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된 시스템 속에서 광기를 갈망하다

Hysteria - Muse

by 요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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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강렬한 인연은 우리의 예상을 비웃듯,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식과 장소에서 불쑥 찾아오기 마련이다. 영국의 록 밴드 뮤즈의 음악, 그중에서도 Hysteria라는 곡과의 첫 만남 역시 그러했다. 내가 아직 중학교 교복조차 입지 않았던 어린 시절, 나는 특유의 묵은 종이 냄새가 내려앉은 조용한 도서관에 앉아 있었다. 당시 내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지금은 제목조차 희미해진 어느 단편 소설집이었다. 그저 활자를 따라가던 중, 소설 속 주인공이 무명 밴드의 프론트맨으로 등장하는 대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가 무대 위에서 연주하려던 곡이 바로 뮤즈의 Hysteria와 Muscle Museum이었다.


활자로만 묘사된 그 음악이 대체 어떤 소리를 품고 있을지 호기심이 일었다. 책에서 언급된 낯선 음악이나 영화를 굳이 찾아보고야 마는 오랜 습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처음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고요했던 도서관의 공기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파괴적이고 압도적인 사운드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어린 나이에 내게 더 큰 충격과 전율을 안겨주었던 곡은 기괴하고도 매혹적인 선율을 가진 Muscle Museum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국 나의 플레이리스트 한구석에 굳건히 자리 잡고 끊임없이 나를 다시 부르는 곡은 불후의 명곡 Hysteria가 되었다. 첫인상의 강렬함은 전자가 앞섰을지 몰라도, 세월을 견뎌내는 생명력과 들을 때마다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깊이는 후자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곡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단연 그들이 무대 위에서 뿜어내는 라이브의 카타르시스와 영상 매체를 통해 구현한 시각적 상징성이다. 특히 한국의 팬들에게는 2013년 내한 공연의 기억이 각별하게 남아 있다. 당시 뮤즈는 Hysteria의 전주가 시작되기 전, 기타로 한국의 애국가를 연주하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는 그들의 곡 Panic Station 뮤직비디오에 일본의 전범기가 등장했던 뼈아픈 실수에 대해, 한국 팬들에게 건네는 밴드 차원의 진정성 있는 사과의 의미였다. 이 에피소드는 뮤즈라는 밴드가 단순히 소리만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을 듣는 이들과 시대적 맥락을 공유하고 소통하려는 아티스트임을 방증한다.


라이브 무대의 폭발력 못지않게 Hysteria의 공식 뮤직비디오 역시 곡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대변한다.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영화 The Wall에 등장하는 파괴적인 호텔 씬을 오마주한 이 영상은, 한 인간이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창부가 등장하는 화면을 보며 호텔 방의 모든 집기를 때려 부수고 이성을 잃어가는 남자의 모습은, 곡이 품고 있는 병적인 집착과 폭력성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치환해 낸다. 이 뮤직비디오 자체가 곧 Hysteria라는 곡의 시각적 해설서이자, 광기라는 추상적 감정의 물성을 보여주는 탁월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곡을, 특히 라이브 버전을 열광적으로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도입부부터 곡 전체를 장악하며 질주하는 경이로운 베이스라인 때문이다. 뮤즈는 록 음악 역사상 손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베이스라인을 가진 곡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끈적하고 관능적인 리프의 Supermassive Black Hole이나, 묵직하고 군대 행진곡 같은 압도감을 주는 Psycho의 베이스 역시 훌륭하다. 하지만 Hysteria가 선사하는 그 맹렬하고 날카로운 베이스라인을 뛰어넘을 만한 곡은, 감히 단언컨대 지구상을 통틀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시험하듯 16분음표를 쉴 새 없이, 그것도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일정한 간격과 폭발적인 강도로 연주해 내는 크리스 볼첸홀의 기량은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스튜디오의 편집을 거친 음원이 아니라, 수만 명의 관중 앞 라이브 무대에서 매번 완벽하게 재현된다는 사실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사운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도 이 곡은 혁신적이었다. 뮤즈는 이 곡이 수록된 3집 앨범 [Absolution]부터 일렉트로닉 신시사이저 베이스와 실제 베이스 기타의 아날로그 소리를 겹겹이 쌓아 올리는 레이어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실험적인 톤 메이킹 덕분에 Hysteria의 베이스는 기타보다도 훨씬 더 공격적이고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독보적인 질감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클래식 음악 애호가로 잘 알려진 프론트맨 매튜 벨라미의 섬세한 터치가 더해진다. 그의 기타 솔로를 가만히 들어보면, 그저 디스토션을 잔뜩 먹인 빠르고 시끄러운 록 기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서 흔히 쓰이는 아르페지오 전개 방식을 차용하여, 곡의 거친 분위기 속에서도 유려하고 신경질적인, 그래서 더 위태롭고 아름다운 선율을 엮어낸다.


