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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형 Apr 10. 2024

늙어서 이가 빠져도 마음 편한 이유

<낙치설>

헬스장에 다닌 지 20년 넘었습니다. 운동을 오래 했지만 근육이 많은 건 아닙니다. 보디빌더처럼 되려는 생각도 없고, 그걸 목표로 한 적도 없습니다. 몸을 만들려면 식단 조절이 필수인데, 먹는 걸 삶의 낙으로 여기기에 감히 도전해 본 적 없습니다.    

 

대신 한계에 대한 욕심은 조금 있습니다. 무게나 거리를 늘리려는 마음입니다.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것들이지요.     


얼마 전 헬스장에서 꽤 무거운 걸 들었습니다. 운동하는 연예인들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 자극받아 무리한 겁니다. 그 결과는 “아이고”였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며칠이나 쉬어야 했지요. 집에 있으면서 「낙치설(落齒說, 늙어서 이가 빠진 이야기)」이 떠올랐습니다.       






... 내가 예순여섯 살이 되던 해이다갑자기 앞니 하나가 빠져 버렸다그러자 입술도 일그러지고말도 새고얼굴까지도 한쪽으로 삐뚤어진 것 같았다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니 놀랍게도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려 하였다.... 하루아침에 이가 빠지거나 맞물린 이가 부러지면 국물이 새고 밥조차 딱딱하다이따금 살코기를 씹으려 해도 문득 고약한 지경을 만나고 만다.... 이에 책을 펴서 읽기 시작했다그러자 이가 빠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치 깨진 종소리 같았다... 나는 내 모양이 슬퍼서 책 읽는 일을 그만두어 버렸다이것이 이가 빠지고 난 뒤에 나의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다.          


작가가 66세가 되던 어느 날 앞니 하나가 빠져버렸답니다. 얼굴이 비뚤어지고, 표정도 이상합니다. 틀니도 없으니 음식도 제대로 못 먹겠네요. 

그중에서 가장 슬픈 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선비들이 책을 소리 내어 읽었는데, 말이 새니 소리도 이상해져서 읽기를 그만두었지요. 

나이 들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금세 피곤해집니다. 휴대폰 배터리 용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것처럼요.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고, 정기 검진도 신경 쓰이기 마련입니다. 몸은 나이를 따라가니까요.      



나의 일생을 돌이켜 볼 때 내가 비록 늙었다고는 하나 몸이 가볍고 건강하다는 것은 자신했었다걸어서 산에 오르거나종일토록 먼 길을 말을 타고 달리거나때로는 천 리 길을 가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등이 뻣뻣해지는 걸 느끼지 못했다그래서 내 또래들과 비교해 볼 때에 나만 한 사람이 드물다고 생각하며 자못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 얼굴이 일그러져 추한 모습으로 갑자기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모두 놀라고 또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니내가 아무리 늙었음을 잠깐만이라도 잊으려 한다 해도 가능한 일이겠는가그러니 이제부터라도 나는 노인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겠다.         

 

저는 제 체력을 과신했습니다. 20대의 저를 떠올리면서 운동하려 했습니다. TV 속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며 ‘저런 건 나도 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헬스 격언 중에 “닥치고 스쿼트”라는 말이 있는데, 젊은 시절 가능했던 세 자리수 무게의 스쿼트는 지금은 무리입니다. 나이가 들면 거기에 맞춰 운동해야 하는데, 작가의 말처럼 ‘분수를 지키지 못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 옛날 성리학의 대가인 주자(朱子)도 눈이 어두워진 것이 계기가 되어본심을 잃지 않고 타고난 착한 성품을 기르는 데 전심하게 되었으며그렇게 되자 더 일찍 눈이 어두워지지 않은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그렇다면 나의 이가 빠진 것도 또한 너무 늦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얼굴이 일그러졌으니 조용히 들어앉아 있어야 하고말소리가 새니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고고기를 씹기 어려우니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야 하고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지 못하니 그냥 마음속으로나 읽어야 할 것 같다.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정신이 안정되고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허물이 적을 것이며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수복(壽福)을 온전히 누릴 것이다그리고 마음속으로 글을 읽으면 조용한 가운데 인생의 도를 터득할 수 있을 터이니그 손익을 따져 본다면 그 이로움이 도리어 많지 않겠는가?       

   

결국 이가 빠져버렸습니다. 하지만 꼭 나쁜 건 아닌 듯합니다. 성리학의 주자는 눈이 어두워지고 나서야 마음을 기를 수 있었지요. 작가 역시 이가 없으니 침묵을 지키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며, 속으로 글을 읽게 됩니다. 그러면서 조용히 삶을 성찰하고 마음을 다스립니다.

 

저 역시 푹 쉰 뒤로는 운동에 무리하지 않습니다. 헬스장에 매일 가야 한다는 조바심도, 기왕 왔으니 오래 해야 한다는 강박도 없습니다. 그러자 고통도, 부상의 염려도 줄어듭니다. 내 체력과 컨디션에 맞게 하려고 합니다. 가족들과 같이 즐기면서요.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스러운 사람이다그렇다고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자는 속된 사람이다경망스럽지도 않고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늙음을 편하게 여긴다는 말은 여유를 가지고 쉬면서 마음 내키는 대로 자유롭게 사는 것이다이리하여 담담한 마음으로 세상을 조화롭게 살다가아무 미련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그리고 눈으로 보는 감각의 세계에서 벗어나일찍 죽는 것과 오래 사는 것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그것이 인생을 즐겁게 사는 길이며근심을 떨쳐 버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자.”     


예전에 군 복무할 때 한 상관을 모신 적 있습니다. 전역을 앞둔 나이 많은 분이셨지요. 그분에게 어떤 내용을 보고하고, 결정을 기다리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위와 같았습니다. 당시 젊은 장교였던 저는 그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부대 특성상 빨리 결정되어야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거든요. 그분과 엮이면 일이 지연되기 일쑤였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저 역시 이 말을 자주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이 주는 장점도 압니다. 여유입니다. 시간을 가지고 일을 살펴보는 게 결과적으로 대부분 나았습니다. 속도가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나이 들었으니 그 정도 핀잔은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분과 일하면서 크게 실수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배운 것도 많았지요.       


그렇기에 작가의 깨달음에 공감합니다. 나이드니 젊을 때보다 기력이 줄었다고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거망동하게 모든 걸 급히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걸 편히 받아들이고, 여유 있고 자유롭게 행동하면 됩니다. 운동도, 수업도, 더 나아가 삶 그 자체도 말이지요. 이것이 순리인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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