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사고를 위해 `브리콜라주`가 필요한 이유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1908년 태생의 프랑스의 인류학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사회,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하고 문화상대주의를 발전시켰다.
저서로 <슬픈 열대>, <야생의 사고>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레비스트로스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미개 사회`다.
보통 미개란 서양의 근대 문명보다 한 단계 뒤떨어진 `야만인`의 사회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미개사회가 서양 근대 문명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면서 미개사회 고유의 의식을 찾고 있다.
그러면서 `차가운 사회`와 `뜨거운 사회`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차가운`이라든지 `뜨거운`이라는 것은
역사적 변화에 따른 온도 차이를 표현하는 것으로
근대의 서양 문명은 역사적 변화에 열광적으로 반응하여 `뜨거운 사회`를 형성했고
미개 사회는 사회의 안정성을 위해 역사적 요인을 제거했기 때문에 `차가운 사회`를 형성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레비스트로스는
`차가운 사회`야말로 `뜨거운 사회`보다 월등하지 않느냐?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서양 근대 문명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반드시 `차가운 사회`의 문명이 `뜨거운 사회`보다 더 월등한 것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문명이라는 인식하에 이들의 문명을 들여다보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점이 있을 것이다.
`차가운 사회`인 <슬픈 열대>에 나오는 원주민들의 풍습, 문화, 사고 등 우리의 문화를 토대로
비판적으로 수용을 했을 때 배울 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무분별한 수용과 무분별한 배척은 답이 아닐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 서양 제국들의 `차가운 사회`에 대한 무차별적인 점령으로 이들의 문명이 사라지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역사가 보여 주고 있다.
과거에는 `차가운 사회`에 대한 무분별하고 무차별적인 자연 개발, 비인간적인 폭행 등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차가운 사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하고
이들 원주민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받아들이고
베풀 것은 베풀면서 함께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와 같은 연구도 더 확대하여
서양 문명이 놓친 것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세상이 나아가는 지침이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차가운 사회`의 사고를 `야생의 사고`라 말하며
서양 문명의 `재배栽培적 사고`와 비교하고 있다.
즉 경직된 서양 문명에 비해 `야생의 사고`는
풍요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재배栽培적사고
서양문명의 `재배栽培적 사고`는 식물을 심어 가꾸는 것처럼
가꾸어진 대로만 사고하고 길들여진 대로 사고한다는
곧 한 틀 안에서만 사고하므로 결국은 편향된 생각밖에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에 반해
야생野生적 사고
`야생野生적 사고`는 생명이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자라는 것처럼
말 그래도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사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배적 사고`가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듯
`야생적 사고`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재배적 사고`는 어떤 틀 곧 체계 안에서 사고의 방향성이 한 방향만 지향하여 올바른 결론을 도출하기가
쉬운 장점이 있을 것이고
`야생적 사고`는 일정한 체계가 없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방식이므로
생각의 낭비가 많은 단점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와 우리의 자녀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재배적 사고`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아이디어 곧 창의적이 사고를 하기 위해서 엄청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이 창의적인 사고가 바로 `야생적 사고`에 해당할 것이다.
책상에 앉아 책만 보고 공부만 한 학생보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며 뛰어 논 학생들이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창의적인 사고를 위해서는
미개사회에서 원주민들이 자연과 호흡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야생적 사고`처럼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창의적인 의미에서 `재배적 사고`의 틀 속에서
`야생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야생적 사고`를 위해 레비스트로스가 든 것이
`브리콜라주`이다.
브리콜라주는
손에 닿는 대로 아무것이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으로
설계도가 없어도 그 자리에 있는 재료를 이용하여 임기응변으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레비스트로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출처] 위키백과,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쉽게 말하면
마침 그 자리에 있는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손으로 만드는 것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을 뜻한다.
요즘 `냉장고를 부탁해`와 같이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그 사람의 취향과 입맛 등을 고려해서 임기응변으로 요리를 하는 것처럼
`브리콜라주`와 같은 TV프로그램이 많이 탄생한 것도
현대사회가 새로움을 찾고 있고 창의적인 작품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브리콜라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시 `교육`일 것이다.
국영수 중심의 줄 세우기 위한 획일화된 교육은 `재배적 사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육을 돌아보면
초등학교 교육까지는 나름 전인적이고 포괄적인 교육이 진행되는 듯하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6학년부터는 교육이 파행되어진다.
왜냐하면 입시라는 시험에 관계없는 과목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제대로 수업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6년 동안의 `야생적 사고` 격인 교육이
중고등학교 6,7년 동안의 `재배적 사고` 격인 교육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육은 전인적인 교육으로 이들 학생들의 두뇌와 몸의 스펀지에 의해 확실하게 습득될 것이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두뇌의 사고체계와 몸의 두드러진 변화를 겪으며 사춘기라는 열병을 앓는 청소년 학생들에게 다양한 전문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 무척 중요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몸의 체계를 만드는데
반드시 필요한 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육임은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러한 중고등학교 교육이 대학입시라는 시스템으로 인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어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중고등학생들의 사고방식은 경쟁밖에 없을 것이고
그 경쟁에 올라타지 않으면 뒤처진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것밖에 없을 것이고
중고등학생들의 사고방식은 `재배적 사고`로 잘 다듬어져
폭넓고 전인적이고 다양하고 창의적이고 기발한 사고와는 거리가 멀 것이다.
교육의 변화만이 `브리콜라주`와 `야생적 사고`를 위한 대안이 될 것이다.
교육의 변화에 대해서는
앞서 글을 올린 것이 있어 중복을 피하고자 링크만 올린다.
https://brunch.co.kr/@52168600bfee4e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