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죽지 못한 자들
붉은 안개가 골짜기를 덮고 있었다.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고, 대신 하늘 끝엔 퍼렇게 녹은 철처럼 빛나는 무언가 둥둥 떠 있었다. 낮인지 밤인지 판단할 수 없는 하늘. 소영은 무릎까지 잠긴 포자층을 천천히 걸었다. 발아래서 셀플라가 부유하며 기분 나쁜 울렁임을 일으켰다.
"ㅈ.. 저기... 소영아. 이쪽은 위험해 보이는데..."
고하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포자들은 그 작은 파동조차 인식하며 파르르 떨었다. 셀플라가 검붉게 변했다.
소영은 돌아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쉿. 넌 입 닫고 따라오기만 해."
그녀는 손에 쥔 쥔방사성 열화도 나침반을 들여다봤다. 바늘이 북동쪽으로 미친 듯이 떨리고 있었다.
'분명해. 그쪽이다.'
그녀가 가려고 하는 곳엔 오래된 기지 잔해가 있다. 거기서 무전기를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6년 전 그녀의 가족을 죽인 그 남자의, 목소리.
"네가 죽을 때 네 목소리를 내가 듣고 싶어."
고저 없는 그 말은 어쩐지 이제 스스로를 향한 주문처럼 되뇌었다.
고하는 숨을 삼켰다. 코끝에서 셀플라의 포자가 피처럼 번졌다.
"나는 네가... 죽는 거 안 봤으면 좋겠어."
소영은 걸음을 멈췄다. 희미하게 웃는 듯 듯보였지만 그것이 피곤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었다.
"그건 네가 바라는 거지. 난 이미 여러 번 죽었어."
그 순간, 무음 늑대가 숲가의 안개를 밀고 다가왔다. 털 대신 거울 같은 껍질을 두른 그것은 고하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다. 소리만 없다면 이 생물은 사람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고하의 복부에서 배고픔이 끓었다.
'꼬르륵'
소영이 그를 향해 몸을 던진 건 그다음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땅바닥에 뒹굴었고, 무음 늑대는 그들을 스쳐갔다. 대가리 끝에 달린 도르의 귀처럼 생긴 기관이 그들의 숨결을 읽고 있었다.
소영은 고하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소리 내면 죽어. 감정 드러내도 죽어. 그러니까 너답게 굴지 마."
그녀의 손에는 붉은 자국이 다시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