는 다 구비한 덕에 방문 횟수가 줄어들었다. 

청소 역시 구석구석 손길이 필요했던 초반을 지나자 어느 정도의 융통성이 발휘되었다.

예를 들어, 냉장고 위나 TV 뒤쪽은 매일 같이 닦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진공청소기로 머리카락을 매일 잡아낸다면, 스팀 물걸레 청소는 

며칠에 한 번 정도만 해 주어도 기본적인 청결이 유지되는 식이다.

잡동사니로 가득 찼던 서랍장을 정리하고,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쉴 새 없이 내다 버렸다.

가구를 옮기거나 방의 구조를 바꾸는 작업까지 끝나자, 상쾌한 기분과 동시에 

시간을 보낼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힘들게 집안을 정리했다'라는 업무보고가 없다면

집에서 편하게 잠이나 자거나 게임으로 시간을 때우는 한심한 인간으로 취급될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보낸 날도 있었지만, 나름 일거리를 안배하며 

힘들게 일하고 퇴근한 아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한계에 다다랐고, '취미'를 고민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뭘 한 번 해볼까나?'


자칫, 아무런 취미를 골랐다가는 폭풍 같은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

가뜩이나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낚시나 등산으로 집을 비운다면 

이제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래서, 다음의 기준을 가지고 취미 고르기에 들어갔다.

 

1. 적은 비용으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

2. 자아실현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

3. 가족들에게도 어떤 이익이 돌아갈 수 있는 것

4. 취미의 성과가 드러날 수 있는 것


조건을 늘어놓으니 어려울 것 같지만, 쉽게 결론을 찾아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꼭 배우고 싶었던 '일본어'를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일단, 비용이 들지 않는다. 책은 한 권이면 족하고, 집에서 독학을 하기로 했다.

한일 관계가 어지럽긴 하지만, 예전처럼 가족여행이라도 가게 된다면  반드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가 시간에 휴대전화나 TV가 아닌, 책을 보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도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고려했다. 

1년에 2회 시행되는 일본어 능력 시험을 목표로 나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낮은 단계라도 합격이 된다면, 말할 수 없는 성취감과 동시에, 일을 놓으며 떨어진 자존감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점도 있게 마련이다.

돈이 되거나 비전이 있는 자격증이 아니라는 점. 일어를 몰라도 여행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상쇄하더라도 이 취미를 꼭 가져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난, 죽기 전에 꼭 일어를 공부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취미가 뭐냐고 물었을 때 답변의 80% 이상은 음악 감상을 이야기하곤 한다.

학창 시절의 나 역시 그중 한 명이었으며, 남들보다 조금은 깊은 수준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촌 형 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일본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충격으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유튜브에 보면, K-POP을 처음 듣는 외국인들의 반응이 올라오곤 하는데 그들과 같은 기분이랄까? 

무언가가 엄청 좋은데 설명은 하기 힘든 상태. 

내가 지금 뭘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꿈속을 걷는 듯한 기분 좋은 환상에 젖어버렸다.

그렇게 그들의 음악은 사춘기의 나에게 아무런 여과 없이 침투했고

당시 극심한 가정불화에 괴로웠던 나는 일본 음악을 어둠의 탈출구로 삼으려 했다. 


아이돌부터 실력파 뮤지션까지 다양한 앨범을 모았고, 하이틴 잡지 속 패션을 따라 입었으며 

방 안 가득 일본 연예인들의 사진을 붙여 혼자만의 왕국을 건설해 놓았다.

남들은 잘 알지 못하는 나만의 독특한 취미가 생긴 것에 자부심마저 느끼고 있었다.


요즘, BTS의 음악을 따라 부르는 세계인들 중에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처럼

당시의 나도 가사의 의미를 모른 채 신나게 부르고 다녔던 수많은 곡들의 의미가 궁금했었다.


 降りそそぐ冬の雨にアスファルト灯がにじむ

쏟아지는 겨울비에 아스팔트 등이 흐려지네


일어사전을 들고 한 시간여를 뒤적거려 가사 한 줄의 의미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한 줄 넘었을 뿐인데 매우 뿌듯하고 흥분했었다.

그러나, ㄱ, ㄴ, ㄷ과 같이 히라가나의 순서도 모르는 채 번역기도 없던 세상에서 

일어사전과 씨름하며 눈이 빠질 것 같은 고통과 짜증을 겪었고

결국, 위의 가사 한 줄을 끝으로 가사를 알아보는 것을 포기했었다.

또한, 가사 내용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음악마저도 어른이 되며 이래저래 추억으로 남겨두게 되었다.

새내기가 된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기 바빴고,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일본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없는 제한적 환경에서 오타쿠 같은 취미생활을 계속하기에는 시간도 부족했다. 

가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있었고, 나 역시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한국 가요의 황금기인 90년대를 거치며, 양질의 음악이 많이 나온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옛날이 다시 생각나게 될 줄은 몰랐다.

못 배운 게 한이 되어 한글책을 펼치는 70, 80대 만학도들처럼

나 역시, 한때의 추억이지만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찾아 과거로 간다.

사춘기를 회상하던 중년의 아저씨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 둔 목표를 꺼내어 시험에 도전한다.


의지와 노력은 세월이 흐를수록 작아지는 뇌 용량을 극복할 수 있을까?

합격을 통해 떨어진 자존감을 올리고 스스로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까?

잠시라도 가족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여러 감정들을 안고 수험생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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