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작가의 의도 VS 독자의 해석]

책을 읽을 때는 독자의 치열한 고뇌가 있어야 하는 이유

롤랑 바르트는

1915년 태생의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비평가, 문학 이론가이다.

구조주의 비평과 해체 비평,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을 횡단하는

사상적 발자취를 남겼다.

저서로 <모도의 체계>, <텍스트의 즐거움>, <저자의 죽음(1968년)>, <S/Z> 등이 있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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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문학작품을 읽을 때

우리는 `저자`가 상상해서 그려 낸 의도 등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자는 작품을 이해하려고 하고, 저자의 독창성을 좇아간다.


그런데 바르트는


이러한 전제가 근대 특유의 방식이며 이제는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하고 있다.


이것을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라고 표현한다.


바르트는 `작품`과 구별하는데 `텍스트Texte`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텍스트Texte란 라틴어 `지어낸 것`에서 유래한 말로


`다양한 인용을 엮어서 지어낸 것`이라는 의미로 저자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인용하여 지어낸 `텍스트Texte`라고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말한다.


작가는 자신이 새로운 무언가를 창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는 다만 이전의 인용들을 모방하여 뒤섞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르트는 작가를 필사자(scripteur)라고 부른다.

필사자는 이제 더 이상 그의 마음속에 정념이나 기분·감정·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고,
다만 하나의 거대한 사전을 가지고 있어서,
거기서부터 결코 멈출 줄 모르는 글쓰기를 길어올린다.

삶이나 문화 또한 책을 모방할 뿐이며,
그리고 이 책 자체도 기호들의 짜임, 상실되고 무한히 지연된 모방일 따름이다.

[출처] 나무위키


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르트는

작품이 아닌 텍스트Texte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욕망에 따라

해석하고 변형시키는 즐거움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가 글의 모든 의미를 고정시켜 버린다면,

그것은 다양한 재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독자의 즐거움을 뺏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의 죽음'이라는 의미는

바로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서 저자의 의도가 강요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바르트가 말하는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고민하지 말고

그저 그 작품이 풍기는 체취에서 읽는 사람 스스로가 무언가의 메시지를 찾으라는 것이다.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읽는 사람 스스로가 감동과 즐거움을 느끼면 된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작가들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이다.

미술작품이든 음악작품이든 영화든 책이든

작가들은 우리 스스로 그 어떤 함의를 느끼라고 한다.


또한 바르트는


텍스트는 직물을 의미하는데, 고정된 의미로 환원될 수 없는
무한한 기표들이 뒤엉킨 짜임 속에서
이제 어떤 실을 뽑아낼 것인가를 정하는 것은 독자의 일이고
뽑은 그 실로 어떤 새로운 직물을 짜낼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라고 말한다.


저자는 자신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강요함으로써,

텍스트에 대한 적극적인 재해석에서 얻는

독자의 즐거움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저자가 독자의 해석을 마음대로 휘두르게 된다면
저자의 자리만 남아 있을 뿐 독자의 자리는 결코 없을 것이므로
`저자의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비로소 '독자의 탄생'이 시작된다.

[출처] 나무위키


고 말하고 있다.


바르트는

독자의 만족과 독자의 즐거움을 위해서 `저자의 죽음`까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현대 철학자들을 살펴보고 있다.

여러 책과 자료를 읽고 분석하고 있는데

그 한 사람의 철학자가 주장한 것을 모두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석박사 논문을 쓸 정도로 자료를 준비해야 하고 시간도 수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구조주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고

누구는 실존주의자이고 누구는 자유지상주의고

누구는 사회적 민주주의자이고 등은 관심이 없다.


이런 구분은 학위를 위한 논문에서나 필요할 뿐이지

현실의 삶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이런 구분을 할 동안 학자들이 분석한 현실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대안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철학자가 책에서 전하는 여러 가지 이론과 주장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이거나

현재에 살면서 도움이 될만한 어떤 이론을 중심으로 찾아보고 사색하여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학자들이 내놓은 문제점과 다양한 대안들을 살펴보고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말하자면

`학자들의 주장은 너무 학술적일 뿐이고 현실적이지 않은 이론이다`면서 비판도 하고

나만의 이론과 대안도 제시해 보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고 분석하는 것은 즐거움이라기 보다 고된 작업이다.

누군가 쓴 글을 읽는 다는 것이 고된 작업이다.


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글자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읽다보면

작가의 수많은 고민과 번뇌를 느낀다. 이를 느끼는 것이 즐거움일지도 모르겠다.


수년 전에는 눈으로 책을 읽고 내용만 파악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정독을 한다.


작가가 이 순간에 왜 이런 어휘를 사용했는지 또는 왜 이런 장면을 넣었을까 등등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는다. 그 어떤 상황에서의 심리변화라든지 생각의 변화를 묘사하는 부분을 통해서

삶의 애락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바르트가 말한 것처럼
텍스트Texte 속에 숨어있는 함의 곧 나만의 메시지를 읽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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