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드리는 예배

by 농부사랑

눈물로 드리는 예배(1/16 묵상)

누가복음 7:36~50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대체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바리새인들과 시몬은 달랐지만 죄인으로 낙인찍힌 여인이 나아오자 예수님을 판단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예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울며 눈물로 주님께 나아와 감격적인 예배를 드립니다. 여인과 같이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으로 나아오는 자를 주님은 기뻐 받아주십니다.


나의 예배하는 자세를 돌아봅니다. 지극히 의례적인 바리새인 시몬과 같지 않은지, 여인처럼 눈물과 감격이 있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1986년) 예배를 잊지 못합니다.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준비찬송가를 부르면서 주님 없이 살아온 삶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내 마음에 모셔들이자 기쁨의 눈물로 변하여, 예배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눈물 콧물을 쏟으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적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벌써 40년 전 일입니다.


지난주 칠순기념 중국여행하면서 6시 30분 아침식사, 7시 30분 출발, 주일 일정(패키지여행)이 빡빡해 예배를 어떻게 드릴까 고민했습니다. 5시 30분에 일어나 씻고 짐을 꾸린 후 아침식사 전에 호텔방에서 동행한 딸과 짧게 약식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일(1월 11일) 소책자에 실린 글 “관계의 미학”을 딸이 읽고 진솔한 나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평생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며 가면을 쓰고 거짓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죽을 때에야 비로소 헛된 삶을 살았음을 깨닫고 후회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부족하지만 지금 이만큼이라도 사람들과 진솔한 삶을 나누며 소그룹을 인도하고 또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하였습니다.


딸도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못한 이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박사학위 눈문을 써야 하는지, 진정성(의미)이 있는 논문인지 많이 고민하다가 결국 기독교 세계관(가치관)과 부딪혀 논문을 포기하였답니다.


논문을 쓰려고 1년 동안 무급 휴직하고 기숙사에서 지냈는데,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이수만 하겠다 하여 아빠로서 솔직히 많이 섭섭했습니다. 그런데 딸의 이야기를 듣고 진리 편에 서고자 몸부림치며 박사학위를 포기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딸과 진솔한 나눔 후에 내가 마무리 기도를 하였습니다. 30분 짧은 약식예배를 드렸지만 오랜만에 눈물로 드린 감격적인 예배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딸이 휴지로 나의 눈에 눈물을 닦아주었습니다. 평소에도 나와 닮은 점이 많았지만 아빠로서 딸에게 선한 믿음의 영향력을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뿌뜻하였습니다.


하지만 평상시 나의 예배는 회개도 감격도 없이 주일이니까 의무적으로 예배에 참여할 때가 많습니다. 광고 길게, 봉헌기도 길게, 메시지도 길어지면 주차장 혼잡을 걱정하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설교 말씀 하나라도 기억하려고 열심히 메모도 하지만, 설교보다 2부 찬양팀과 성가대의 찬양에 더 은혜받을 때도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고 시간에 자유로운 목사님의 성향이나 사랑 없어 쫀쫀하고 시간에 집착하는 나의 성향은 쉽게 고쳐질 수 없기에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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