사운드와 기법에 얽힌 이 모든 음악적 성취를 뒤로하고서라도, Hysteria라는 곡 자체가 품고 있는 철학적 서사에는 깊이 사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 곡은 결코 낭만적인 러브 송이 아니다. 오히려 한 인물이 타인을 향한 맹목적인 갈망에 잠식되어, 스토커와 같은 병적인 집착으로 변질되어 가는 과정을 섬뜩하리만치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우리는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갈망하게 된다. 때로는 그 대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일상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류가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우리 삶에 언제나 긍정적이고 따뜻한 온기만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사랑은 이성의 통제 아래 놓여 있을 때만 아름다운 서사를 유지할 수 있다. 화자의 감정이 어느새 정상적인 궤도를 이탈하여 선을 넘고 광기의 단계에 돌입하는 순간, 타인을 향한 배려는 사라지고 오직 상대를 소유하고 통째로 집어삼키고 싶다는 원초적인 폭력성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광기에 휩싸일 때 기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가슴 깊은 곳에 억눌린 야성을 품고 있으며,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아도 가끔은 지긋지긋한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린 채 미치도록 살고 싶다는 본능적인 충동을 이해한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과 도덕이라는 이름의 규범 안에 단단히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선을 넘고 이성을 잃는 순간, 그것이 내 삶에 얼마나 끔찍한 파멸을 가져올지 머리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저 숨을 죽이고 규범에 순응할 뿐이다.


때때로 나 역시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저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는 것 하나에만 깊게 빠져 살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그런 짐승 같고 투명한 삶을 살고 싶다는 은밀한 욕망이 고개를 든다. 이성이나 체면 따위는 집어던지고 내 안의 끓어오르는 감정만을 좇는 삶 말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결코 그렇게 행동할 수 없다. 나를 둘러싼 환경,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 그리고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평범한 어른으로서의 역할 등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나는 무대 위에서 분노에 찬 매튜 벨라미처럼 값비싼 기타를 박살 내며 포효할 수도 없고, Hysteria의 가사 속 화자처럼 이성을 잃은 광기에 흠뻑 젖어 일상을 파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안전한 방안에 앉아, 이 맹렬한 곡의 볼륨을 높이는 것으로 내 안의 폭발하지 못한 갈망을 대리 만족하며 해소할 뿐이다.


이 곡의 화자가 이토록 극단적인 광기의 삶을 살게 된 근저에는 분명 심각한 결핍이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한 상처이거나, 건강하게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알지 못한 무지가 만들어낸 결핍. 그 거대한 내면의 구멍이 결국 그의 심리를 완전히 붕괴시켰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은 것이다. 만약 그가 이 치명적인 수렁에 빠지기 전에 누군가로부터 온전하게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웠더라면,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과 건강하게 교류하는 훈련을 거쳤더라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랑의 방식을 온전히 체득한 채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좋든 싫든 간에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감정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를 구원하고, 때로는 Hysteria처럼 우리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할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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