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 최은영
책을 읽다 오랜만에 눈물을 흘렸다. 감정에 북받쳐 쏟아낸 억지 울음이 아니라, 그들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통감했기에 흐른 눈물이었다. 가상의 인물들이고 나와 전혀 다른 궤의 삶을 살았음에도 내가 온전히 공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형태만 다를 뿐 세대 간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고 사회 구조가 변함에 따라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폭력의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다.
인간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것은 고통에 대한 공감이다. 하지만 각 세대가 겪는 고통의 형태가 너무도 다르기에, 우리는 종종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설령 그것이 엄청난 애정을 품고 살아가는 가족일지라도 말이다. 『밝은 밤』은 바로 그런 간극에 관한 이야기다. 가부장적인 시대 배경과 전쟁이라는 가혹한 폭력 속에서 그녀들을 끝내 버티게 한 것은 가족이나 남편이 아니었다. 혈연이 아님에도 곁에서 서로를 온전히 알아보고 살리려 했던 깊은 우정과 연대만이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유아기를 지나 초등학생이 되면 아이는 부모보다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부모가 모르는 낯선 자식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부모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자신이 아는 아이의 모습만 남아있다. 우연히 그 기대와 전혀 다른 자식의 민낯을 마주했을 때, 부모는 필연적으로 배신감을 느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당시 친구들과 아파트 단지 내 분수대 근처 커다란 돌들을 아지트 삼아 놀곤 했다. 두려울 것 없던 나이였고, 거친 놀이의 특성상 동네 골목을 지배하는 양 행동했다. 특히 무리 사이에서는 누가 더 천박하고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지가 일종의 권력이자 과시 수단이었다. 이미 그 방면으로 유명했던 나는 그날도 친구들의 부추김에 한껏 고무되어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장을 보고 돌아오시던 어머니와 마주쳤다.
집에 가면 크게 혼이 날 거라 직감했다. 하지만 의외로 어머니는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물으셨다. "언제부터 그런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니?" 그 물음을 듣고도 나는 비뚤어진 태도를 고치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무리 안에서 과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던,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상황은 나와 다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르게 그 시절의 철 없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설은 세대 간의 상처가 어떻게 흉터처럼 남아 대물림되는지 보여준다. 증조할머니의 아픔이 할머니의 결핍으로, 할머니의 상실이 엄마의 차가움으로, 엄마의 억압이 지연의 깊은 고립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지연이 희령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행위를 통해, 이 길고 긴 고통의 사슬은 처음으로 멈춰 서서 치유의 방향으로 틀어진다.
듣는다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대화는 탁구와 같아서 한쪽이 제대로 받아주지 않으면 랠리가 이어질 수 없다. 남에게 자신의 은밀한 상처를 꺼내어 말하는 것만큼이나, 타인의 상처를 오롯이 듣고 감내하는 것 역시 고된 일이다.
어머니와 나는 서로 말하고 듣는 일에 익숙하지만,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렇지 못하다. 아버지는 좀처럼 당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고, 나의 이야기도 깊이 묻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우리가 소통이 안 되는 이유가 단지 내가 늦둥이이기 때문이라 여기시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연습이 부족했던 것이다. 깊은 대화가 어색해진 채로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다. 우리는 종종 함께 산에 오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노래를 듣고 나는 나의 노래를 들으며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지연과 엄마의 관계 역시 소설이 끝날 때까지 극적인 화해나 완벽한 봉합에 이르지 않는다. 작가는 섣부른 용서나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각자의 한계와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거리를 둔 채로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곁에 남겨두는 법을 보여준다. 이 현실적인 시선이 오히려 더 깊은 위로를 건넨다.
'밝은 밤'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눈빛에 반사되어 주위가 환해지는 밤을 의미한다. 끝없는 밤과 같던 지연의 삶이 과거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희미한 빛을 발견했듯, 누군가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행위 자체가 칠흑 같은 밤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된다. 어쩌면 아버지와 내가 각자의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둔 채 산을 오르는 이 묵묵한 시간도, 완전한 단절이나 영원한 어둠은 아닐 것이다. 비록 지금은 각자의 캄캄한 밤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 서로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 기울이는 용기를 내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가 걷는 그 좁은 산길에도 희미하지만 따뜻한 밝은 밤이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