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손자를 데리고 농원에 들어갔다. 전날 와서 자고 농원에 함께 들어갔다. 아내와 우산 쓰고 물 뿌리는 놀이와 진흙탕을 만들어 놓고 자동차 놀이를 했다. 할머니하고는 정말 재미있게 잘 논다. 아이의 눈높이를 잘 맞춰 놀아주는 재주는 역시 자식들을 키워낸 노하우리라. 도시를 떠나 맑은 공기를 마시고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흙과 놀이를 하는 것은 어린 시절 더없이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다. 콘크리트의 도시에서 바쁘게들 살아내는 어린이들이 안쓰럽다. 조금 지나면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하루 종일 놀게 하겠다. 여름에는 새카맣게 태워 피부가 튼튼해야 감기도 잘 이기고 건강하리라 생각한다.
점심엔 둘째 처제가 돼지불고기를 준비했다. 농원 가꾸기 이후 또 처음 먹는 메뉴다. 정말 음식은 끝없이 새로운 메뉴가 등장한다. 큰 처제 딸 내외도 아기 유모차 사러 근처에 왔다가 방문해서 점심을 얻어먹고 갔다. 식복이 있다. 처남은 영동 산골 친구네 집에 가서 더 맛있는 걸 먹긴 하겠지만 우리들의 식단엔 함께 못해 아쉬움이 생긴다. 그래도 잘 먹고 다닌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걸리진 않는다.
농원의 화단에 백일홍이 피고 있다. 그 옆에 메리골드도 피었고 실유카는 백색종을 주렁주렁 예쁘게 달고 있다. 체리세이지도 작년의 영광을 만들려고 소담하게 재탄생했다. 끈끈이 대나물도 아내가 길에서 20개 정도 채취해서 심었었는데 죽지 않고 빨갛게 잘 피어준다. 다알리아(가시형레드)가 빨간 더벅머리를 하고 상남자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페퍼민트 잎사귀가 향기를 품고 있다. 코끼리 마늘 꽃도 높게 올라 피어준다. 마늘 꽃이 예쁜 줄 예전엔 몰랐다. 수국도 꽃을 내놓고 있다. 능소화가 작년 보다 많이 피었다. 아직 실하게 예쁘게 피지는 못 한다. 땅이 아직은 척박한 모양이다. 거름을 더 줘야겠다. 내년에 본래의 예쁜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친한 형님한테 얻어온 다래도 잘 살아 열매를 만들고 있다. 오이는 하나 열려 따서 먹었다. 산딸기는 많이 달리진 않아도 맛만 볼 정도로 달린다. 길가에 야생 산딸기가 많이 열려 아내가 제법 수확을 했다. 야생은 역시 거칠긴 해도 맛있긴 하다.
실유카와 달리아
잠시 작년의 6월을 떠올렸다. 허허벌판에 이 꽃 저 꽃 사다가, 얻어다가 심었다. 겨울을 지나 죽은 꽃이 더 많았다. 살아남은 꽃이 올라오는 벅찬 기쁨도 느끼기도 하고 작년의 경험으로 꽃씨를 많이도 뿌리더니 이제 정원다워지고 있다. 매니저 둘째 처제의 고뇌와 땀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본인도 만족해하며 구상에 구상을 거듭한다. 농원의 규모에 어울리게 키가 큰 꽃과 작은 꽃의 배치를 구상하고 꽃의 색깔도 조화롭게 맞추느라 애를 많이 썼다. 계속해서 발전하고 예쁜 농원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모아 농원에 심었다. 행복한 오 남매의 앞날만이 있을 것이다.
옆집에서 오디를 또 얻었다. 망을 쳐놓고 자주 수확하는가보다. 맘좋은 주인아저씨가 조금씩은 퍼가란다. 큰 처제와 둘째 처제는 조금보다 더 많이 걷어왔다. 오디를 풍요롭게 얻으니 기쁘다. 두 처제는 오랜 시간 오디를 골라내고 씻어냈다. 옆집 아저씨는 우리보다 농사 선배인줄 알았더니 고추 방아다리 아래 순치기도 안 해서 아래로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순치기 할 줄도 모르는가보다. 허긴 과일나무만 키우다가 작년에 처음 고추농사 짓다가 폭망한 거니 모르기도 하겠다. 원래 서울 사람이고 사업하다 실패했다고 하니 농사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 나무에 농약은 엄청 쳐댄다. 그래서 오디도 조금은 껄적지근하다.
밭에 풀은 지난주에 깎았는데 또 그만큼 자랐다. 1주일이지만 풀들은 잠도 없이 크기만 하는가보다. 작물보다 훨씬 잘 큰다. 주변 고구마 밭이나 콩밭, 옥수수 밭들은 고랑에 부직포 안 깔았어도 풀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 밭은 왜 이리 풀이 많을까 생각해보니 제초제를 뿌리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 기회가 되면 밭주인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농작물 경작하는데 제초제는 아닌 거 같은데 그렇게들 하는 거 같다. 어쨌든 풀은 예초기로 깎아서는 감당이 안 되겠다고 판단됐다. 7,8월엔 엄청나게 우거질 테니 부직포를 깔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풀과의 전쟁에 사람들이 지쳐나가 떨어진다고 하더니 실감이 온다. 수확을 많이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니 그냥 풀과 함께 같이 키우자고 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작물이 중요하다. 풀한테 치여 열매를 못 키울 거 같다.
풀을 깎고 있으니 도를 닦는 기분이 들었다. 50m의 9고랑이니 언제 다 깎나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풀에 집중하고 깎다보면 어느새 고랑 끝에 가 있다. 산을 오를 때 저 산을 언제 오르지? 하다가도 뚜벅뚜벅 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정상에 올라가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념무상이 되어 잡생각이 모두 사라지니 고요하고 청정한 마음이 된다. 아내가 새참을 가져왔다. 둘째 처제표 오디 잼을 바른 토스트 4조각과 시원한 냉커피로 잠시 휴식을 취하고 계속 풀을 깎았다. 부직포 까는 일은 혼자 하려니 어려워서 아내를 불러 같이 깔았다. 큰 처제도 도와 어둠과 함께 일을 끝냈다. 조그만 밭 2군데는 다음 주에 작업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