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알베르카뮈
나는 약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늘 도망쳐야 했다. 생존을 위해 주변을 기민하게 살폈다. 포식자가 나타날 때를 알아채 몸을 숨기고, 다른 피식자가 희생되는 틈을 타 달아나 내 몫의 먹이를 챙겼다. 비열해 보여도, 그것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렇게 도망자로 살다 보니 어느새 기자가 되어 있었다. 평생 약자로 살아왔던 내가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언론인이 된 것이다. 나는 내 직업이 자랑스러웠다. 시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부조리를 고발할 때면, 마치 소설 속 영웅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영웅 서사에 빼놓을 수 없는 '히로인' 역시 나에게 존재했다.
그녀는 나의 약점을 강점이라 믿어주고, 나의 빈틈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유일한 존재.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숨 쉬고 있는데, 얼굴도 모르는 타인들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인간은 딱 두 부류뿐이다. 정의로운 척 살아가는 위선자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미래를 내다볼 줄 모르는 멍청이. 그건 내가 보증할 수 있다.
나는 그녀와 함께할 미래를 위해 취재차 작고 평화로운 도시, 오랑에 왔다. 이 도시는 소박함 그 자체였다. 사람들은 큰 욕심 없이 적당히 일하며 여유를 즐겼다. 나중에 은퇴하면 그녀와 이곳에 와서 살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소박한 상상은 '페스트'라는 진짜 악몽이 도시를 덮치며 산산조각 났다.
도시는 굳게 봉쇄되었고, 사람들은 이성을 잃었다. 알코올이 균을 막아준다는 헛소문에 취해 살거나, 괴상한 우비를 사들이며 불안을 달랬다. 재난은 사람을 비상식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내게 닥친 진짜 지옥은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거듭 말하지만 나의 신념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 살고 죽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갇힌 도시에서 비상식적인 사람들과 부대끼며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니.
이 와중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이 있었다. 의사 리유와 타루였다. 그들은 보건대를 꾸려 묵묵히 환자들을 돌봤다.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완벽한 타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시민과 시민의 관계란 신문에서 부고를 읽고도 눈물 흘리지 않는 얕은 농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런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다니. 나는 그들의 바보 같은 숭고함을 뒤로하고, 불법적인 경로를 총동원해서라도 기필코 이곳을 빠져나가리라 다짐했다.
마침내 이곳을 탈출할 수 있게 된 날, 나는 오랑을 떠나지 못했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곁을 지키는 타인들을 보며 깨달았다. 이 재난 속에서 '나 혼자만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내가 할 몫을 외면하고 떠났을 때, 나를 동료라 불렀던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간다면 나는 평생 그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어릴 적 툭하면 도망쳤던 건 단지 약해서가 아니라, 도망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타인과의 연대가 이토록 포근한 것인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곁으로 가기 위해, 남겨진 이들을 기꺼이 사랑해야 한다니. 이래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희생'인가 보다.
여기까지가 내가 상상해 본 랑베르의 시선이다. 책을 덮는 순간, 그가 나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소중한 사람을 핑계 삼아 무거운 현실로부터 도망친 적이 많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한 뒤 지금까지, 나는 소설이라는 나만의 이야기를 쓰며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랑베르가 파리로 도망치려 했던 것처럼, 나 역시 치열한 사회로 나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현실이 두려워 나만의 안식처로 숨어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도시의 삶을 밀어내고 어떻게든 제주도처럼 동떨어진 곳에서 일하고 싶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만 행복할 수 있다면 남들이 어떻게 살든 내 알 바 아니라고 여겼다.
하지만 오랑의 시민들이 서로를 지키며 살아남았듯, 결국 내가 발 딛고 사랑해야 할 곳은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팍팍한 세상이다. 책 속에서 의사 리유는 전염병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정의한 성실성이란,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이었다.
홀로 멈춰 있던 시간을 지나,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 사회의 일원이 될 준비를 하는 지금. 나는 도망치는 대신 리유의 성실성을 곁에 두기로 했다. 아직 타루처럼 완벽한 이타심을 말하기엔 부족하다. 그러나 내 곁의 사람을 지키고, 내가 속한 이 작은 세계에서 나에게 주어진 몫의 과업을 묵묵히 짊어지는 것. 그것이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첫 번째 저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