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견디는 쪽이었다

by 누리달


늘 견디는 쪽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의 무게를 먼저 받아내는 쪽.

묻지 않아도 요청은 쏟아졌고, 말해주지 않아도 나는 늘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인 사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빈틈을 수도 없이 메우고, 마지막 순간에야 잠깐 웃거나 혹은 내가 쏟은 노력은 물거품이 되기도 했다.

일의 성과로만 보자면 그렇지만 모두 내 내면을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분명했다.


그게 이 일의 방식이라면, 나는 그 안에서도 단 한 번도 가볍게 대하는 법이 없었다. 관계든, 말 한마디든, 손에 쥐어진 책임이든. 일의 대소를 따지지 않았다.

나는 어쩌면 나보다 거대한 존재에 휘둘리는 것보다, 나보다 나약해 보이는 존재에게 도움의 손길을, 진심을 담은 원조를 보내는 것에 만족감이 더 컸다.


이번에는 소위 말하는 ‘을‘이 아닌 일을 위탁하는 ’ 갑‘의 입장이 되었다.

한 달 동안 수 십여 곳의 회사를 수배하며 마음도 희망도 쪼그라들었을 때쯤, 처음 “가능하다”는 말이 들렸을 때, 나는 그 한마디를 붙잡고 모든 시간을 그쪽으로 쏟았다.

다른 문은 닫았고, 확신이 없던 길에도 신뢰부터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단 한 줄로 모든 것이 끝났다.


“저희는 안 합니다.”


사실이 아닌 오해 하나였고, 진심으로 설명했지만

상대의 마음은 이미 돌아서 있었다.


나는 속이 상했다. 일이 깨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쌓아온 시간과 마음이 너무 쉽게 잘려나갔다는 사실에.

끝맺음을 맺는 쪽의 감정의 종류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조금은 다르게 닫힐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말보다 마음을 먼저 꺾는 사람과 길게 갈 수 없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이 프로젝트를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여과 작업을 거쳤다고 생각한다.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기한 과정처럼..


이 일을 오래 해왔다. 늘 을의 입장에서, 늘 고객사의 필요에 맞추며.

그 안에서 나는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고,

내가 지키고 싶은 태도를 만들었다. 아니, 만들어져 있었다. 선택당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방향성을 선택하는 입장이 되니 내가 추구하는 일의, 사람의 재질을 알게 됐다.


문제가 있다면 짚되, 설명할 것.

끊더라도, 상처는 남기지 않을 것.

단기 프로젝트라도, 사람을 대하듯 오래 볼 것.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좋아한다.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따뜻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과정들.


그리고 금세 나와 같은 마음으로 함께 걸어갈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리라 믿는다.