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rden Shed - Tyler, The Creator
누구에게나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모순, 타인에게는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옹졸함 같은 것들 말이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애써 숨기고 싶은 본모습은 대개 내가 전혀 원하지 않는 타이밍에, 가장 당혹스러운 형태로 세상에 폭로되기 마련이다.
2018년 3월,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우리 학과는 공학인증제도를 따르고 있었기에 수강 신청의 자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동기들은 전공부터 교양까지 거의 모든 시간표를 공유하며 우르르 몰려다녔다. 이름만 대학생이었지, 사실상 우리는 고등학교 4학년이나 다름없었다. 1학년 1학기에는 전공 한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양 수업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동북아시아의 역사'였다.
역사에도, 대학교 수업 자체에도 큰 흥미가 없던 나는 강의실 뒷자리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게 흘려보내거나 책상에 엎드려 자며 보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강단에서 건조하게 수업을 이어가던 교수님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이 중에 혹시 교회 다니는 사람 있습니까?"
정적이 흐르는 찰나의 순간, 나는 손을 들어야 할지 말지 심각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고민했다. 스무 살의 나는 매주 주일이면 교회를 가고 있었지만, 평일에는 여느 공대생들처럼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평범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딱히 남에게 해를 끼치며 악하게 산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선하고 거룩하게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수십 명의 동기 앞에서 교회다니는 걸 밝히기가 몹시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더욱이 나와 스무 살 동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셔대던 참이었다. 아니, 사실 술을 안 마신 날을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술을 마시는 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 없었다. 그저 눈앞에 술이 있으니 마셨고, 분위기가 이끄는 대로 휩쓸렸을 뿐이다. 고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친구들 앞에서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고작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사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주일 예배당의 풍경과 매일 밤 네온사인 아래의 술자리가 어지럽게 교차했다.
하지만 짧은 번뇌 끝에 나는 결국 슬며시 손을 들었다. 심장은 들킬까 봐 두려운 사람처럼 쿵쾅거렸지만, 동시에 무언가 기묘한 해방감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수업이 끝난 후, 내 손듦을 목격한 친구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나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네가 교회를 다녔냐?", "어제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 날라리 신자 아니냐?"라며 농담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다들 다음 수업으로 향하며 나의 종교에 대해 금세 흥미를 잃었다. 사실 그 상황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부풀려 해석한 건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그 과도한 방어기제는, 내 삶이 신앙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시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금주와 금연은 필수 요건'이라는 강박에 가까운 공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신앙생활의 척도가 오직 그 두 가지로만 결정되는 것처럼 여겼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에 와서야 그 기준에 대한 생각이 훨씬 유연해지고 본질을 보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절제'는 불행히도 현대에 와서 그 의미가 심각하게 축소되고 변질된 단어 중 하나다. 요즘 이 말은 대개 '절대적인 금주'나 '절대적인 금연'이라는 비장한 뜻으로 쓰인다. 하지만 성경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로 '절제'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졌던 당시에, 이 단어는 결코 그런 협소한 의미가 아니었다. 절제는 단순히 술과 담배라는 특정 기호식품에 국한된 말이 아니라, 삶을 지배하려는 온갖 종류의 쾌락과 욕망에 관련된 폭넓은 개념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쾌락을 '완전히 억압하고 삼간다'는 뜻이 아니라 '적절한 정도까지만 누리고 그 이상은 선을 넘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인이 전부 절대 금주를 해야 한다는 건 커다란 오해다. 신도들에게 절대 금주를 율법으로 강제하는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이슬람교다. 성경 어디에도 물질 그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구절은 없다.
