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국어 교과서에 외국 작품이 거의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해외 문학'이라는 분류로 몇몇 작품이 교과서에 수록되곤 했습니다. 장편 소설은 분량상 무리였지만, 수필이나 시는 간간이 있었지요. <이해의 선물> 같은 작품을 기억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어린 아이가 버찌 씨를 내고 사탕을 산 내용 떠오르나요?
오늘 볼 작품은 <강남봉이구년>입니다. 이 작품 역시 예전에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이 작품의 작가가 두보(712~770)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두보를 좋아했거든요.
기왕의 저택에서 자주 그대를 보았고 岐王宅裏尋常見(기왕택리심상견)
최구의 집에서 노래 몇 번 들었지요. 崔九堂前幾度聞(최구당전기도문)
바야흐로 이 강남의 풍경은 화사한데 正是江南好風景(정시강남호풍경)
꽃 지는 시절에 그대를 또 만나게 되었구료. 落花時節又逢君(낙화시절우봉군)
<강남봉이구년>은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라는 뜻입니다. 작품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구년은 당나라 시대의 궁중 악사이자 명창(名唱)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몸값 비싼 일류 가수였지요. 두보 역시 유명한 시인이었고요.
그렇기에 둘은 여기저기 불려 다닙니다. 첫줄의 '기왕'은 당나라 황제인 현종의 동생입니다. 둘째 줄의 '최구'는 당나라 현종의 총신이고요. 황제의 측근과 당시 실세들은 음악과 문학을 좋아했고, 덕분에 이구년과 두보는 잔치에 자주 초대했지요. 호화로운 음식과 화려한 옷, 넉넉한 보수 - 둘이 잘 나갔을 때입니다. 즐거운 추억이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뀝니다. 안녹산의 난(755년)으로 국토는 전란에 휩싸였고, 사회는 극도로 혼란해집니다. 두보는 잠시 관직에도 올랐지만, 백성들의 궁핍과 부패한 사회를 보며 결국 그만두지요. 그는 병든 몸을 이끌고 전국을 떠돕니다. 말 그대로 유랑 인생이었지요. 이제는 그를 불러주는 사람도, 기억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느 날 두보는 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낯이 익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젊은 시절을 함께 했던 이구년이었지요. 그 역시 백발 성성한 쇠락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권세가의 집에서 함께 노래 부르며 웃고 즐겼던 젊은이는 이제 없지요. 화려한 때를 보내고 꽃 지는 시절에 만난 그들은 서로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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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이 작품을 읽으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젊은 시절 잘 나갔기에, 늙고 초라해진 그들의 모습이 더욱 슬프게 다가왔지요. ‘내 노년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걱정 많은 청소년이었어요.
IMF 때라 사회는 더없이 힘든 시기였거든요. 주위 여기저기서 비극적인 뉴스만 들려왔습니다. 대한민국에 난(亂)이 일어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고, 저축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공무원과 교사의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제 진로 역시 그때 결정된 셈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작품 해석은 그대로지만, 삶의 관점이 달라진 겁니다. 두보와 이구년 모두 재능 많은 이들입니다. 나라가 안정되었더라면,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잘 나갔을 겁니다. 권세가의 총애를 받으며 안락하고 부귀하게 살 수 있었겠지요. 만약 세상이 허락했다면 말이에요.
허나 되돌아봅니다. 안록산의 난 같은 전란(戰亂)은 개개인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IMF나 서브프라임, 코로나, 국가간 전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역동적이고, 수많은 사건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운명의 소용돌이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생각합니다.
“담담하게”
누구에게나 낙화시절(洛花時節), ‘꽃 지는 시절’은 옵니다. 하지만 미리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꽃 핀 시절은 그것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살고, 꽃 지는 시절 역시 겸허히 수긍하고 만족하며 살고자 합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이 넘겨버리는 것. 과거의 추억만을 곱씹기보단 남겨진 현재를 보다 소중히 살아가는 것. 세월이 흐르면서 배운 삶의 지혜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이 작품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으려 합니다. 지나치게 감상에 빠지지도 않으려 합니다. “그대를 또 만나게 되었구료.” 작품을 다시 보니 두보 역시 담담했군요. 제가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게 이제는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