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꾸데이와 디오니소스가 필요한 이유
스팍 선장
영화 <스타트렉>에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매 순간 냉철하게 생각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등 항해사 `스팍`의 이야기가 나온다.
매사 감정에 휘둘리는 법이 없고
냉철하게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고 행동한다.
선택에 직면할 때마다 이해득실을 따져 합리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거나 담배를 끊고 살을 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날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다.
[출처] 행동 뒤에 숨은 심리학 -이영직 지음, Sb출판-
스팍 선장은 아마도 인간미, 정나미가 뚝 떨어질 것이다.
이성적으로도 합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스팍 선장의 말은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인간적인 정은 끌리지가 않는다.
좀 뭔가 어수룩한 면도 있어야 끌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과 생활하면서 스팍도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는 인간미를 갈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고보다
비이성적인 무의식에 의한 감정과 직관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말이다.
나폴레옹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나폴레옹은 사전 계획이라는 것을 세운 적이 별로 없다.
전장에 나가기 전에 지도를 보면서 몇 가지 싸움의 형태를 숙고한 다음
전장에 나가 적진의 형세를 살펴보면서 작전을 지시했다.
이를 나폴레옹의 `꾸데이coep d'oeit라고 한다.
꾸데이coep d'oeit 는 `전문가의 직관`을 뜻한다.
냉철한 이성만이 올바른 길을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간의 논리나 합리적인 사고는 언제든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은 이유가 터널이 없어서`라는 유머가 있는데
실제로 나폴레옹은
1800년 봄에 이탈리아에 있는 오스트리아군을 기습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었다.
이는 오스트리아군이 나폴레옹의 대규모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올 거라고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결코 예상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행한 작전이었다.
실제로 이 작전은 오스트리아의 허점을 노린 것이다.
결국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게 된다.
하지만 알프스를 넘는 것은 이성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작전이다.
위의 그림만 보아도 어떤 작전인지 알 수 있다.
분명히 불가능한 작전이다. 오히려 나폴레옹의 군대가 추위로 인해 전멸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알프스를 넘으면서 40,000명의 군인이
와인이 22,000병, 치즈가 1톤 반, 고기 800kg을 5일 동안 소비했다고 한다.
[출처] 위키백과 -나폴레옹 알프스-
사람만 알프스를 넘어가는 것도 불가능할 텐데
무기와 화약과 수레와 말과 코끼리와 음식과 각종 도구 등도 옮겨야 하는 과정은 더더욱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이성에 따르지 않고 직관에 따른 것이다.
승리하기 위해서는 알프스를 넘는 길밖에 없다고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다.
바로 현장을 둘러보는 나폴레옹의 `꾸데이`가 느낀 것이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기에 알프스를 넘어가면 반드시 승리한다.
고 말이다.
따라서 어떠한 희생이라도 감수하는 것만이 승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첩보 영화를 보면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철옹성 같은 시스템이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시스템도
비이성적인 직관에 의해 뚫리게 된다.
영화라서 그런 것일까? 실제로도 직관적으로 뚫릴까?
아무튼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할지라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정이 있으면 그냥 직관적으로 옳다고 판단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비합리적인 직관으로 바라보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을 보면 직관에 따르는 것이 반드시 편한 길만은 아닐 것이다.
포기할 것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아폴론 VS 디오니소스
아폴론은
피톤이 지키던 가이아의 신전을 차지하고 지명도 피톤에서 델포이로 바꾸었다고 한다.
이렇게 델포이의 신전은 아폴론의 신전으로 바뀌고,
신전의 피티아를 통해 사람들에게 신탁을 내리게 하였다.
그 후로 인간은 가이아의 뜻이 아닌 제우스의 뜻을 알리는 아폴론의 신탁에 의하여
미래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이다. 여기서 말하는 술은 포도주이다.
포도주뿐만 아니라 광기·축제·쾌락·유흥·황홀경·풍요·야성·다산의 남신이다.
아폴론과 마찬가지로 예언과 치유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또한 인간에게 미래를 예언하는 힘을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아폴론과 함께 델포이 신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는데
3월부터 10월까지의 델포이 신전의 주인은 아폴론이고
이후 아폴론이 델포이에서 잠시 떠나는 11월부터 2월까지는 디오니소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신전에 기거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아폴론 신전, 디오니소스-
태양의 신 아폴론이 이성적인 존재라면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이다.
델포이 신전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가 관장했다는 것은
세상이 이 둘의 조화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도 않고
언제나 감성적이고 충동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아무튼 사람은 이성적으로 합리적인 것도 생각해야 하면서
때로는 비이성적인 비합리적인 직관도 느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실제로 삶 속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언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언제 나폴레옹의 꾸데이로 느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환경은 대부분이 아폴론적인 요소이다.
우리 사회는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앞만 바라보고 달리고 있고 성장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잠시라도 무언가를 해야만 편안해진다.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저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편안해진다는 말은
생각만 하고 움직일 줄 알았지
가만히 있으면서 느낄 줄은 모른다는 말이다.
이제 디오니소스를 찾아서 키워야 한다.
그래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