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삼영의 글쓰기
삼복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낮에는 34도까지 기온이 올라갑니다. 뜨거워진 땅과 공기는 해가 진 뒤에도 식지 않고 열풍을 뿜어 댑니다. 가장 더웠다는 지난해 여름과 견주어도 압도적입니다. ‘올해가 남은 생애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에어컨이 돌아가는 시원한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지켜보면 그저 평화롭기만 하지요. 가로수 가지를 흔드는 바람의 정체가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열풍인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교육계를 흔드는 이슈라는 것인 에어컨 실외기에서 나오는 바람인 듯합니다. 한쪽에는 쾌적하고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만큼은 숨 막히고 답답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종이 교과서를 대체할 수 있을 거라는 인공지능 기반의 디지털교과서는 교수-학습 상황을 지금보다 더 교육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까요? 의사 정원확대가 대학입시를 시작으로 교육현장을 어떻게 왜곡할지 고민스럽기만 합니다. 창문 너머 반대쪽이 또렷하게 보이니까 다 잘 알 것 같지만, 실제 상황은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외면하고 싶지 않다면 교육구성원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듣고 오류를 수정해야 할 것 같은데, 같은 소리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너나없이 미래교육을 말하고 있지만, 사람마다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미래교육의 모습은 전혀 다르겠구나 싶은 의심이 강하게 듭니다. 지역 학원가에도 ‘초등 의대반’을 모집한다는 현수막이 등장했습니다. 지나친 경쟁이 대한민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라고 하면서도 학생들의 어깨에 무거운 벽돌을 하나하나 더 쌓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사용하기 시작한 아이들일수록 성적도, 행복감도 낮다는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지만, 미래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온갖 디지털기기를 보급하겠다는 정책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배움이 이루어지는 곳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부모들이 땀 흘려 일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일 텐데 돌아가는 상황은 반대입니다. 교실로 불어오는 열풍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하소연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산업화 시대에는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순이와 영희가 다르고, 철수와 영수가 다른데 우리는 나이로 손쉽게 구분하고 뭉뚱그렸습니다. 8살에 배워야 할 것과 13살에 배워야 할 것을 정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 인간의 개별성은 인정받고 존중해야 할 특별함이 아니라 억압하고 숨겨야 하는 문제행동이 되고 맙니다. 한 공간에 50명을 모아놓고 칠판과 분필하나 쥐어주면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교사는 설명하고 학생들은 듣습니다. 세상의 지식을 교과로 구분하고 담을 높여갔겠지요. 그 방식에 최적화된 학생들은 모범생으로, 그 반대의 경우는 문제아로 내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극복하고 싶어 하는 ‘과거교육’입니다. 한 해에 100만 명이 태어나던 시대에 다른 방법이 없어 선택했던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미래교육이 화두로 떠 올랐습니다. 유네스코에서는 ‘교육의 미래 2050’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교육을 공공재를 넘어 공동재로 규정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기존의 왜곡된 경쟁주의적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중앙집권적인 국가주의를 넘어 인류 공동의 가치와 과제 실현을 위해 실천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방향을 모으자고 합니다.
묻습니다. 디지털교과서(AIDT)가 교실로 들어오면 유네스코가 말하는 미래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오히려 그 반대의 길로 가는 것은 아닌가요. 지금 교육당국이 하겠다고 하는 정책 대부분이 기후변화와 불평등, 민주주의 후퇴와 같은 ‘인류 공동의 가치와 과제 실현’에는 관심이 없고 더 경쟁적인 개인주의를 장려하는 꼴이 아닌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교육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학생의 개별성에 집중하는 교육제도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한참 관계 맺기를 배워야 할 다섯 살 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처음 말을 건네는 대상이 AI로봇이라는 생각을 해보세요.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미래교육의 모습이라니요. 다정하고 부지런한 선생님을 디지털 기기가 대신할 수 있다고 정말 동의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디지털 기기의 과열을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냉각팬을 상상해 보세요. 그럴듯한 가상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작동하는 시스템 한쪽 편에 학생들과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의 실제 삶이 고달프게 펼쳐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왜 하지 않는 것일까요.
은모래가 펼쳐진 동쪽 끝 바다에는 동네 어른들이 째복이라고 부르는 민들조개가 삽니다. 바다에 몸을 담그고 모래 속을 발바닥으로 헤집다 보면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 둘 잡을 때는 그놈이 그놈 같지만 똑같아 보이는 것 두 개를 골라서 견줘보면 금방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아이들도 하나하나 모두 다르지요. 밤하늘의 별처럼 저마다의 좌표를 갖고 빛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 모두가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속도와 기질에 맞게 배움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그 길 끝에 우리가 꿈꾸는 미래교육이 바다처럼 펼쳐질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