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사회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전쟁은 마약과 같아서 그 격렬함에 치명적으로 중독되기 쉽다" -크리스 해지스-

'허트 로커'라는 영화는 뉴욕타임스 특파원 '크리스 해지스'의 말로 시작합니다. 폭발물을 처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주인공은 왜, 지옥 같은 전쟁터로 다시 돌아갔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탐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주하고 싶지 않지만 전쟁터는 너무 가까이 있지요. 스마트폰과 텔레비전으로 뉴스에 접속하는 순간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빠져듭니다.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피가 철철 흘리는 격투기 경기에 나도 모르게 몰입하는 경우처럼요. 종합부동산세는 세금폭탄이 되고, 정치인의 말은 폭탄 발언으로 바뀝니다.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타협은 없다. 엄단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따라 '백기투항'을 요구받는 시대입니다.


충분한 정보 없이 언론에 노출된 대중들은 정치 성향에 따른 정당의 논평이 자신의 입장이 됩니다. 비겁한 관찰자가 되기 싫어 말의 전쟁터에 뛰어들어 보지만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느라 다른 증거들은 회피하거나 외면합니다. 실제로 아는 게 적을수록 모든 것을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 더 편하기 마련이지만 남는 것은 헛헛함뿐이지요. 공개적인 회의에서 힘을 가진 사람이 먼저 결론을 정한 듯이 말해버리면 권위의 무게에 짓눌려 다른 의견을 내기보다 그의 의견에 따를 위험이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에 빠져 정보의 완성도를 외면하면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이르기 십상입니다.


오늘, 이른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딸아이가 사다 놓은 라면. 나도 그렇게 꺼리지 않는데 얼마나 매운지 먹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틈새라면'. '틈'. 그렇다면 덜 매운 라면과 더 매운 라면 사이라는 뜻일 텐데요. 매운맛에도 중독됩니다. 중독은 내 감각이 무뎌졌음을 인정하지 않았을 때 더 심각해집니다. 더 매운맛을 찾기 전에 자신의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먼저이지 싶습니다.


격렬함에 중독된 사회, 아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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