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공부를 잘한다’
강삼영
모두가 특별한 교육연구원장
‘공부한다’는 말을 들으면 어떤 장면이 그려지나요. 누군가 책상에 앉아 강의를 듣고 책을 읽거나, 아니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작업에 열중하고 친구들과 토론하는 모습이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방금 떠오른 공부하는 장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시험 점수와 등수(등급)가 표시된 성적표로 바뀌지 않던가요.
무의식이 이성을 흔듭니다. 과거의 경험이 쌓여 생긴 무의식은 눈에 빤히 보이는 과학적 통계나 사실을 외면하게 합니다. 주의를 끄는 두드러진 사건은 잘 사라지지 않고 기억 속에 남는 것처럼 '유명 연예인의 이혼'같은 사례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다 보니 마치 연예인들이 일반인보다 이혼 비율이 더 높을 것이라고 과장하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자료는 중앙대학교 백광진 교수 발표자료라고 하는데 대입전형 유형별 국가장학금 수혜율을 분석한 것입니다. 국가장학금 지급 여부는 부모 소득이 기준입니다. 보다시피 내신성적 중심인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의 장학금 수혜율이 가장 높고 논술로 입학한 학생이 낮습니다. 다시 말해 논술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가계소득이 더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확대해 생각해 보면 ‘논술 전형’과 수능점수를 기준으로 하는 ‘정시 전형’이 정상적인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벗어나는 제도라는 해석도 가능하며 사교육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뜻도 되지 싶습니다. 통계는 고등학교 내신성적 중심의 ‘교과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이 학생이 사는 지역과 부모 소득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입시제도라 말하고 있는데, 우리 무의식은 한 번의 시험으로 투명하게 줄을 세우는 ‘정시전형’이 더 공정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올해도 학생들의 학원 교육 지출이 꾸준히 늘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정부의 가계동향 조사를 보면 2020년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릴 때 잠시 줄었던 사교육비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사교육 총액, 사교육 참여율 등 주요 지표가 역대급으로 높을 거라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서 킬러문항 배제와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했지만, 자사고 유지와 불수능으로 오히려 사교육 수요를 자극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수업시간에 교사의 강의를 주의 깊게 듣고 친구들과 토의·토론에 열심히 참여하고 숙제와 프로젝트 잘 수행하고, 학기를 마칠 때 이루어지는 시험을 통해 성취도를 확인하고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이렇게 하는 것이 공부 잘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보면 우리 삶의 장면도 공부의 연장이고, 직장에서 하는 일도 공부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이든, 주어진 일이든 시작부터 끝까지 동료들과 협업해서 잘 해내는 것이 ‘공부’고 ‘일’이고 ‘놀이’고 결국, 총체적인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시험(평가)은 교육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딱 그만큼만 중요합니다. 우리 학생들의 총체적인 삶인 교육을 수능과 같은 시험으로 평가하겠다는 것은 근원적 오류입니다. 우리는 수능시험 점수가 학생의 고등학교 생활 전체를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울러, ‘공부 잘한다’는 것을 진지한 학습 태도와 높은 지적 호기심을 포함해 교육의 전 과정을 성실하게 공부하는 장면으로 이해해야 마땅합니다.
또다시 바뀔 대입제도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교육 제도는 거대한 함선과 같습니다. 항로를 바꾸기 위해서는 큰 궤적을 그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새로운 교육과정을 적용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정부가 설계한 것을 현 정부가 이행해야 하는 구조입니다. 이런 이해 없이 공교육 기관이 충분히 준비하기 전에 새로운 제도를 밀어붙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특히, 사교육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 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철저한 분석 없이 지난 정부의 ‘정시확대’처럼 무의식에 기대 제도를 바꾸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더 낮아질 것이며 제2의 교실붕괴를 마주하게 될까 두렵기만 합니다.
이제 곧, 2024학년도 대입 합격 여부가 수험생들에게 알려질 겁니다. 대입은 선발을 위한 제도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에 누구는 합격하고 또 누구는 반대의 결과를 확인하겠지요. 어떤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지 가려 뽑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지금 디디고 선 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바라건대, 대학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우리 학생들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지 더 깊이 있게 고민하면 좋겠다 싶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 살던 학교 공부에 성실하게 참여한 학생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입시제도를 꿈꿔봅니다. 학생들의 용기가 배신당하지 않는 교육정책,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