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욕망`이 누구에 의한 것이든 '나다움'을 찾아야 하는 이유
자크 라캉은
1901년 태생의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정신분석학자이다.
인간의 언어를 욕망을 통해 분석하는 이론으로 독창적인 정신분석학 체계를 세웠다.
프로이트 사상을 계승하여, 정신분석학을 구조주의 언어학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나 무의식이 언어를 통해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저서로 짧은 논문을 제외하면 <에크리>가 전부다.
[출처] 위키백과, 나무위키, 현대철학로드맵
라캉은 `거울 단계론`으로
한 살 전후의 유아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자기라고 깨닫는 과정을 재구성한다.
인간의 유아는 다른 동물과 달리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관심을 갖는데
이때 유아는 `자신의 신체가 하나하나 절단되어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하면서 거울에 비친 타인의 모습을 보고
그것을 자기 자신으로 깨닫게 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한다.
여기서 핵심은
인간이 자아를 알려면 반드시 타인을 매개로 해야 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직접 알 수 없는 존재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는 말이다.
그렇다. 인간은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타자를 통해서 나를 보게 될 수밖에 없고 타자를 통해서 나의 욕망도 찾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조건` 속에서
인간은 `타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나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
2025년 1월 5일 포스팅한
<[나의 욕망 VS 타자의 욕망] - 인간의 욕망은...>이라는 글에
`모소대나무(지금은 `글로쓰`)님이
"그럼에도 그 욕망들을 나타내는 건 `나`이기에
적절한 지혜로 나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이 듭니다."라는 댓글을 주셨는데
https://blog.naver.com/bbulii/223715363033
너무 공감하고 감사한 말씀이다.
타자의 욕망에서 나의 욕망을 보더라도
그 욕망을 나타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이다.
여기서의 욕망은 꿈과 이상, 목표와 같은 욕망을 말한다.
우리 인간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는 큰 틀 속에서
개인이라는 작은 틀을 짊어지고 있기에 더 중요한 틀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틀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철학자들의 이런 거대한 담론 격인 이론적인 말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학자들은 어떤 이론의 선후 관계라든지 인과 관계를 연구하는 것으로
우리들은 그 이론의 핵심만을 가지고 각자 삶에 녹여내면 되는 것이다.
결국 철학자들이 말하는 것에서 무슨 메시지가 있는지 읽어내는 것은 우리 몫인 것이다.
마치 컴퓨터의 작동원리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다룰 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것과 같은 이치이고
의사들이 병에 대한 처방으로 스트레스받지 말고 일을 쉬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쉬지 않고 일하면서 병에 대처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이제 욕망을 다른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첫 번째로 타자의 욕망이 잘못된 길을 인도하는 것이어서
나의 욕망이 수렁에 빠져 되돌릴 수 없는 길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를 볼 수밖에 없을지라도
타자의 욕망이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무엇이든 함축되어 있는 메시지를 읽을 줄 아는 역량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여기서 정말 깊게 숙고해야 할 점이 있다.
일확천금을 얻게 해 준다는 이런 잘못된 방향의 욕망은 제어하기가 쉬울 것이지만
정말 제어하기가 어려운 것은 타자의 욕망과 나의 욕망의 비교이다.
SNS와 같은 매체로 인해 접근하기도 너무나 쉬워서
손 안의 액정화면에 보이는 아름답고 멋진 상품들로 인해
나는 꼭 갖지 않아도 될 물건을 사야 하는 충동에 빠지기 쉬워진 것이다.
예를 들면
반드시 아이폰을 사야 하고
유명한 메이커 옷을 사야 하고
비싼 요리를 먹어야 하고
샤넬백을 사야 하는
등등
이런 타자의 욕망과 비슷하게라도 해야 하는
이런 나의 욕망들은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다.
이런 비교에 의한 나의 욕망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저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만족하고 기뻐한다.
하지만 진정한 나의 만족이 아니기에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는다.
또 다른 누군가의 만족스러운 행위를 좇아갈 뿐 늘 공허함만 있을 뿐이다.
부탄의 행복지수가 떨어진 것도 SNS와 같은 미디어에 의해
비교하는 욕망 때문이지 않은가.
요즘 길을 가면서도 핸드폰을 보고
심지어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면서도 좌우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시선은 손바닥의 작은 액정을 향하고 있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AI 가 발달하여 우리들의 삶의 경계를 흩트려 놓는 이 시점에
말하자면 AI 는 점점 인간다워지고 인간은 점점 좀비가 되어가는 이 시기에
무엇이 중요한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특히 어린 자녀들이 무분별하게 타자의 욕망을 받아들일 것을 생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내 자녀가 스몸비 같은 좀비가 되기를 바라는가?
이러한 타자의 욕망은 단칼에 끊어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는 것이 진정한 나의 욕망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웃기는 말 같고 믿기지 않지만 어젯밤 꿈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한 말이다.
그렇게 완벽한 삶을 살려고 하는 게 싫단 말이야.
좀 부족해도 사는 거야.
살면서 지금 없으면 내일 사면되는 거고
지금 안 되면 내일 하는 거고 말이야.
싸다고 사놓지 말라는 거야.
남이 갖고 있다고 사지 말라는 거지.
지금 필요한지, 지금 내가 그것을 하고 싶어 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거야.
다 갖춰놓고 살려고 하지 말라는 거야.
그때 준비해도 되는 것은 미리 준비하지 말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