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란 모르거나 의심 나는 점을 물어 대답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1번과 2번은 질문이 될 수 있겠지요. 1번은 답변하기 아주 곤란합니다. 보통의 아이라면 이런 궁금증의 단계를 거칩니다. 곰곰이 생각해도 납득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부모나 신뢰하는 어른한테 불쑥 묻습니다. 만족할 만한 답을 듣지 못하면 또래끼리 ‘호랑이가 이겨, 아니야 사자가 이겨’하며 나름을 논리를 들어가며 목청을 높이기도 합니다. 이런 종류의 질문은 영웅담으로 옮겨 가면서 더욱 발전합니다. 어벤저스 시리즈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의의 편에선 영웅들끼리 싸움을 붙여서라도 누가 더 강한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동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1번 질문으로 어른들을 곤란하게 한다면, 부모들은 2번 질문으로 아이들이 머리를 흔듭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것이라면 질문의 반열에 올릴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장난으로 아이를 곤란하게 만들 마음이라면 진지한 질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3번과 4번은 질문이 될 수 있을까요?
자산어보의 저자와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것은 보통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학생에게 내는 문제에 불과합니다. 모르거나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니까 질문의 본래 뜻과는 아주 먼 것이지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시험문제를 질문으로 착각하고 아이들을 만나왔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교사는 정답지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학생들이 그 문제의 답을 찾아낼 수 있는지 확인합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니라 시험이었습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대화의 대부분이 교사와 학생의 질문과 대답이 아니라 끝없이 학생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질문은 내가 모르고 의심 나는 것을 묻는 것입니다. 교과 내용과 관련해 교사가 아이들에게 질문할 일이 있을까요? 뭐가 궁금할까요? 그렇지요. 우리가 궁금한 것은 ‘학생들이 교과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3, 4번 같은 문제를 내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3, 4번 문제에 아이가 답을 했다고 교육내용을 이해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더 나아가 관련 내용을 비교, 분석하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정말 학생이 교과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ㅇㅇ야, 너 삼각형의 넓이 구할 수 있어? 삼각형의 넓이는 어떻게 하면 구할 수 있는지 설명해 볼래?” 이렇게 진지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위대한 성인들의 배움의 장면을 보면 늘 제자가 먼저 스승에게 묻습니다. 궁금하고 도무지 혼자서는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것을 혹시 선생님은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묻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질문에 스승이 속 시원한 답을 해줄 리 없습니다. 일상생활과 무관하게 보이는 본질적인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깊고 넓은 배움의 길로 안내합니다.
그러고 보면 질문은 가르치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의 몫입니다.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 세상의 뿌리 같은 질문을 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가야 할 길입니다. 인공지능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어 냅니다. 시를 분석하고 노래를 만드는 시대입니다. 반복되는 시험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학생들이 확장된 호기심을 갖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는 교실을 포함한 배움의 장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에 대한 책을 읽으며 자신이 의문을 갖는 부분과 혼란스럽게 느끼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협력하는 장면을 연출해야 합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가치 있는 삶이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수업을 통해 인류 역사 전체를 바라보고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비교, 분석,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아울러, 대전환의 시대 새로운 기술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필요한 때입니다.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이들은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하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진지한 도덕적 탐구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습관을 갖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어떤 단일(단순) 기술보다 전이와 응용이 가능한 유연성이 자기실현의 가능성을 높입니다. 정해진 교과의 범위 안에서 정답이 있는 문제를 정해진 시간 안에 해결하는 공부도 필요하겠지만, 수업의 장면에서 일상생활과 무관하게 보이는 근원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협력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은 강의 중심의 수업에 견주어 실제 사회에서 해야 하는 일과 훨씬 비슷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호기심을 가득 안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인류의 진화과정과 닮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호기심이 학교 교육을 받으며 더욱 확장되는 동시에 도덕적인 고민과 늘 함께하길 바랍니다. 새로운 시대 ‘인간다운 삶’이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떻게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하는지?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