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볼 사람에게는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다`라고 해야 하는 이유
'당신이 옳다'면 '내가 틀린 것'이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면 '당신은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므로
결국 두 문장은 다른 표현의 같은 뜻이다.
언뜻 보면 다른 뜻처럼 보이지만
같은 뜻을 주어에 따라 표현방식을 다르게 나타낸 것이다.
'당신이 옳다'는 말은
네가 한 행동이나 말이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서 네가 이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받아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네가 한 행동과 말은 잘못된 것이니
사과하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네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당신이 옳다'라고 인정해 주는 것은
자기 자신(당신)이 자신(당신 자신)을 밀어내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당신) 편이 되도록 하여
스스로 낙담하지 않고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출처]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 해냄 출판-
그런데
책에서 말하고 있는 '당신이 옳다'는
제3자의 입장에서는 말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바로 상담자의 시선에서의 해결책인 것이다.
상담자의 입장에서 '너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받아주면서
'당신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너', 곧 당사자 간의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나의 입장에서 '당신이 옳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의 의견이 동전의 양면처럼 대치되어 타협점이 생기지 않으면
'당신 말은 틀렸고 나의 말은 맞다'라고 하게 된다.
이쯤 되면 더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때
'숲 속의 현자 나티코'는 이렇게 주문을 걸라고 한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 있습니다.
[출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다산북스 출판
마음속으로 이 문장을 세 번만 반복하면
갈등의 싹이 사라지게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까?
당연히 내가 틀렸다고 하면서 참으면 그 상황이 끝나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말이다.
너무 뻔한 답을 말하니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진리는 단순하고 뻔하다.'라고 하는가 보다.
만일 `숲 속의 현자 나티코`가 이 세계의 리더들에게
`이렇게 하면 반목을 키울 뿐이니 양보하고 한 발 물러서야 된다`라고 말한다고
세계의 리더들이 그 말을 그대로 듣겠는가 말이다.
저 세계의 리더들의 손에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달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숲 속의 현자`가 하는 말들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너무나 뻔한 것이어서 오히려 이 진리를 정작 행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리더들은 `진리는 단순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 상황은 양보하고 한 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말을 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상대방에 의해 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리더들은 `내가 무조건 옳으니 네가 틀린 거`라며
상대방을 비난할 수밖에 없으며 윽박질러야 자신들이 산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 화합의 열쇠는 정해져 있는 거다.
'당신이 옳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거다.
하지만 세계는 `나는 옳고 당신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다.
세계의 리더들에게 `현자`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힘이고 패권을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도 그랬지 않은가.
제나라의 경공이 공자의 박학다식함과 고매한 인품에 매료돼 그를 흠모하게 되어
그를 자신의 정치적 고문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공자의 높은 학식과 덕망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꺼린 제나라 재상 안영의 적극적인 반대로 좌절되었고
또
공자의 도덕정치는 어느 나라에서도 외면당했는데
당시의 왕들은 더디더라도 올바른 길을 택하기보다 손쉽게 국력을 팽창시켜
천하를 제패할 부국강병의 방법만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처] 위키백과 -공자-
아무리 진리를 말해주어도 세계의 리더는 듣지 않는다.
그들은 천하를 제패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리더들을 설득할 생각을 단념하고
`인의 사상`을 전파하는데 나머지 생애를 보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공자는 리더들에게서
`당신이 옳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선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우이독경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세계를 향한 옳은 진리의 외침은 리더들에게 소용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세계가 아닌 `나`의 관점에서 `당신이 옳다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를
생각해 보자.
`당신이 옳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며 한 발 물러서는 것은
내가 당신과 화합하기 위해 양보하는 것인데
만일 상대방이 안하무인이거나 옳고 그름에 견주어 봐도 `내가 옳다면`
그냥 단순히 한 발 물러선다든지 다른 한쪽 뺨을 내미는 것은
어딘지 어색하고 화가 날 것이다.
아니 내가 아닌 상대방이 '틀릴 수도 있다'면서 고개 숙이고 져주면 안 되는지,
왜 내가 틀렸다고 고개 숙여야 하는지 등
계속 이런 속 좁은 생각이 치밀어 오르게 될 뿐이다.
화합을 위해서는 정답이 그저 '내가 틀릴 수도 있다'인 것 같은데...
내가 공자, 부처, 예수도 아니고 말이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싶다.
상대방과 영원히 안 봐도 될 사이라면
까짓것 그냥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라고 말하고
상대방과 영원히 안 보면 안 될 사이라면
'내가 틀렸고 네가 옳다'라고 말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