물론 특별한 경우에는 스스로 술을 삼갈 수 있다.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도저히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취약한 성향을 가졌다거나(슬프게도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여기에 속하곤 한다), 자신은 그런 성향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쉽게 취해 무너지는 동행자가 있어 그를 자극하지 않고 배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기꺼이 잔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나에게 마땅한 이유와 신념이 있어서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지 남이 적당히 술을 즐기는 것 자체를 '죄'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이 적당히 즐기는 것은 얼마든지 너그럽고 좋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특정 부류의 율법주의적인 악인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 중 하나는, 자기가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포기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그것은 결코 기독교적인 방법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특별한 이유나 결단으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행위 자체를 악하다고 규정하는 순간, 혹은 그것을 자유롭게 누리는 타인을 마음속으로 경멸하는 순간, 그는 좁고 잘못된 율법의 길로 접어들고 마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절제'라는 아름다운 말을 음주와 흡연 문제에만 억지로 끼워 맞추는 바람에 생긴 더 큰 해악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그 외의 다른 수많은 삶의 영역에서 똑같이 일어나는 무절제에는 한없이 관대해지고 무감각해졌다는 사실이다. 매일 밤낮으로 스포츠 경기나 게임에 일상을 잠식당한 남자나, SNS의 화려한 겉치레와 연예인 가십에 정신이 팔려 하루를 낭비하는 여자는, 저녁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만큼이나 무절제한 사람이다. 단지 길 한복판에 쓰러져 잠들거나 냄새를 풍기지 않으니 겉으로는 쉽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겉모습과 포장에 속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철학적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내봤자, 주변 사람들은 쉽게 이해해 주지 않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나의 이런 깊은 딜레마를 더 잘 공감해 준 쪽은 교회 안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이 전혀 없는 바깥 친구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교회 다녀도 사람인데 술 좀 마실 수 있지, 그게 뭐 대수냐"며 편하게 넘겨주었다. 오히려 나를 옥죄었던 것은 내 안의 강박과,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으면서도 일탈을 일삼는다'는 모순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나의 자존심이었다.
결국 나는 억울하고, 더럽고 치사해서 술과 담배를 아예 끊어버리기로 결심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어서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잣대에 휘둘리는 내 모습이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때가 21살의 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벚꽃이 흩날리던 그맘때 이후로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거나 진심으로 축하해야 하는 자리에서 두세 번 정도 예의상 잔을 부딪친 것을 제외하면 술을 마시지 않았고, 담배는 단 한 번도 입에 물지 않았다.
술과 담배를 끊고 나서 초기 나의 신앙생활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놀랍게도 성결함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 역시 나를 평가하던 그들처럼 잣대를 들이대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해 여름, 나는 교회 청년들과 함께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를 떠났다. 총 10명 남짓한 청년들이 땀을 흘리며 동고동락했는데, 그중 세 명은 흡연자였다. 그리고 그들은 낯설고 무더운 선교지 한구석에서도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웠다. 우연히 그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연기를 목격한 순간, 나는 불과 몇 달 전까지 그들과 똑같이 연기를 뱉어내던 지난날의 나를 까맣게 잊은 채 속으로 그들을 맹렬히 정죄했다. '선교지까지 와서 저게 뭐 하는 짓인가.' 내가 지금 안 하고 있으니, 그들이 하는 행동은 순식간에 추악한 죄인의 행동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리적인 죄악은 끊어냈을지 몰라도, 교만함이라는 더 크고 무서운 영적인 죄악이 내 마음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가 불렀던 곡 중에 'Garden Shed'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 속 창고는 남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과 정체성을 욱여넣고 스스로를 가두는 좁고 어두운 곳이지만, 동시에 언젠가 밖으로 나와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씨앗과 흙이 숨 쉬고 있는 잠재력의 공간이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스무 살 무렵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느꼈던 깊은 자격지심은 그 '창고'와 같았다. 한국 교회가 세상의 지탄을 받는 현실 속에서, 그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라도 흠결 없이 완벽하게 살아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빚어진 모순. 머리로는 진정한 절제의 참뜻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은 늘 비틀거렸고, 그래서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두려움을 피해 나만의 좁고 어두운 창고 안으로 꽁꽁 숨어들었던 것이다.
그 좁은 창고에서 나와 나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신앙은 이따금 동력을 잃고 멈춰 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느릿느릿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 나눔 모임 중에 주말에 술을 마신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청년들을 보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곤 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나는 내 삶에서 진정으로 '절제'해야 할 것들이 비단 술과 담배 같은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들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타인을 향한 섣부른 판단, 내 삶의 중심을 빼앗으려는 수많은 쾌락과 나태함 등 내가 쳐내야 할 가지들은 정원 곳곳에 자라나고 있다.
비록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투성이라 놀라기도하고, 사역을 감당하는 일이 벅차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지금 나름대로 꽤 즐겁고 건강하게 이 길을 걷는 중이다.
이제 곧 부활절이다. 스무 살 무렵, 술과 담배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나에게 목사님께서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선물해주셨었다. 이번 주에는 서재 한편에 꽂혀 먼지가 쌓인 그 책을 아주 오랜만에 꺼내 찬찬히 다시 읽어봐야겠다. 강박과 자격지심에 갇혀 있던 스무 살의 주정뱅이 시절의 나와, 나만의 창고 문을 열고 나와 조금은 넓은 정원을 가꾸게 된 스물여덟의 나는 지금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부활의 아침이 밝아올 때쯤, 그 대답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