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로 읽는 마음 2. 마음으로 다시 읽는 인피니티 사가
한때 엄청나게 인기를 끌던 시리즈가 있습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열광하던 시리즈가 있었습니다.
한 영화부터 시작된 그 이야기는
장장 11년에 걸쳐 무수한 이야기와 캐릭터를 낳았고,
그들이 함께 모여 펼쳐지는 종막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억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 마음에서 그 이야기는 멀어지고 있습니다.
규모는 더 커지고, 캐릭터는 늘어나지만,
사람들은 더는 여기에 열광하지 않습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다양한 작품이 모인 유니버스 시리즈의 이상형으로 불리던 이 세계는
왜 지금 우리의 마음에서 멀어지고 있을까요?
누군가는 말합니다.
너무 방대해서 따라가기 힘들다.
또 누군가는 말합니다.
지나치게 많이 나와서 지쳤다.
하지만, 한때 이 세계에 빠졌고,
지금도 꾸준히 이를 보고 있는 저로서는,
이 논쟁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 빠져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왜 우리는 MCU, 더 정확히 말하면 인피니티 사가라는 이야기에 마음을 빼았겼나"
라는 것입니다.
슈퍼 히어로는 대개 힘의 이야기,
액션이 지배하는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인피니티 사가는 마음의 이야기였습니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며 변화한 이야기,
그의 마음을 따라,
인피니티 사가를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2008년부터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이야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시리즈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번개를 부르는 신도 있고,
방패를 든 군인도 있고,
초인적인 힘을 가진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피니티 사가를 다시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얼굴은
토니 스타크.
신도 영웅도 아닌,
그저 철갑 슈트를 입은 한 인간입니다.
그건 가장 강한 히어로도 아니었고, 가장 정의로운 히어로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자주 나오긴 했지만, 항상 주인공이었던 것도 아니죠.
심지어 주인공의 적대자로서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인피니티 사가의 얼굴처럼 떠오를까요?
최후를 장식한 그의 희생 때문에?
물론 그것도 이유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무기를 팔았고, 자신의 재능을 과시했고,
카메라 앞에서 웃으며
“내가 아이언맨입니다”
라고 선언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출발점은 정의가 아니라 자기 확신에 가까웠습니다.
캡틴 아메리카처럼 고결한 영웅이 아니라
속된 말로 망나니에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무기 개발을 게임처럼 즐기고,
슈트를 장난감처럼 시험하던
천진난만한 어린애 같은 사람.
그런 그가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 사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는지를 드러냅니다.
인피니티 사가는 완벽한 영웅의 서사가 아니라,
흔들리는 인간의 기록이었습니다.
토니가 처음으로 진지해진 순간은 동굴 속이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무기가 자신을 향해 겨누어지는 장면.
자신의 기술이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이 마주하던 순간.
그때 그는 말합니다.
“내가 책임질게.”
이 문장은 영웅 선언이 아니라
불안의 고백에 가깝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 잘못되었다면 내가 고쳐야 한다는 강박.
이 강박은 이후 그의 모든 선택을 관통합니다.
울트론을 만들 때도, 정부의 통제를 받아들일 때도,
우주에서 타노스를 마주했을 때도.
그는 늘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지?”
이 질문은 고귀해 보이지만 동시에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세계가 통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함께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벤저스의 다른 인물들은 비교적 단단합니다.
스티브 로저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념을 붙잡고 있습니다.
토르는 신의 자리에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지만 그의 정체성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토니는 다릅니다.
그는 매번 의심합니다. 매번 흔들립니다.
매번 스스로를 시험합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이 사가의 감정 축이 됩니다.
우리는 그가 완벽하기 때문에 따라간 것이 아니라
그가 불안하기 때문에 따라갔습니다.
그가 두려워하고, 오만해지고, 무너질때
우리의 마음도 함께 흔들리고 무너졌습니다.
인피니티 사가의 마지막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내가 다 책임지겠다”
라는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동료와 함께 싸웠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입니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는
영웅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선택했다는 점에서.
그래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승리로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기보다, 끝내 책임을 배워낸 인간이었습니다.
인피니티 사가는 거대한 우주의 전쟁처럼 보이지만, 조금 다르게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한 인간이
“내가 책임질게”
라는 말의 무게를 조금씩 이해해 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말이 통제가 아니라 연대로 바뀌는 과정.
그래서 저는 이 시리즈를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고 부르기보다
아이언맨 유니버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가 따라간 것은
신의 힘이 아니라,
한 인간의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렇게 묻게 됩니다.
정말로 우리는 이들 이야기에서 가장 강한 영웅을 사랑했던 것일까요?
이야기로 읽는 마음 2. 마음으로 다시 읽는 인피니티 사가
2-1. 토니 스타크는 왜 인피니티 사가의 얼굴이 되었을까? — 흔들리는 마음으로 시작한 이야기
2-2. 강철 가면 아래 감추어진, 책임이라는 두려움 — 홀로 세상을 지키려는 강박
2-3. 시빌워. 영웅의 싸움처럼 보이는 감정의 균열 — 옳음과 감정에서 충돌하는 마음
2-4. 돌아보지 않는 확신이 낳은 빌런, 타노스의 마음 — 확신을 지키고자 세상을 부정하는 마음
2-5. 신념에서 시작한 캡틴 아메리카의 변화 — 신념과 신념 사이에서, 서로를 지켜준 마음
2-6. 토니 스타크, 마침내 혼자가 아니었던 선택 — 확신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마음
2-7. 멀티버스 사가는 왜 우리 마음을 흔들지 못했을까? — 무한한 선택이 가져다주는 무의미한 흔들림
[ "내 슈트가 더 멋있어."
이들의 싸움은 영웅의 전투라기보다
어른이 되려는 아이들의 경쟁처럼 보입니다. ]
(Ironman, Marvel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