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칼럼][정직 VS 거짓]

정의가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유


정의의 차이


어느 나라의 왕이 국민성이 우수하다는 이웃나라를 방문했다.
왕이 그 나라의 유명한 재판관과 함께
나라 안을 탐방할 때였다.

마침 두 사나이가 무슨 일인가를 상의하러 재판관을 찾아왔다.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한 사나이가 다른 사나이에게서 폐품을 샀는데
그 속에서 많은 돈이 나왔다.
그 사나이는 폐품을 판 사나이를 찾아가 말했다.

"나는 폐품을 산 것이지 돈까지 산 건 아니니 이 돈은 마땅히 당신의 것이오."

그러자 폐품을 판 사나이가 말했다.
"무슨 말씀이오. 나는 당신에게 폐품 전체를 판 것이니 그 속에 있는 건 모두 당신 것이오."

그래서 재판관은 판결을 내렸다.

"당신은 딸이 있고, 또 당신에게는 아들이 있소.
그들을 결혼시킨 다음 그 돈을 그들에게 주는 것이 정의에 맞겠소."

그들이 돌아가자 재판관은 이웃나라 왕에게 물었다.
"폐하의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어떻게 판결을 내리시는지요?"

이웃나라 왕이 대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사나이를 죽이고 돈은 내가 갖소.
이것이 내게 있어서 정의입니다."

[출처] 탈무드 -이동민 옮김, 인디북 출판-


이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기도 한 일이다.


길이나 지하철에서 수백만 원 또는 수 천만 원의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주웠는데

경찰서에 신고해서 주인을 찾아주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결국 탈무드에서 말하는 것은 정직을 말하는 것이다.

정직한 사회가 된다면 별문제가 없을 것이란 뜻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이웃 나라 왕의 판결에는

정직 때문에 두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도 실제 현실에서 죽음까지는 아니지만

오해받거나 누명을 쓰는 일이 종종 있지 않은가.


만일

이 두 사나이가 폐품에 있는 돈을 수면 위로 드러내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폐품을 산 사람이 폐품에 돈이 있었는데

돈이 없는 것처럼 거짓되게 행동했더라면 두 사람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든다.


폐품에 있던 돈을 말하지 않는 것은 거짓인가?


이것은 사람마다 옳고 그름이 다를 것이다.


만일

폐품에 있는 돈을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면

심지어 폐품을 판 사람도 그 사실을 몰랐다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폐품을 산 사나이가 그 돈을 가져도 될 것이다.


이 경우는 폐품을 산 사나이의 양심에 달려있을 뿐이지

사회적인 정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양심에 찔려서 폐품을 산 사람이

폐품에 돈이 있었다고 말하고 돌려줄 수도 있겠다.


이것 역시 양심의 문제이겠다.


여기서 만약

폐품을 판 사람이 갑자기 폐품 사이에 돈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폐품을 산 사람에게 돈을 달라고 한다면 폐품을 산 사람이 돈을 주어야 할까?


그냥 바로 폐품을 산 사람이 돈을 바로 준다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이런 경우 십중팔구 돈이 없었다고 말을 할 것이다.


그러면 폐품을 판 사람이 폐품에 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럴 수도 있을 것이다.

폐품을 산 사람이 돈을 이미 다 써버렸다면 이것 역시 문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신독과 중용에 입각한 재판관이 필요한 것이다.


또 만일에

폐품에 있는 돈을 누군가가 보았거나

폐품을 판 사람이 폐품 사이에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폐품을 산 사람이 돈을 폐품을 판 사람에게 돌려주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폐품에 돈이 있는 것을 또 다른 3자가 보았다면

아마 여러 가지 상황이 발생할 것이고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될 것이다.


어쨌든


탈무드의 이야기는 너무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정직하면 좋은 결과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예시일 것이다.

어쩌면 그 당시의 문화나 관습, 또는 상식이 이러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오늘날의 관점에서 탈무드의 이야기를 본다면


오늘날은 위 이야기처럼 서로 돈의 주인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겠다.


그리고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무작정 정직하게 하는 것도 어리석고

무작정 거짓되게 하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다.


'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이라는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만지지 말라고 하는 속담이 있다.

정직과 관계없이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직도 중요하지만 오해될만한 소지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속담이다.

정직과 거짓 이전에 오해할 만한 사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 우선으로 할 일이다.


시대의 분위기와 환경 여하에 따라서

그리고

일이 발생한 상황에 따라서 정직하게 할지 또는 거짓되게 할지를 판단하는 것이 옳겠다.


사람 참 어렵다!?!?!?!!?


모두 아시겠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세상을 담은 '거짓말의 발명'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웃으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5MxL0mieK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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