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확신을 지키고자 세상을 부정하는 마음
어벤져스 이야기의 중요한 전환점,
《인피니티 워》는 조금 이상한 영화입니다.
일반적으로 히어로물의 주역은 당연히 영웅입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는
토니 스타크나 스티브 로저스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하지만, 《인피니티 워》는 다릅니다.
두 영웅이
주변 인물로,
어쩌면 적대자로
물러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인피니티 워》의 이야기 중심에는
항상 악당, 타노스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의 계획을 따라가고, 그의 여정을 보여주고,
그의 승리로 끝납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타노스는 영웅처럼 보인다.”
정말 그럴까요.
타노스 역시 자신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습니다.
그만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자신의 말대로 되면 충분히 가능할거라 생각했죠.
그 점은 토니 스타크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는 타노스 자신이, 그리고 본인은 말하지 않았지만,
토니 스타크 역시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고향이 멸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원의 고갈, 통제되지 않는 욕망, 파국으로 향하는 문명.
그래서 그는 제안했습니다.
“절반을 줄이면 모두가 살 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를 따르지 않았고,
결국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그 경험은 그에게 확신을 남깁니다.
“내가 옳았다.”
이 확신은 그의 모든 행동의 중심이 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예외로 두지 않습니다.
딸을 희생하고, 자신의 고통을 감수합니다.
이 장면은 강렬합니다.
그는 사랑을 느끼고,
상실을 겪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자신이 세상을 구했다고 믿으며
조용히 은퇴합니다.
농부가 된 타노스.
스톤을 파괴하며 조용히 세상을 바라보는 빌런.
상처 입은 영웅들,
어벤져스가 그를 찾아왔을때,
그는 자신이 괴롭힌 딸에게 사과하며,
담담히 죽음을 맞이합니다.
내면의 성장, 영웅이 보여주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엔드게임》에서 이러한 성장을 거치지 않은
과거의 타노스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사랑과 상실을 겪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나는 옳다"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나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그가 미래의 기억을 통해 모든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을.
그러나, 동시에
그 성공이 완전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절반을 없애버리면, 남은 절반은 잘 살 줄 알았어."
그리고 그는 덧붙입니다.
"하지만, 아니더군."
이 지점은 중요합니다.
그가 자신이 잘못 생각했음을,
자신이 실수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진정한 영웅이었다면 여기서 멈췄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멸망시키고 다시 만들기로 했다.”
여기서 모든 것이 갈라집니다.
타노스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희생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지키기 위해 세계를 부정합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다. 세상이 잘못된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먹은 순간, 그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 아닌
자신만을 생각하는 빌런이 됩니다.
토니 스타크 역시 비슷한 질문 앞에 섭니다.
패배를 경험했고, 동료를 잃었고, 자신의 한계를 보았습니다.
그 역시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최선을 다했다. 실패한건 너희 잘못이다.”
실제로,
《엔드게임》의 초반에서 토니 스타크는
자기가 힘들었던 순간에 모두가 함께 있지 않았던 것을 푸념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토니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확신을 붙잡는 대신,
자신을 의심합니다.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
타노스와 토니의 차이는 힘의 차이가 아닙니다.
의도의 차이도 아닙니다.
잘못을 대하는 태도에서,
잘못 앞에서 선택한 마음에서,
그 둘의 이야기는 갈라집니다.
타노스는 강하고, 일관되고,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래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 앞에서
한발 물러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결코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 영웅이 아니라
비극적 확신의 인물로 남습니다.
영웅과 빌런은 출발점이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이 문장은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장이 시험받는 순간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틀렸을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묻게 됩니다.
진짜 위험한 것은 악의 의지일까요.
아니면 돌아보지 않는 확신일까요.
이야기로 읽는 마음 2. 마음으로 다시 읽는 인피니티 사가
2-1. 토니 스타크는 왜 인피니티 사가의 얼굴이 되었을까? — 흔들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야기
2-2. 강철 가면 아래 감추어진, 책임이라는 두려움 — 홀로 세상을 지키려는 강박
2-3. 시빌워. 영웅의 싸움처럼 보이는 감정의 균열 — 옳음과 감정에서 충돌하는 마음
2-4. 돌아보지 않는 확신이 낳은 빌런, 타노스의 마음 — 확신을 지키고자 세상을 부정하는 마음
2-5. 신념에서 시작한 캡틴 아메리카의 변화 — 신념과 신념 사이에서, 서로를 지켜준 마음
2-6. 토니 스타크, 마침내 혼자가 아니었던 선택 — 확신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마음
2-7. 멀티버스 사가는 왜 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했을까? — 무한한 선택이 가져다주는 무의미한 흔들림
[ “이 세상을 다시 만들겠다.”
자신의 잘못 앞에서 멈출 수 있는가.
그 순간, 영웅과 빌런은 갈라집니다. ]
(Avengers : Endgame / Marvel Studi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