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은 무엇일까?

우연한 만남과 극적인 사랑을 꿈꾸는 당신에게 권합니다 - 「하생기우전」

by 박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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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만남과 극적인 사랑에 대하여


‘인생은 BCD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B와 D 사이에 C가 있듯, 우리는 태어나서(Birth) 죽을 때까지(Death) 끊임없이 선택(Choice)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말 일상의 모든 일을 우리가 선택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에 지각한 이유는 버스가 늦게 왔기 때문이에요. 시험 점수가 떨어진 이유는 꼼꼼히 공부하지 않은 부분에서만 문제가 잔뜩 나왔기 때문이고요. 토스트를 떨어뜨렸을 때 잼을 바른 쪽이 바닥에 먼저 떨어지는 것처럼, 운이 없어서 여러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은 우연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대화를 나누고,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게 되는 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요. 오늘 살펴볼 작품은 이런 우연성을 잘 보여 준답니다.



「하생기우전」은 ‘하생이란 사람의 기이한 만남 이야기’입니다. 고려 시대 선비였던 하생은 이른 나이에 부모를 여읩니다. 그는 장가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도 하생을 사위로 삼으려 하지 않아요. 집안이 무척 가난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용모가 준수하고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태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됩니다. 요즘으로 치면 국비 유학생 정도겠네요. 하생은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과거 시험의 합격 기회는 오지 않아요. 나라가 어지럽고 비리와 부정이 많이 발생해서 인재 선발이 공정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생은 4∼5년 동안 세상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집은 가난, 시험은 불합격, 여자친구 없음’ 마치 이마에 이런 문구를 써 붙인 것처럼 하생은 우울했답니다. 여러분은 우울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나요? 보통 게임을 하거나, 드라마를 몰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한껏 먹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하생이 그 상황을 넘기는 방법은 좀 특이했어요. 그는 같은 학사의 친구에게 말합니다. 낙타교 길가에 신통한 점쟁이가 있는데, 실타래처럼 엉킨 자기 인생에 대해 물어보겠다고요.


하생은 보물처럼 아끼던 금전 몇 닢을 가지고 점쟁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묻습니다. 미래에 자신이 어떻게 될지, 사랑하는 연인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등을 물었지요. 점쟁이는 하생을 뚫어지라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엽니다.


“당신은 본디 부귀하게 될 운명을 타고났소. 다만 오늘은 불길하다오. 도성 남문으로 나가서 그대로 달려가시오. 멀리 떠나되 해가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안 되오. 그러면 액땜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좋은 배필도 얻게 될 것이오.”


이런 말을 그대로 흘려버리기엔 찜찜한 마음이 들겠지요? 하생은 점쟁이의 말대로 합니다. 그는 남문을 나가 길을 걷다가 어둑해질 무렵 작은 집을 한 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여섯 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지요.


그런데 그 여인 역시 점쟁이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집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 이들에겐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답니다. 하생은 여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여인 역시 솔직한 마음을 담아 답장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하룻밤의 사랑을 나눕니다.


문제는 다음 날 새벽입니다. 동틀 녘이 되자 여인은 하생의 팔을 베고 흐느껴 울며 말합니다. 자신은 여기에 묻힌 지 사흘 된 죽은 혼령이고, 오늘이 지나면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요. ‘맙소사! 내 옆에 있는 여인이 귀신이라니!’ 하생은 무척 놀랐어요. 하지만 그는 여인을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알려 준 방법대로 하지요.


그는 여인에게 금척(金尺, 금빛 자)을 받아 시장으로 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커다란 돌 위에 올려놓습니다. 이를 알아본 여인의 하인들은 하생을 부모에게 데려가지요. 하생은 자초지종을 설명합니다. 여인의 부모가 곧장 무덤으로 가서 그곳을 파헤치자, 여인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이제 기우(우연한 만남)가 가우(아름다운 만남)로 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가 않습니다. 여인의 부모는 딸을 살려 낸 하생에게 고마워하지만, 결혼은 허락하지 않아요. 그가 가난한 데다 과거에도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딸을 조건이 좋은 사람에게 보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건 부모의 마음일 뿐이지요. 여인은 식음을 전폐하고 부모를 설득합니다. 자신을 살려 낸,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 준 남자를 결코 떠나보낼 수 없던 거예요. 여인의 말을 잠시 들어 볼까요?



