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후쿠이 시민(至民) 중학교 일정을 마친 다음날 고령자를 위한 커뮤니티 단지로 주목받고 있는 ‘셰어 가나자와’에 다녀왔습니다.
종교단체(BUSSI-EN)가 전쟁고아를 돌봐주는 아동 양호시설로 시작해서 지적장애가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로 성장한 곳으로 ‘더욱 저쪽으로’라는 이념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 가나자와로 옮겨오면서 장애인 취업지원시설, 고령자 및 학생용 주택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지를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장애아동, 노인, 학생을 위한 주거시설 외에도 노인 데이케어(하루 돌봄) 서비스 시설, 생활요양시설, 방문요양시설, 아동발달지원센터 등의 복지시설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외부인도 출입할 수 있는 식당과 매점에서 점심을 먹고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시미즈 메구미’씨로부터 어떻게 이런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는지 강연을 들었습니다.
‘셰어 가나자와’에서는 여러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은 주변 시세의 반값 임대료로 머물 수 있지만 대신 월 30시간의 봉사활동을 해야 합니다. 건강한 고령자들이 다양한 서비스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면 향후 몸이 약해졌을 때 ‘데이케어(하루 돌봄)’와 ‘방문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행사를 계획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위해 자연체험학교,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 등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도 함께 쓸 수 있는 온천이 있는데, 목욕을 다녀가면 자기 이름이 적힌 작은 표지를 뒤집어 둔다고 합니다. 날마다 안부 인사를 이름표로 나누는 셈이구나 싶었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대학생과 장년층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을 ‘시미즈’씨는 ‘뒤죽박죽’이라 말했는데, ‘종적 관계로부터 탈피’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강연을 듣고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마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리쬐는 태양빛이 우리나라와 다름없이 강했습니다. 잠깐 시설 앞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데 등줄기에 땀이 흐릅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큰 나무 아래 알파카를 키우는 사육장이었습니다. 장애아동이 마을에서 키우고 있는 알파카였는데, 아이들이 단순히 보호만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일원이 되어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동네 어른들이 함께 챙겨야 하는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대학생들이 생활하는 작업실 공간과 자동차형 주택도 있었습니다. 대학생들의 창작 공간은 그대로 마을의 갤러리가 되었고, 이 학생들은 반값 임대료를 내는 대신 일정 시간 봉사활동을 하면서 공동체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봉사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대학생들이 공동체에게 심리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머물 곳을 만들어주고, 이들을 ‘셰어 가나자와’의 관계 인구로 확장해 가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마을로 깊이 들어가자 주택 사이로 좁고 굽은 오솔길이 보였습니다. 길을 걷다가 마주칠 때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좁게 설계했다고 합니다. 무조건 넓고 큰 것을 외치는 세상에서 우리라도 잠시 멈춰서 주변을 둘러봐야 할 때가 아닐까요? 어쩌면 ‘셰어 가나자와’의 비결은 이 골목길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불편함이 서로를 마주하게 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마을상점이었습니다. 계산대가 놓여 있는 곳에 세 명의 소녀가 웃으면서 계산을 하는데,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에게 계산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마을상점에서 일하면서 서로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었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이 갑자기 물건을 사니까 학생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어울리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6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저는 이런 공동체의 모습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과 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이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경쟁이 아니라 서로 기대어 돕고 사는 공동체가 아닐까. 구성원 개개인이 존중받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세상,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눌 줄 아는 공동체, 그래서 누구나 지지받고 살아갈 희망을 느끼는 세상 말입니다. 우리의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를 이기고 누르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를 돕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