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자발적으로 복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 극복할 수 있는 대안
루이 알튀세르는
1918년 태생의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다.
알제리 출신으로,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서 헤겔 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곳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저서로 <자본을 읽자>, <마르크스를 위하여> 등이 있다.
[출처] 위키백과 -루이 알튀세르-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론`을 생성 과정을 밝히고
`주체`의 의미를 전환하여 자신의 이론을 펼쳐 나간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경제적 토대에 대한 상부구조에 해당하는데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밝히지 않았었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대문자 주체`의 요청을
개개의 주체(소문자 주체)가 승인 또는 재인함으로써 성립된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고 말한다.
여기서 `대문자 주체`는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와 유사한 개념을 뜻한다.
그러면서 알튀세르는
개개의 주체는 `대문자 주체`의 요청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이를 통해 `주체`가 `신민`이 되어
국가는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을 실현하는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말은
실존주의에 입각한 사상 즉 `개개인을 자립적인 주체로 보는 사고`와
`타인과는 다른 독특한 주체로 보는 사고`를 완벽하게 부정하는 것이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계속해서 알튀세르는
개개의 주체는 이데올로기의 요청에 호응하면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신민이 된다면서
인간은 국가에 강제로 지배를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배 세력 밑으로 들어간다.
[출처] 현대 철학 로드맵 -arte출판-
고 말하고 있다.
영어로 subject라는 단어는
1. 주제
2. ... 될 수 있는
3. 지배하에 두다
[출처] 네이버 영어사전
라는 중의적인 뜻을 가지는데
여기에 착안해서 알튀세르는
자발적으로 자유로운 주체subject가 실제로는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subject이다.
라고 본 것이다.
알튀세르는 실존주의를 부정하고 있는데
여기서 실존주의는
20세기의 철학 및 문학 사조로 1940년대와 1950년대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쇠렌 키르케고르와 프리드리히 니체에게 영향을 받았다.
보통 학자들은 마르틴 하이데거를 최초의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보고 있다.
[출처] 나무위키 -실존주의-
이러한 실존주의가 내세우는 것은
'나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선택을 통해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을 자신이 선택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선택이 불안할지라도 그 선택의 자유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실존주의-
이러한 실존주의를 알튀세르는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들은 `실존주의`적 사고에 휩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나`의 몸과 정신을 담금질하면 `나`가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다며
실존주의를 강조하면서 나를 만들어 가라는 것들이다.
그런데
`개개인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그것이 진정 `나`가 원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말하자면 알튀세르가 말하는
`대문자 주체`의 요청을
개개의 주체(소문자 주체)가 승인 또는 재인하는
이 말에서 `대문자 주체`가 요청하는 것을
`나`가 바라는 꿈, 이상, 목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나`가 보내고 있는 이 시간에 `나`가 하고 있는 어떤 행위가
진정으로 `나`를 위한 담금질일까?
모두들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문자 주체`가 요구하는 것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존주의가 내세우는 것이 우리 개개인이 원하는 바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적 요인이
우리들을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
모두가 가는 어떤 한 방향으로만 가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그 방향으로만 가고 있고 있으니
`나`도 그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복종`을 하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은 불안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책에서 말하는 대로 밑줄 긋고 수첩에 정리하고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아니다`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것뿐이다.
모두들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을 나도 하고 있으니 마음이 놓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거짓말을 자주 하면 할수록 대중들은 그것을 믿게 되며 마침내 자기 자신도 믿게 된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다음에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든 사람이 믿게 된다.
[출처] 나무위키 -파울 요제프 괴벨스-
어쩌면 우리가 믿고 바라고 있는 것들이 실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것이 현실이고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지금 `나`를 이 상황, 이 현실에 끼워 맞추고 살 수밖에 없다.
아니면 박차고 나와서 나만의 어떤 길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에는 너무 두렵다.
이러한 두 길 중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을 어떤 자세로 택하느냐일 것이다.
어쩔 수없이 그저 끌려가면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로서의 선택인 것인지
에 따라 `나`의 미래의 모습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선택을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4가지가 있다.
첫째 SNS 좀 줄이고, 왜냐하면 SNS는 나를 불쌍하게 만든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간다.
남들이 가지고 있고 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서 상대적 빈곤을 느끼게 되어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유튜브, 쇼츠, 넷플, 티빙도 좀 줄이고, 왜냐하면 인기 있는 콘텐츠는 다 거기서 거기다.
역시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정신을 빼앗아 간다.
차라리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나의 이력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나`의 목표와 같은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셋째 자기 계발 서적 조금 줄이고
왜냐하면 계속 머릿속으로 다짐하고 계획만 세우면서
정작 내가 목표를 위해 해야 할 일은 미루게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의 목표를 위한 전문 서적을 보는 것이 더 힘이 될 것이다.
아니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넷째 작가 고명환 님이 고전에서 인생의 답을 얻은 것처럼 고전을 읽어야 한다.
작가 고명환 님의 책 `고전이 답했다`를 읽어라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을 읽어도 된다. 고전 다운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고전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다음처럼 해보길 바란다.
일단 처음에는 손에 잡히는 대로 한 권을 잡아서 읽는다.
예를 들면
논어, 한비자, 손자병법, 플라톤의 국가, 파우스트, 명심보감, 목민심서, 격몽요결, 조선왕조실록, 임꺽정, 태백산맥, 토지......
이때 정독해서 천천히 읽는 것이 좋다. 시간이 좀 걸리고 힘들 것이다.
그래서 하루에 10쪽씩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는 방법도 괜찮다.
이렇게 읽다 보면 다음에는 무슨 고전을 읽을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전을 소개하는 팸플릿 등에 적혀있는 순서대로 읽으면 된다.
이렇게 4가지를 하다 보면 알튀세르가 말한
지배에 복종하는 신민subject이 될지라도
`나`의 자유로운 주체subject를 놓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나`의 모습도 구체적으로 그릴 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