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아우라aura VS 딥페이크]

NFT가 탄생하고 필요한 이유

발터 벤야민은

1892년 태생의 유대계 독일인으로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이다.

그는 `게르숌 숄렘`의 유대교 신비주의와 `베르톨트 브레히트`로부터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저서로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 <폭력 비판을 위하여>,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900%EF%BC%BFScreenshot%EF%BC%BF20250623%EF%BC%BF150442%EF%BC%BFGoogle.jpg?type=w966 구글 이미지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은 자신의 책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에서

`아우라aur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아우라aura`는


고대 라틴어로써

1.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나 은은한 향기 혹은 사람이나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2. 미학 용어로써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로 원본성/독창성, 유일한 현존성을 말한다.

3. 종교 용어로써 성인, 천사, 부처 등의 존재가 내뿜는 후광.

4. 미풍의 신, 산들바람의 여신 이자 디오니소스와의 설화로 광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으로 등장한 예로는


그 유명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에서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함께
옆에서 바람을 부는 역할로 나온다.

[출처] 나무위키


이처럼 `아우라aura`는

사람 또는 사물이 발산하는 어떤 기운, 분위기, 풍모, 카리스마를 뜻한다고 한다.


이러한 뜻의 `아우라aura`를 벤야민은


예술 작품이 지닌 `지금, 여기밖에는 없는` 유일성, 일회성을 가리키는 `분위기`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는 뜻으로 사용하여


현대가 기술 복제 시대가 되면서 `작품이 지닌 아우라`가 사라지고 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고 말한다.


벤야민이 특히 주목한 것은 `영화`인데


영화는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다시 찍고 그 뒤 풀과 가위로 편집해 작품을 완성해 간다.
파시즘은 영화를 통해 `정치를 미화`하여 대중을 지배했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 출판-


라고 말하며 `예술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벤야민은

지식 전달과 글쓰기 수단으로서 인쇄된 책이 낡은 형식이 되어

구텐베르크 시대가 종말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읽기 행위가 '이미지적'이고 '촉각적'인 성격을 띠게 되면서

비평적 글쓰기 방식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미디어의 시대가

사람들이 현실을 살면서 미디어에 의존하는 정도가 아주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디어에 의한 복제로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진품이냐 가품이냐를 따지기가 어려울 정도로

첫 번째 작품의 특성 곧 그 '아우라'를 찾기가 어려워진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는 환경인 것이다.


벤야민은


오늘날의 예술작품이 지닌 새로운 기능들 중에서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두드러진 기능은 예술적 기능이지만
이 예술적 기능을 사람들이 나중에 부차적 기능으로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까지의 예술이 '의식'에 바탕을 두었는데,

이제 예술은 다른 실천, 즉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되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런 대표적 예술매체로서 벤야민은 '영화'에 주목을 한 것이다.


특히 벤야민은


영화의 발전이 공산주의와 파시즘에 의해 이용되었다면서
촬영을 하기 위한 장비의 구입과 사용을 위한 교육은
모두 자본가 계급에 의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촬영이나 편집 등은 자본가의 이해관계에서 떠날 수 없고

따라서 이들의 영상은 자본가의 계급과 기득권의 유지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화를 막는 데 기여하도록 제작되었다.

이것이 바로 공산주의에 의한 '예술의 정치화'라고 한다.


반면 파시즘은


예술을 통한 정치적 심미화에 영상을 사용하였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그들이 해야 하는 것은 전쟁이었다.

따라서 파시즘은 그들의 권력에 대한 정당성을 옹호하고
전쟁의 참혹성을 미화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것에 영상을 사용하였다.


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영화가 지니는 기능들이 제대로 성취되기 위해서는


영화를 '스타 숭배'라는 '사이비 아우라'로 확산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역기능을 조장하는
'영화자본'이 몰수되어야 한다.


고까지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라'라는 원본 또는 카리스마라는 개념이 나치와 같은 정치선동까지 흘러가버린다.


영화와 같은 미디어의 발달이

원래의 의미와 전혀 다른 퇴색된 의미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을

벤야민은 말하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의 대중성은 좋은 것이지만

이를 악용하는 세력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벤야민이 살던 시대는 알 수 없는

현재의 '딥페이크'가 사회적 물의 아니 범죄에까지 악용되고 있는 시대이다.


1900년대 초반에 이런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이 경이롭다.

벤야민의 시대에는 정치선동뿐이었겠지만

오늘날은 딥페이크까지로 발전하면서 더 큰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기술에 의한 딥페이크는 무조건 근절시켜야 하고


"나'에 의해 창작된 작품들의 '아우라'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저작권법이 정당하게 활성화되도록 해야 한다.


'스타 숭배'에 의한 오늘날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지만

이 글은 딥페이크 정도에서 멈추고 다음 기회로 넘기고자 한다.


원본과 가품에 대한 논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은 NFT라는 것을 통해 원본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탄생했다.

이러한 NFT 기술이 딥페이크를 근절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여담이지만

어찌 보면 NFT와 가상화폐가 탄생한 이유가 '아우라'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내가 먼저 시작하고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본력이 있는 누군가가 취해 버려서

'나'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익을 가져가고 명성을 얻게 되어

나는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런 의미로 '아우라'를 바라본다면

앞으로의 미래는 자본이 있는 자만이 승리하고 명예를 얻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암울하게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이 사람의 말에서

지금 만들어진 제품에서

누군가 조그마하게 하고 있는 것에서

......


아이디어를 얻어서 확장 발전시켰다면서

처음의 '나'를 인정해 주고 추켜 세워 준다면

처음 그 `아우라`를 일으킨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위축될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그 사람을 띄워야만 한다.

자본으로 어떤 한 사람의 '아우라'를 박탈하면 절대로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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