아버지, 어머니시여, 지금부터 이제 행복하기를 바라신다면 자손을 편안하게 해 주세요. 어찌 운명을 거역하시며 제 마음을 몰라주시나요. 기러기 화락하게 우는 해 뜨는 아침에 혼례를 올리고 싶어요. 아리따운 처녀 혼기가 찼으니 길일을 놓치지 말았으면 해요. 우리 둘 다시 만나는 게 저의 소원이고 저의 도리예요. 이리 될 줄 알았다면 살아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공강의 혼령 있으리니 그와 손잡고 함께 갈까 해요.



하생을 향한 여인의 강한 마음이 느껴지나요? 결국 여인의 부모는 이들의 결혼을 허락합니다. 이제 하생과 여인은 서로 공경하고 사랑하며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해 하생은 과거 시험에 합격합니다. 그는 훗날 상서령이라는 높은 벼슬에 이르고, 두 아들까지 얻었어요. 아들 역시 잘 자라 세상에 이름을 떨치지요. 흥미로운 사실은 하생이 혼인을 정한 날, 낙타교 거리에 있던 점쟁이를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자리를 옮기고 없었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 중종 때의 문인 신광한이 쓴 한문 소설로 『기재기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묘사화 때 조광조 일파로 몰려 15년간 여주 원형리에 칩거합니다. 하루하루가 우울한 나날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는 『기재기이』를 비롯해 『기재집』을 완성했어요. 1,500여 수의 한시가 실린 그의 저작은 작가의 뛰어난 문학적 재능을 드러내지요.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는 것, 용기


‘아… 우울하네. 나는 언제쯤 남자·여자 친구가 생길까?’ 많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을 듯합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추운 겨울, 붕어빵을 호호 불며 나눠 먹는 커플을 보면 그 쓸쓸함이 한층 더 깊이 느껴지게 마련이지요.


그런 여러분에게 인연이란 말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인연은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뜻합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인연을 만들어 갑니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부터 일평생을 함께할 연인까지 그 범위는 아주 넓습니다.

본래 인(因)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緣)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을 뜻합니다. 예컨대 국화꽃을 피울 때 씨앗은 인(因)이 되고, 꽃을 피우는 데 필요한 물과 토양, 햇볕은 연(緣)이 되는 셈이지요.


하생과 여인의 만남은 우연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생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혹은 태학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또는 과거 시험에 합격했거나 점쟁이의 말을 무시했다면 아마도 여인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일의 인(因)은 극적이고도 아슬아슬하게 시작되게 마련이지요.


어렵게 시작된 인(因)은 더 어려운 상황을 만납니다. 이들의 사랑을 가로막은 첫 번째는 ‘사람과 귀신’, ‘이승과 저승’이라는 존재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부자와 빈자’라는 경제적 차이였어요. 사랑은 마치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등불을 소중히 지켜 낼 힘은 이들의 용기로부터 나왔습니다. 하생은 여인이 준 금척 때문에 무덤을 도굴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하인들이 침을 뱉고 욕을 해도 그는 묵묵히 여인의 부모에게 데려다 달라고 말할 뿐이었지요. 사랑은 그가 오해를 무릅쓰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습니다.


여인 역시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결혼에 반대하는 부모의 마음을 돌려놓지요. 그 당시에 여성이 부모의 명을 거역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혼사는 개인 차원이 아닌, 가문의 중대한 문제였으니까요. 이들의 노력은 모두 사랑이란 꽃을 피우기 위한 연(緣)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꽃은 피어나기 위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그 꽃은 쉽사리 피질 않습니다. 수많은 인고의 시간과 피나는 노력의 과정이 있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인연 역시 쉽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수만 번의 우연한 만남 속에서 사랑을 이루기 위한 용기가 있을 때 기막힌 운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운명에는 우연이 없다. 인간은 어떤 운명을 만나기 전에 벌써 저 스스로 그것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라는 우드로 윌슨(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미국 제28대 대통령)의 말처럼, 여러분의 멋진 운명을 위해 용기 내어 한 발짝 더 나아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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