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 뤼방 오지앙
수많은 유명인이 하루아침에 명예를 잃고 사회적 나락으로 떨어진다. 대중은 그들의 추락을 실시간으로 관전하며 분노하고, 때로는 더 깊은 바닥으로 그들을 끌어내리려 기꺼이 에너지를 쏟는다. 인간은 본디 입체적인 존재다. 화면 속에 비친 정제된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타인의 몰락을 원한다.
미디어 앞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이들이, 카메라 밖에서는 팬들을 단순한 지갑이나 수익 창출의 도구로 취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대중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 이중적인 태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역겹고 불쾌해진다. 이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적 반응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그 불쾌함이 곧바로 부도덕함을 의미하는가?
뤼방 오지앙의 철학은 바로 이 지점을 날카롭게 파고든다. 그는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불쾌감과 객관적인 부도덕성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단지 내 비위가 상한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 들며, 이를 도덕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윤리는 누군가에게 명확하고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했을 때만 작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왜 이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회가 특정 개인을 향해 집단적인 손가락질을 가하는 이유는, 그 행위가 절대적인 악이라서가 아니다. 단지 다수가 굳게 믿고 있는 익숙한 질서와 통념에 어긋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연예인을 향한 대중의 잣대를 보면 이 기형적인 구조가 명확히 드러난다.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욕망과 결함을 가진 인간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의 사생활, 생각, 그리고 일상적인 행동 하나하나를 철저히 억압하고 통제하려 든다. 거리를 자유롭게 걷거나,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표출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대중은 흔히 "그들이 막대한 부를 누리기 때문"이라며 이 억압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는 빈약한 논리다. 세상에는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많으며, 한남더힐 같은 최고급 빌라에 연예인들만 거주하는 것도 아니다. 돈을 많이 번다는 사실이 개인의 기본권을 박탈당해도 좋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도덕이란 다수의 억압적인 취향과 편견을 정당화하기 위해 휘두르는 폭력적인 핑계에 불과하다.
오지앙은 한 발 더 나아가 개인이 스스로를 망가뜨릴 자유까지 옹호한다. 나는 이 극단적이고도 명쾌한 논리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극단적인 게으름이든,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난 자극적인 취미든, 그것이 타인에게 물리적이나 금전적인 타격을 주지 않는다면 철저히 개인의 고유한 영역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인간은 모두 각기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모두가 획일화된 목표를 향해 달려갈 필요도 없고, 같은 방식의 성취에서 행복을 느껴야 할 의무도 없다. 누군가의 눈에는 다소 기괴하고 혐오스러워 보이는 행동일지라도, 당사자가 그 안에서 무해한 즐거움을 느낀다면 타인은 그것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우리는 그들과 우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뿐이라는 명제를 지식으로만 아는 것을 넘어, 현실의 태도로 증명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학창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워온 다양성에 대한 최소한의 적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타인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는 도덕적 오지랖이 만연해 있다. 사람들은 이 폭력적인 간섭을 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거나, 사회의 유지를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이 알량한 명분 아래, 다수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소수자를 향한 폭력은 너무도 쉽게 정당화된다. 피해 없는 행동조차 통제하려는 이 거대한 시스템의 오작동은 개인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따라서 도덕의 영역을 최소한으로 축소하자는 오지앙의 주장은 결코 차갑거나 비인간적인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삶에 개입하는 불필요한 도덕적 마찰을 제거함으로써, 인간에게 가장 완벽한 형태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치열하고 따뜻한 철학적 투쟁이다.
타인의 삶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어질 때, 우리는 도덕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고 자신의 내면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내가 느끼는 이 분노는 정말로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다쳤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내 연약한 비위가 상했기 때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