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Yourz - J.Cole
최근, 힙합계의 수도승이라 불리는 제이콜이 정규 7집 [The Fall-Off]로 컴백했다. 요란한 프로모션이나 소셜 미디어를 겨냥한 얄팍한 마케팅 따위는 없었다. 그저 ‘제이콜답게’,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묵직한 정규 앨범을 세상에 툭 던져놓았을 뿐이다. 수년 전부터 은퇴를 암시하며 예고했던 이 앨범을 듣고 있자니, 내 마음은 자연스럽게 그의 음악을 처음 만났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그의 음악을 처음 접했던 건, 세상의 중심이 나라고 굳게 믿으며 묘한 허세와 우울을 동시에 품고 살던 중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나는 흔히 말하는 ‘절친’이라 부를 만한 친구가 없었다. 같은 반에 구색 맞추기용으로 어울리는 녀석이 한 명 있긴 했지만, 우리는 점심을 같이 먹지도 않았고 주말에 따로 만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서로의 필요—나는 힙합 앨범을 디깅하기 위해, 그 친구는 애니메이션 굿즈를 구경하기 위해—에 의해 홍대 거리를 몇 번 함께 걸었던 것이 관계의 전부였다. 다른 반 친구가 한 명 있었으나, 그 녀석은 주변에 늘 사람이 끓는 이른바 '인싸'였기에 내가 그 애의 왁자지껄한 일상에 비집고 들어갈 틈은 좁았다. 학교가 끝나고 향하던 학원에서도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그 철저한 고립 상태를 은근히 즐겼거나, 최소한 즐기는 척 연기했던 것 같다. 겉보기엔 친구가 아예 없는 왕따는 아니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누구와도 깊게 교류하지 않는 상태. 마치 드라마나 만화 속에서 세상에 무관심한 척 선을 긋고 이어폰을 꽂은 채 살아가는, 사연 있는 주인공 병에 단단히 걸려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두꺼운 가면을 벗겨낸 이면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부러움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무리 지어 다니며 실없는 농담을 던지는 아이들이 부러웠고, 점심시간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급식실로 우르르 몰려가는 그 소속감이 사무치게 부러웠다. 식판을 들고 어디에 앉아야 할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그들의 당연한 일상이 내게는 가장 결핍된 조각이었다.
그렇게 매일 하교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새로운 힙합 신보를 뒤적거리며 공허함을 채우던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제이콜의 정규 3집 <2014 Forest Hills Drive>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 특히 수록곡 ‘Love Yourz’는 전에도 좋아하던 힙합을 더욱 더 좋아하게 만들어줬다.
이 앨범은 힙합 역사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단 한 명의 피처링 게스트 없이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으로 플래티넘(100만 장 이상 판매)을 기록한, 말 그대로 ‘미친 앨범’이기 때문이다. 2014년 당시 힙합 씬의 유행은 돈과 성공을 과시하는 허세 가득한 트랩 사운드였다. 빌보드 차트 상위권은 유명 남성 래퍼와 호소력 짙은 여성 보컬의 자극적인 콜라보레이션 곡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콜은 화려한 게스트의 이름값이나 유행하는 비트에 기대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진솔한 서사만으로 대중을 설득해 냈다.
<2014 Forest Hills Drive>의 가장 큰 위대함은 화자가 청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다. 앨범은 더 큰 성공을 좇아 화려한 할리우드로 떠났던 청년이, 결국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처음 출발했던 고향 집(노스캐롤라이나 페이엣빌의 포레스트 힐스 드라이브)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는 서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Love Yourz’는 이 앨범의 척추이자 주제 의식을 가장 완벽하게 대변하는 곡이다.
제이콜은 이 곡에서 잔소리하는 삼촌이나 강연자처럼 다그치지 않는다. 대신, 산전수전 다 겪고 돌아온 동네 친한 형처럼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아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보이지 않는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 그는 우리가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너머로 보는 타인의 완벽하게 편집된 삶과, 모니터 앞의 초라한 내 현실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을 정확히 짚어낸다. 그리고 그 괴리감이 결국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서운 족쇄가 된다며, 화려한 도시의 불빛 속에서 현대인들이 느끼는 절대적인 고독을 담담하게 위로한다.
시간이 흘러 20대 후반, 어엿한 어른이 되어 사회라는 더 큰 무대 앞에 선 지금도 그 위로는 유효하다. 더 큰 성취를 위해 거대한 도시로 몰려드는 이촌향도 현상은 극에 달해, 도시의 밤은 좀처럼 꺼질 줄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빽빽한 도시 안에서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시간을 보내며,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보다 차라리 자발적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도 그 거대한 도시의 고독한 점들 중 하나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타인과 나를 저울질하며 내 안으로 파고들었을까. 가만히 이유를 곱씹어 보면, 그 시작점에는 항상 비교하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제이콜처럼 평범한 중산층 환경에서 자랐다.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인 고민이나 현실적인 벽에 부딪힌 적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생존을 위협받을 만큼의 밑바닥은 아니었다. 꽤나 평범하고 괜찮은 환경에서 자랐다.
하지만 생존의 위협이 없다고 해서 비교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고를 조립하듯 내 인생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조립하고 싶지만, 현실의 나는 자주 덜컹거린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나보다 일찍 자리를 잡고 돈을 많이 버는 사람, 나보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 구김살 없이 밝고 성격이 좋아 주변에 늘 사람이 끊이지 않는 사람. 나는 늘 그들에게 있는 무언가가 내게는 결여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런 것들이 부족해서 내게 의지할 친구가 없고 미래가 불안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화려한 남들의 성취와 포트폴리오를 볼 때면, 내 손에 쥔 것들이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그런 자격지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댈 때마다, 제이콜은 무심한 듯 따뜻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넨다.
"네가 어딜 가든, 너보다 더 좋은 차를 타는 사람은 항상 있을 거야. 네가 어딜 가든, 너보다 더 비싸고 좋은 시계를 찬 사람도 있겠지. 그리고 네가 어딜 가든, 네 곁의 사람보다 더 근사해 보이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인생은 끝이 없어. 완벽해 보이는 그들의 삶에도 저마다의 지옥은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너는, 지금 네게 주어진 상황과 너의 삶을 사랑해야 해. 이 세상에 너의 삶보다 더 나은 삶은 존재하지 않거든. (No such thing as a life that's better than yours.)"
요즘도 나는 종종 남들과 나를 저울질하는 함정에 빠지곤 한다. 타인의 반짝이는 성취를 보며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뭐지?’,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조적이고 날 선 결론으로 나를 몰아세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우울의 끝까지 추락하기 전에 의식적으로 이 노래, ‘Love Yourz’를 머릿속에 재생한다. 반복되는 건반 루프와 제이콜의 차분한 래핑을 떠올리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되뇌어본다. 나는 제법 괜찮은 환경에서 무탈하게 자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고. 남들이 가진 화려한 조명은 없을지언정, 나만의 속도로 내 인생의 밑그림을 묵묵히 그려나가고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다.
매일 밤 의식적으로 다지는 이 자기 긍정의 믿음이, 언젠가는 나를 정말로 흔들림 없이 ‘괜찮은 사람’으로 완성해 주기를 기도한다. 중학교 3학년의 어느 외롭던 오후, 겉돌던 소년이 20대 후반의 어른이 될 때까지 제이콜의 음악이 곁을 지켜주었던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의 남은 챕터들 속에서도 "너의 삶을 사랑하라"는 이 묵직한 가사는 변함없이 나를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뼈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