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휘둘린 '공정하다'

강삼영의 글쓰기

by 강삼영

감정이 이성을 흔듭니다. 대부분의 통계는 고등학교 내신성적 중심의 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이 학생이 사는 지역과 부모 소득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입시제도라 말하고 있는데, 우리 무의식은 한 번의 시험으로 투명하게 줄을 세우는 수능이 더 '공정하다'고 합니다.


서울 지역 대학들은 올해, 그러니까 2023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주요 전형으로 하는 정시 모집 비중을 40%까지 높였습니다. 학생의 고등학교 학교생활 전반을 들여다보는 학생부종합전형을 포함한 수시모집이 정시모집보다 수험생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속단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주의를 끄는 두드러진 사건은 잘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습니다. '연예인들의 이혼'같은 사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다 보니 마치 연예인들의 일반인보다 이혼 비율이 더 높을 것이라고 과장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조국 장관 가족의 수사와 재판 과정을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학종과 수시'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재생산되었습니다. 또한, 단 한 번의 시험으로도 학생의 학업능력을 평가할 수 있고, 몇 개의 킬러 문항으로 변별력을 높이면 모든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투명한 제도라는 기성세대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아래 통계자료는 중앙대학교 백광진 교수 발표자료라고 하는데 전형 유형별 국가장학금 수혜율을 분석한 것입니다. 국가장학금은 부모의 소득을 기준으로 지급 대상을 정합니다. 보다시피 내신성적 중심인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장학금 수혜율이 가장 높고 논술로 입학한 학생이 가장 낮습니다. 다시 말해 논술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가정이 소득이 더 많다는 방증입니다. 아울러, 논술과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하는 정시 전형이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전형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며 사교육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뜻도 되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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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3구(송파, 강남, 서초) 인구가 150만 명 조금 넘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대 입학생 중 '강남 3구 학생 비율은 11.9%로 서울대 신입생 10명 중 1명 이상이 이 지역 출신이라고 합니다. 수능 같은 표준화된 시험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지표는 집에 있는 화장실 개수라는 연구도 있다고 합니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가 더 높은 학업성취를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믿고있고, 바랍니다.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아주 특별한 사례를 일반화하면서 우리 아이들도 노력만 하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 것이라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생각해봅니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강의 주의 깊게 듣고 친구들과 토의, 토론에 열심히 참여하고 숙제와 프로젝트 잘 수행하고, 학기를 마칠 때 이루어지는 시험을 통해 성취도를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다시 채우는 것이 공부 잘하는 것 아닐까요. 우리 삶도 마찬가지고 직장에 하는 일도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든, 주어진 일이든 시작부터 끝까지 동료들과 협업해서 잘 수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가(시험)는 교육의 일부분입니다. 딱, 그만큼만 중요합니다. 시험 점수가 학교생활 전반을 평가하지 못합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교육의 전 과정을 잘 이수한다는 뜻이어야 합니다.


강남 3구는 사교육 시장의 반응이 가장 빠른 곳입니다.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관련 학원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합니다. 대신, 독서·논술(2025년 고교학점제 도입에 맞춰 수능이 논술 서술형으로 개편될 것이라는 예측 영향)과 코딩(대통령 발언과 소프트웨어 특기자전형 영향), 컨설팅·진학상담이 강세라고 합니다. 학교교육은 거대한 함선과 같습니다. 항로를 바꾸기 위해서는 커다란 궤적을 필요로 합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5년은 필요합니다. 지난 정부가 설계한 것을 현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이해 없이 공교육 기관이 충분히 준비하기 전에 새로운 제도를 밀어붙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 3 주체가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사교육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 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철저한 분석 없이 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한다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신뢰는 더 낮아질 것이며 제2의 교실붕괴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오류를 바로잡을 기회는 반드시 있습니다. 교육 전문가들의 과학적 지식을 씨줄로 하고 일반인들의 감정과 직관을 잘 관리한다면 가능하지 싶습니다.


이제 곧, 2023학년도 대입 합격 여부가 수험생들에게 알려질 겁니다. 현재 대입은 선발을 위한 제도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에 누구는 합격하고 또 누구는 반대의 결과를 확인하겠지요. 자신감 넘치는 친구들은 재수를 선택하거나 과감하게 사회로 뛰어들 것입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지금 디디고 선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과 나눈 이야기, 친구들과 함께 흘린 땀과 눈물을 소중한 자산으로 만들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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