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국(Empire)VS다중(multitude)

`다중`이 `제국`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안토니오 네그리는

1933년 출생인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사상가.

'네그리'는 학계에서 그의 제자인 '마이클 하트'와 함께 쓴

<제국>과 그의 <전복적 스피노자>, <다중>으로 유명하다.

[출처] 나무위키, 위키백과


구글 이미지 -안토니오 네그리-


네그리가 말하는 '제국'이란 '제국주의'와는 다른 개념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맥도널드나 마이크로소프트, 다국적 기업들, IMF, WTO, 세계은행, 유엔, NGO 등 초국적 기구들이 바로 '제국(Empire)'이라고 한다.


'제국(Empire)'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밀접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폭력적 권력을 의미한다.


새로운 '인종주의' 형태
새로운 '정체성 및 차이 관념'
새로운 '소통 및 통제 네트워크'
새로운 '이주 통로'
'초국적 기업들의 권력'
'탈산업적인 노동 및 생산' 형태
이것들의 점증적인 우세가 전 세계를 '제국(Empire)'적인 질서로 만들고 있다.
[출처] 제국 -이학사-


네그리는



주권 형태의 변화 및 자본과 노동의 재배치를 다루는데,

여기서 이 모든 변화의 원동력을 '다중(multitude)'의 활력에서 찾고 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현재의 생산 형태 내에 새로운 사회주의를 향한 잠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출처] 위키캑과


네그리는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출현하고 있고

이에 대항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혁명적인 주체가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다중(multitude)'이라고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여기서

'다중(multitude)'이란 통일된 적이 없는 복수의 다양한 무리를 말하는데

자본의 지배 아래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로,

잠재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계급으로 간주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집단을 이루는 것처럼

'다중(multitude)'은 한편으로는 하나가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개별적 존재들을 형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삶정치적 불만들 중에서 매우 특이한 한 가지 사례는
나르마다 살리기 운동(Narmada Bachao Andolan)이다.

항의자들의 불만들 중의 하나는 자신들이 그동안 생활했던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거대한 댐들은 각각 만여 명 그리고 때로는 수십만 명의 거주민들을
매우 적은 보상으로 또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몰아낸다.

댐들은 분명 전기, 안전한 식수, 관개, 홍수 예방과 같은사회적인 혜택들을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 그리고 이것이 나르마다 투쟁에 포함되어 있는 근본적인 이슈인데 -

댐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사회적 비용을 빈자들이 부담하고, 이익들은 주로 부자들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댐은 사유화를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하고, 하천과 토지라는 공통적인 부를
사적 소유자의 수중으로, 예를 들어 땅을 소유하고서 관개를 통해 끌어들인 물로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 관련 기업의 수중으로 양도한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테크놀로지에 반대하는 항의가 아니라, 공통된 것을 사유화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견해를 수렴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그리하여 극소수의 사람들을 살찌우며 다수의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정치권력에 맞서 벌이는 항의인 것이다.
[출처] 교보문고 -다중 책소개-


오늘날 새로 출현하고 있는 민주주의 세력은 단순히 무시할 수는 없는,
혹은 그저 없어지기를 빌 수만은 없는 폭력의 상황에 놓여 있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주권으로부터의 이탈, 탈주, 엑소더스의 형태를 취하지만,
성경 이야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파라오는 유대인들이 평화롭게 도망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결국 모세가 홍해를 가른 다음 다시 파라오의 군대를 뒤덮어 버림으로써
엑소더스는 성공하게 된다. 이 고대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엑소더스를 행하는 다중의 행동이 주권 권력의 억압적 폭력에 폭력의 절대적 결여로 맞서면서 주권 권력의 공격에 대칭적인 대립물로써 대응하는 식의 변증법적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엑소더스는 결코 평화주의적이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평화주의적이지 않을 것이다.
모든 엑소더스는 능동적인 저항을, 주권의 추격하는 힘들에 맞선 후위 전쟁을 필요로 한다.

들뢰즈가 말한 것처럼, “탈주하라, 그러나 탈주하면서 무기를 움켜쥐라.” 를 행해야만
엑소더스가 이루어진다.
[출처] 교보문고 -다중 책소개-



`제국`과 `다중`을 쉽게 말하면

'제국'이란

정치권력이고

대기업이고

국가의 패권(헤게모니)이고

가진 자이고

윗물이고

엘리트들이고

지식인들이고

학력 지상주의자들이고

윗세대들로부터 대물림 받은 자들이고

쳐다볼 수도 없는 자들이고

......


'다중'이란

서민이고

중산층이자 하층민이고

하루 먹거리를 위한 노동자이고

기업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부품이고

'제국'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광대이고

쉽게 선동되는 군중 무리들이고

......


바로 '나 자신'이다


쉽게 말하면

똑똑하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과

윗세대들로부터 저절로 대물림 받은 이들이

모든 것을 쟁취하고 정복한다는 말이다.


겉으로는

서민, 중산층, 하층민, 노동자, 광대...... 들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서민, 중산층, 하층민, 노동자, 광대...... 들을 현혹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민, 중산층, 하층민, 노동자, 광대...... 들이 저항을 하는데

그냥 온순히 비폭력적으로는 안 될 것이라는 말이다.


모세의 `엑소더스`가 한 것처럼

똑똑하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과 윗세대들로부터 저절로 대물림 받은 이들이

잡으러 올 것이므로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다.



`다중`이 `제국`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출처]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대담한 제안 -린다 유 지음, 청림출판-


과거에 '제국'이

`다중`이 소득으로 가져간 것의 200배가 넘게 가져감으로써

소득이 `제국`에게 편중되어 버린 상황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므로


'다중'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러한 '다중'이 '동물농장'의 동물처럼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제국'과 '다중'의 위치를 바꿔버려야 한다.


`다중`이 `제국`이 되고 `제국`이 `다중`이 되어 <제국이 된 다중>이 욕을 얻어먹더라도 말이다.



'다중'이 `제국`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

`제국`이 너무나 거대하므로 오늘날은 `모세`처럼은 절대 하지 못한다.

`다중`이 동물농장의 동물처럼 깨어나야 한다고 말을 해도

`제국`과 `다중`의 위치를 바꿔버리자고 말을 해도 하지 못한다. 아니 할 수조차 없다.

일단 이끌어갈 `리더`가 없다.


그리고

통일된 적이 없는 복수의 다양한 무리인 `다중`이 뭉쳐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다중'끼리 먹고 살길을 찾는 것이 빠르고 정확하고 명확할지도 모를 일이다.


골목길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다 -책표지 촬영-


위 책의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는 소상인 중심으로 경제를 일으키라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지금 여기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중'끼리의 경제>일지도 모른다.


`다중`끼리의 경제

간단하게 말하면

`소상인`이 `소상인`의 상품을 이용하고 `재화`를 유통한다면

`재화`의 총량은 변함이 없겠지만 (`소상인`을 `소상공인`으로 확대해도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중`끼리의 경제가 돌아만 간다면


`소상인`은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소확행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국`이 자신들의 상품을 이용해달라고 `다중`에게 손을 내밀며 다가오게 만든다면

`다중`의 지위가 지금보다는 좀 나아질 것이다.


만일

`다중`안에서도 `제국`이 만들어진다면 더 이상 방법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자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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